"비둘기야, 핫도그 맛있니?" (모 윌렘스/살림어린이)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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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가 길에 떨어진 핫도그를 발견한다. 너무 기뻐하면서 한 입 베어 먹으려고 하는 순간, 옆에 아기 오리가 나타난다. 그때 비둘기의 자세를 보자면, 핫도그를 아기 오리 반대쪽으로, 그러니까 아기 오리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놓은 채로, 고개만 돌려 아기 오리를 쳐다본다. 그러면서 말한다. “너,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지금까지의 상황을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보자. 비둘기는 핫도그를 주워서 막 먹으려고 하고 있고, 그 옆에 아기 오리가 나타났다. 그게 다이다. 아기 오리가 갑자기 왜 나타난 건지 우리는 모른다. 그냥 지나가는 길일 수도 있고, 오리을 보고 오리에게 오는 중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핫도그를 보고 다가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장면까지에선 오리의 의중은 알 수 없다. 그게 팩트이다. 하지만 비둘기는 아기 오리가 다가온 이유는 100% 핫도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핫도그를 갖게 된 순간, 비둘기의 마음속에는 이미 핫도그를 혼자 먹고 싶은 마음, 핫도그를 뺏기고 싶지 않은 마음, 행여 누가 ‘내’ 핫도그를 빼앗아 갈까봐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길에 떨어진 핫도그가 원래부터 비둘기 것은 아니었건만, 그 핫도그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내 것’이라는 소유욕이 생겨났고, 거기서 독점욕으로 발전했고, 그걸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하고, 경계 태세를 갖추는 불안감이 생겨난 것이다. '탐진치'의 전형적인 한 코스이다. 땅에 떨어진 핫도그를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음 '치', 그로 인해 생겨난 독점하고 싶은 욕심 '탐', 그리고 그것이 방해받자 바로 화내고 짜증내는 '진'. 그렇기에 이 사단을 만든 것은 다 비둘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기 오리가 영악하게 머리를 써서 비둘기의 핫도그를 나눠먹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은 핫도그를 발견하는 순간 이미 비둘기의 내면에서부터였다.


완전히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똑같은 상황이다. 비둘기는 핫도그를 발견했고, 기뻐했고, 그래서 한 입을 베어물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 아기 오리가 나타났다. 비둘기는 그걸 인지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핫도그를 먹기 시작했다. 이러면 어땠을 것 같은가? 그러면 아기 오리가 와서 “저, 혹시 그게 핫도그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응!”이라고 대답하고 또 한 입을 먹었을 수도 있다. 설령 아기 오리가 “핫도그는 어떤 맛이에요?”라고 또 묻더라도, 핫도그를 씹어 먹으면서 “음, 글쎄... 한 입만 더 먹어보고 말해줄게.”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아마 애초부터 아기 오리가 핫도그를 얻어먹고 싶어서 비둘기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면, 점점 줄어드는 핫도그를 보면서 아기 오리의 마음은 조바심에 안달복달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따위로 여유롭게 유도 심문을 하면서 비둘기를 조종하려 하지 않고, “저기요! 저도 한 입만 주시면 안 될까요?”하고 본심을 툭 꺼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 핫도그가 남아있을지, 혹은 비둘기가 마지막 남은 한 입을 아기 오리에게 줄지 말지는 비둘기가 정하면 될 일이다. 너무 맛있어서 마지막 한 입까지 다 먹어버리고 싶다면, “미안하지만 안 되겠는 걸?”하고 계속 먹으면 될 일이요, 혹시라도 그 사이 배가 불러져서 이 정도는 아기 오리에게 줘도 되겠다 싶으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갑과 을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어쨌든 이 경우에는 분명 비둘기가 갑이고, 아기 오리가 을이다. 왜? 주도권이, 선택권이 비둘기에게 있기 때문이다. 비둘기는 그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비둘기는 그냥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되고, 아기 오리는 비둘기의 행동에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면 된다.


