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다. 두려움에 대한 솔루션. ‘숲 속에서’야말로 우리가 가진 두려움의 실체를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솔루션 책이다.
물론 웬만한 사람들은 이 책의 주인공처럼 감히 숲 속에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숲 속에 갈 용기가 있었다면 애초에 두려움 따위에 휘둘리면서 괴로워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참 좋다. 이 책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같은 선상의 마음으로 초반부 내용을 할애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주인공 ‘나’는 ‘어느 날 밤, 그 두려움이 너무 무겁게 나를 짓눌러 더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라는 지점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두려움을 더는 참을 수 없게 되면, 그 지경까지 이르게 되면, 사생결단의 순간이 오는 것이다. 이대론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너무너무 괴롭기 때문에, 뭐라도 해서 내가 죽든, 네가 죽든,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겠다고 마음먹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하여튼 이래서 뭘 하든 제대로 끝을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일종의 바닥을 치는 경험 말이다. 두려움의 끝에 이르거나, 미친 사랑의 극단에 가보거나, 욕심의 구렁텅이의 끝까지 닿아봐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그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 상태가 제일 나쁘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그냥 이유도 모른 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상태. 여기선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제대로 괴로워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나’는 밤마다 숲에 대한 악몽을 꾸고, 심지어 그 두려움이 낮에도 따라다니면서 아무것도 못하게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숲의 실체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나’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다. 가슴이 콩콩 뛰고, 위축되고, 걱정되고, 후회도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공포가 절정에 이르고,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찰나까지 가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왜? 두려움에 압도당한 채로는 어차피 살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안락한 집에 앉아서 숲에 대해 두려워하는 거나, 숲에 와서 두려워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그럴 바엔 숲의 실체에 대해 알기나 하고 무서워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잘 모르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제일 두렵다. ‘나’는 숲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무서워 보이니까, 무서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무서워하다 보니 점점 더 무서워졌고, 숲은 실질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숲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제대로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럴 때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숲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우리는 덜 두려워진다.
연애를 할 때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때는 불안하고, 두렵고, 때로는 무섭기도 한다. 어떻게 반응할지,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서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이 이해되고, 반응이 예상되고, 행동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하려면 당연히 무섭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축적된 데이터도 없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옳을지도 알 수 없다. 낯선 시스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하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다. 하지만 일단 시작만 하면 배워갈 수가 있다. 모르는 건 물어보고, 낯선 건 배우면서 손에 익게 된다. 어렵고 어색했던 것에 조금씩 적응하다 보면, 어느새 처음보다 훨씬 두렵지 않게 된다.
두려움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숲을 두려워했던 ‘나’가 숲 안에 들어가 보고서야 비로소 숲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었듯이, 우리는 스스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우리는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 즉 무지로부터 탈출해야만 비로소 괜찮아질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가 못 미덥고 무섭다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야 한다. 무서운 상사가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서운 물건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이리 저리 만져봐야 하고, 무서운 상황이 있으면 반드시 한 번은 직면해서 겪어내야 한다.
두려움은 짙은 안개 같은 것이다. 저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 숨 막히는 회색빛 안개. 거기에 휩싸이면 내 존재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고, 안개에 먹혀버릴 것만 같고,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주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 말이다. 그건 마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에서 주인공들이 아렌델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마법의 숲 앞으로 갔을 때, 그들을 자욱이 감싸는 하얀 안개 속으로 한 발짝 내딛는 그 장면과 비슷하다. 안개를 뚫고 들어가면 그 안에는 생생한 현실이 존재한다. 내가 몰랐던, 그러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가졌던 두려움이 얼마나 아무런 근거도 없고, 허무맹랑하고, 막연한 것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두려움은 스스로 덩치를 부풀릴 뿐, 그야말로 안개처럼 실체가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허상. 일종의 내가 생각으로 만들어낸 귀신과 같은 것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숲에 가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거대한 핑계, 내가 행동하지 않아도 되게끔 나를 감싸주는 어두운 구름 같은 것이다. 그건 분명 행동하기 싫어하는 내가 만들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그걸 까먹고 먹구름이, 짙은 안개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움은 망상이다.
물론 실질적인, 진짜 두려워할 것들도 있다. 숲에 들어가면 짐승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독거미에 물릴 수도 있다. 그런 건 진짜 위험들이다. 그런 건 조심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고, 재빨리 피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사는 동네는 자기가 손바닥 보듯이 훤히 잘 알고 있으니까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숲은 하나도 모르니까 무서운 거고. 하지만 다 아는 동네라서 거기는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고 착각이다. 위험 요소는 안락한 내 집에도, 동네에도, 잘 아는 사이에도 어디나 존재한다. 따지고 보면 숲속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위험의 양과 질도 결국 거기서 거기일 확률이 높다. 오히려 잘 안다고 전혀 경계하지 않고 안심하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고. 암튼 두려움은 순전히 내 인식, 감정에 기반한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실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망상에 가깝다는 걸 주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