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넌 혼자가 아니야"(로저 뒤바젱/비룡소)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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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베로니카가 처음 농장에 온 날, 베로니카는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고,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베로니카가 가진 생각의 건강함을 말해주는 증거다. 낯선 곳에서 낯선 친구들을 처음 만날 때 취하는 나의 태도, 그것이 내가 세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더 나아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시선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이다. 베로니카는 낯선 농장에 대한 경계심, 불안함, 두려움 같은 것을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의미로 농장에 처음 나타난 베로니카를 보는 다른 동물들의 시선을 살펴보자. 제일 먼저 개 노이지가 사납게 짖어대며 “쟨 누구지?”라고 말한다. 개는 낯선 존재가 나타나면 일단 짖기부터 한다. 게다가 사납게 짖어댔다는 걸 보면, 일단 큰 경계심이 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는 겁이 많은 짐승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 온 존재에 대한 호기심은 충분히 가질 만하다. 일단 경계는 하지만 누구일까 궁금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고양이 코튼이 “저 커다란 입 좀 봐. 저 정도면 돼지도 한입에 꿀꺽하겠어.”라고 말한다. 고양이는 농장 동물들 중에서 체구가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그러니 당연히 베로니카를 처음 봤을 때, 그녀의 엄청난 덩치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커다란 입 사이즈에 주목했고, 하마가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가장 큰 동물은 돼지일 거라고 추측했다. 상대방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말 스트로가 “쟤는 하마야. 거리에 붙은 포스터에서 본 적이 있어. 하마는 서커스단에 있어야 되는 거 아냐?”라고 말한다. 말은 농장을 나와 거리를 다녀본 경험이 있고, 거기서 하마가 나오는 서커스단의 포스터를 본 모양이다. 그나마 농장 동물들 중에서 가장 식견이 많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자기가 보고 안 것 정도가 전부이다. 서커스단 포스터에서 봤기 때문에, 하마는 서커스단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네 번째로 암소 클로버가 “쟤도 농장에서 살아?”라고 묻는다. 암소 클로버에게는 소속이 중요한 모양이다. 하마도 농장 동물의 카테고리에 속할 수 있는지, 하마가 농장에 있어도 되는 건지, 앞으로 하마를 친구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암소에게는 자신이 속한 ‘농장’이라는 큰 틀이 우선인 걸로 보인다. 소속되느냐, 소속되지 않느냐, 속하느냐, 속하지 않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다.


가장 문제적 인물이 바로 암탉 아이다이다. 그녀는 베로니카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 “난 쟤가 별로 맘에 안 들어. 쟤는 닭도 아니고, 오리도 아니고, 소도 아니잖아. 양도, 돼지도, 당나귀도, 염소도, 거위도, 말도, 고양이도, 개도 아니지. 하마는 농장에 어울리지 않아.” 그녀는 베로니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무조건 베로니카가 맘에 안 든다고 선포해버린다. 그 이유는 그녀가 농장에 있는 그 어떤 동물들과도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다의 다른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농장 동물들 중에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 (물론 거위 부부, 닭 부부가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다 다르긴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고, 베로니카는 오늘 처음 왔기 때문에 그 ‘다름’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암탉 아이다의 베로니카에 대한 단정적인 평가에 다른 동물들은 아무 생각 없이 다 동조해버리고 만다. (원래 목소리 큰 사람이 최고라는 얘기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베로니카의 죄가 있다면, 새로 온 죄,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죄인 것이다.


베로니카는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성품대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지만, 친구들은 집단 따돌림 모드에 들어선다. 그걸 주도하는 건 역시나 암탉 아이다이다. “하마가 큰소리로 하는 말 들었어? 안녕, 좋은 아침이야! 라니, 걘 우리가 자기 친구인 줄 아나 봐. 정말 웃겨!” 암탉 아이다는 언제나 평가를 내리곤 한다. 순전히 자기 생각이면서, 그게 마치 대단히 객관적인 증거인 마냥 먼저 얘기해버린다. 다른 동물들은 자기 생각도 없이 그런 아이다의 확고한 평가에 우르르 동조해서는, 대화를 그쪽으로 몰고 가 버린다.


재밌는 사실은 맨 처음 베로니카가 농장에 왔을 때도, 그리고 동물들이 베로니카에 대해 수군거릴 때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암거위 피튜니아, 수거위 찰스, 수탉 킹, 양, 아기 돼지, 오리이다. 이 중에서 양, 아기 돼지, 오리는 이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가만히 침묵하는 자들의 태도도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무관심일 수도 있고, 귀찮음일 수도 있고, 동조하기 싫어하는 성격일 수도 있고, 아님 그저 말이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일단 지켜보면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마음이 아픈 베로니카가 일주일씩이나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베로니카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온 동물이 바로 암거위 피튜니아였다는 사실이다. 말없이 조용히 있던 동물 중 하나.


더 재밌는 사실은 암거위 피튜니아 외에 베로니카를 몰래 들여다보고 온 동물이 하나 더 있는데, 놀랍게도 암탉 아이다였다. 아이다는 베로니카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왜 그런 걸까? 모든 싫어함에는 좋아함, 혹은 관심이 먼저 상정되어 있다.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대상을 싫어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다는 무조건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배척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누구보다 강했을 것이다. 반면에 암거위 피튜니아는 베로니카에 대한 다른 동물들의 생각과 평가, 판단에 대해서 뭐라 가타부타 하진 않았지만, 조용히 자신만의 생각과 평가, 판단을 키워왔을 수도 있을 거란 추측을 할 수 있다. 직접 보고, 직접 겪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웃기는 건, 베로니카를 들여다보고 오는 게 또 하나의 유행이 되자, 나머지 동물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들고 우르르 쫓아가서 베로니카를 보고 오고는, 베로니카에 대해 말하면서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 왕따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건 항상 암탉 아이다 같은 주동자이지만, 그것이 유지되고 반복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생각 없이 주동자를 쫓는 나머지 동물들이다. 자기 생각과 판단이 없고, 남의 생각과 판단에 휘둘리는 인물들. 이들 때문에 결국 주동자의 옳지 않은 행동이 강화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어쩌면 피튜니아는 항상 모든 것을 선도하고 싶어하는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말, 자신의 행동에 좌지우지되는 동물들을 보면서 거기서 권력을 느끼고, 거기서 자부심을 갖게 되고, 그럴 때 살아있다고 느끼는 건 아닐지? 동시에 남몰래 베로니카를 신경 쓴 걸 보면, 베로니카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이 강했을 수도 있고, 혹시 베로니카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것도 궁금하다. 자기 주도로 왕따 시켰다가 잘못 하면 하마가 죽어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경이 쓰이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럼 모든 것이 자기 탓이 되면서 화살이 자기한테 쏠릴 수도 있으니까.


하여튼 이 이야기에서 가장 문제적 존재는 바로 암탉 아이다이다. 막말로 베로니카가 자기한테 뭘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자기에게 불편한 느낌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베로니카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이다는 앞으로도 수 틀리면 얼마든지 또 베로니카를 왕따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금 베로니카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조만간 어마어마한 질투심이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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