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코 원숭이가 화창한 날씨에 밀림에서 산책을 하면서 우산을 펴 들고 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우습게 보인다는 걸 잘 알면서도, 우산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산 없이 이 좋은 햇빛을 즐기고 싶어하면서도. 도대체 왜? 갑자기 비 맞는 게 싫어서. 이 개코 원숭이는 행여라도 갑자기 내리는 비를 맞아서 젖어버리는 게 두려워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언제나 우산을 쓰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의 실체이다. 우리를 우습게 보이게 만들고, 불편하게 하고, 현재 누릴 수 있는 것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남이 보기엔 매우 한심하고 어리석지만 정작 두려움을 가진 본인은 도저히 어쩔 수가 없는 것. 그것이 ‘두려움’이다.
이걸 현실에 적용한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극단적인 예부터 생각해본다면 밖에 나가서 마주치게 될 위험 요소가 두려워서, 집 안에만 머무르려고 하는 사람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갔다가 갑자기 달려든 차에 치이거나, 끈 풀린 개에 물리거나, 떨어지는 간판에 머리를 맞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혹은 사기꾼, 강도, 불량배, 사이비 신도 같은 나쁜 사람들을 만나 인생이 꼬이거나 육체적으로, 금전적으로 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우리가 겪는 사건 사고 중에서 많은 부분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화장실에서 미끄러져서 부상을 당하는 것, 요리하다가 손을 다치는 것이 다반사고, 컴퓨터로 주식을 하면서도 사기를 당할 수 있고, 핸드폰이나 전화를 통해 보이스 피싱을 당할 수도 있고, 문에 부딪혀서 머리를 찧거나 심지어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서 넘어지는 경우도 많다. 더 나아가 가족 간의 존속 살해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데도 과연 밖보다 집이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려움’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현실적인 사고. 일명 팩트 체크. 두려움은 과대망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확률적으로도 그렇게 염려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왠지 나한테는, 나한테만, 그런 나쁜 일들이 엄청나게 많이, 자주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비이성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모르는 것은 그렇게 무서우면 이성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주의를 하거나, 방비책을 마련하면 될 텐데, 그런 것엔 또 무지하다. 개코 원숭이의 경우에도 계절이나, 통계적 정보, 혹은 비가 올 것 같은 징조들을 미리 잘 예감하면서 비에 대비해도 될 텐데, 스스로는 안전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늘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을 택하고 말았다. 더 나아가 비에 젖는 게 개인적으로 아주 많이 싫을 순 있다. 그러나 비를 좀 맞았다고 해서 죽지도 않고, 그리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님을 안다면, 그게 그렇게 두려워할 일일까?
내가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일 안타까운 부분은 이것이다. 그들은 만일에 생길지도 모를 두려운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모든 불편한 상황을 감수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여야 하고, 항상 무거운 걸 들고 다녀야 하고, 햇빛도 못 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가 없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한다. 나는 바로 그 엄청난 인내심, 어쩔 수 없는 것을 참아내고 견디는 그 훌륭한 능력을 좀 다른 방향으로 쓰길 바란다. 어떻게? 우리네 삶에선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것 같은, 내가 원치 않는 일들이 언제, 어디서든 늘 생길 수 있다는 것, 막을 수도 없고, 어쩔 수도 없는 것이 기본값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그 능력을 썼으면 좋겠다. 두려워해봤자 소용없고, 닥치면 당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 쪽으로 그 에너지를 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