하지만 이 그림책에선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비둘기가 원하는 건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이 핫도그를 혼자서 다 먹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누가 옆에 있건 없건 간에, 내가 혼자 다 먹고 싶으면 먹으면 그만이다. 누가 달려들어서 뺏으려고 덤비지 않는 이상, 내가 내 손에 있는 핫도그를 먹겠다는데 그걸 못하게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둘기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마음껏 먹기를 바랐다. 그러니 아기 오리가 나타난 것이 그토록 신경쓰이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비둘기가 남 눈치를 많이 보는, 남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주은 핫도그를 내가 먹는 게 왜 문제가 되는가? 어쩌면 비둘기는 음식은 함께 나눠먹어야 착한 비둘기라는 교육을 받고 컸는지도 모르겠다. 욕심 많게 혼자 먹으려고 하면 나쁜 비둘기라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 때문에 혼자 다 먹고 싶은 욕심이 더 커지게 되곤 하지만. 암튼 그래서 비둘기의 행복감은 아기 오리가 나타난 순간 박살나게 된다. 비둘기는 핫도그를 먹는 행위보다, 아기 오리가 자기 핫도그를 탐내지 못하게 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내 욕구를 위해 남의 욕구를 제한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다.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서 비둘기 귀에다 대고, “그냥 먹어! 이 바보야!”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사실 이 모든 사단은 비둘기가 먼저 가만히 있는 아기 오리에게 “너,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라고 물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발언권을 주었으니 아기 오리가 질문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비둘기는 이때부터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아기 오리의 첫 질문, “저, 혹시 그게 핫도그인가요?”를 보면, 비둘기는 아기 오리가 핫도그가 먹고 싶어서 일부러 그렇게 묻는 거라고 100% 확신하는 눈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면 핫도그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아기 오리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저게 말로만 듣던 그 핫도그인가 싶어서, 알고 싶어서 물어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때 비둘기의 대답이 아주 가관이다. “아니, 이건 그냥 핫도그가 아니라 내 핫도그야.” 너무 창피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대답이다. 유치하고, 어린애 같고, 누가 뭐래? 하는 인상을 주는, 한 마디로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는 한심한 대답인 것이다. 비둘기와 아기 오리의 크기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비둘기는 어른, 아기 오리는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애 앞에서 이토록 유치찬란한 발언을 할 수 있다니, 비둘기가 몸만 컸지, 아직 속은 완전 유아틱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다. A를 물어봤으면, A라고 대답하면 되는 거다. “저, 혹시 그게 핫도그인가요?”라고 물어봤으면, “응, 핫도그야.”라고 말하면 그만인 거다. 그렇게 간단한 대답에 핫도그를 뺏길까봐 느끼는 불안감과 자기의 소유임을 명시하고 싶은 과시욕이 믹스가 되면서, 어이없는 답이 나오고 말았다. (그냥 평범한 질문에 이상하게 대답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뭔가가 짬뽕되어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정도면 아기 오리도 그 사람의 속내를 눈치챌 수 있을 정도다. 눈에 다 보이는 것이다. “아~ 이 비둘기 아저씨가 핫도그를 자기 혼자 다 먹고 싶어하는구나~”라고 말이다. 약점을 들킨 것이다. 이때부터 영악한 오리의 반격이 시작된다. 원래 욕망이 강하면 그것이 그대로 약점이 되는 법이다. 혹은 지키고 싶은 것이 분명하면, 항상 그것이 자기 발목을 잡는 것이다. 왜 범죄물을 보면 항상 그런 장면이 나오고 싶지 않는가? 주인공이 가장 지키고 싶어하는 소중한 것을 인질로 삼아서 주인공을 협박하는 그런 장면들. 그게 바로 그 사람의 약점이 되는 것이다. 비둘기의 약점은 핫도그다. 아기 오리는 그걸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나는 그 증거가 바로 7페이지에 나오는 아기 오리의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말풍선을 붙여본다면, 속으로 ‘아항! 그렇단 말이지! 그럼 어디 살살 약을 올려볼까?’하는 표정이다. 뭔가 알았다는 표정. 이러면 재밌겠다는 표정. 어떻게 해야할 지 감 잡았다는 표정 말이다.


나는 이 장면 직전까지 아기 오리에게 별 생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길을 지나가고 있었고, 비둘기를 보았고, 비둘기가 먹으려는 것이 혹시 핫도그인지 궁금해서 물어봤고, 그게 다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은 일이지 않나? 하지만 비둘기가 먼저 이상하게 구는 바람에, 이 아기 오리에게도 핫도그에 대한 새 욕망이 생겨났다고 본다. 비둘이가 원인 제공을 한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승부욕을 일깨웠다고 할까? 애초에 아기 오리에겐 핫도그를 뺏어먹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비둘기가 “이건 내 꺼야!”를 주장하는 바람에, ‘나도 핫도그를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애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 때도 그냥 이것저것 니 꺼, 내 꺼 할 것 없이 두루두루 같이 놀 때는 문제가 없다가, 여긴 내 집이고, 이건 다 내 꺼야, 하는 순간 상대방의 것이 더 좋아 보이고, 탐이 나고, 뺏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가 나를 적으로 여기고 경계하는 순간, 그런 마음이 없던 사람도 갑자기 싸우고 싶어지고, 상대를 골탕 먹이고 싶어진다. 왜? 나를 그런 나쁜 존재로 취급했으니까. 나참, 진짜 나쁜 게 뭔지 한 번 보여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때부터 아기 오리의 표정을 잘 보면, 일부러 큰 눈알을 굴리며(머리도 같이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영악한 표정과 자세를 취해가며, 순진한 척 비둘기를 말로 도발하는 장면이 계속 펼쳐진다. 비둘기가 핫도그를 먹으려고 할 때마다 막아가면서 더 환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둘기가 유독 아기 오리의 도발에 잘 넘어가는 것은 그의 허세 때문이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 가진 자가 부리는 여유, 없는 자를 약올리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다 비둘기의 성격적 결함들이다. 이게 그를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오히려 더 놀라운 것은 아기 오리의 밀당 능력이다. “어서 드시라니까요”라고 말만 하면서 핫도그에서 눈을 떼지 않는 채 엎드려서 발만 까닥까닥하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아기 오리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먹지조차 못하는 비둘기의 모습은 이미 아기 오리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말린 것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결국 아기 오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고, 비둘기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둘이서 사이좋게 반씩 나눠먹는 장면이 좋지 않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애초에 비둘기와 원해서 반씩 나눠먹는 거면 모를까, 그 난리 부르스를 다 치고 난 후에 얻는 결과가 이거라면, 난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미 그 과정에서 비둘기의 에너지 낭비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이건 비둘기의 패배다. 결국 핫도그 하나를 다 먹지 못했기 때문에, 비둘기는 다음에 또 핫도그를 발견하더라도, 이번에 못 이룬 욕망 때문에 또 한 개를 다 먹으려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 나타나면 뺏길까봐 경계할 것이다. 아기 오리한테 한 번 데인 경험이 있으니, 그 다음엔 더 극렬하게 저항하겠지. 비둘기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 아마 자기한테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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