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고양이가 ‘진짜 친구’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친구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바로 고양이라고 답을 했으나, 고양이에겐 할머니가 ‘진짜 친구’는 아니었던 거다. 이 사실이 할머니를 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짐작이 돼서 마음이 아프다. 서로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고양이 한 마리를 친구로 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 어리고 젊은 고양이는 할머니 한 분으론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진짜 친구’를 갖고 싶다는 고양이의 욕망. 그러나 과연 그가 생각하는 ‘진짜 친구’란 어떤 상대였을까?
‘진짜 친구’를 추구한다는 것은 ‘가짜 친구’가 있다는 소리다. 이 진짜와 가짜는 오직 고양이의 마음속에서만 구분이 되는 것인데, 내 생각에 그 ‘진짜 친구’는 정확한 실체가 없는 그냥 그가 생각하는 모든 좋은 것이 다 응축된 환상의 존재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의 어떤 기준은 있어서, ‘진짜 친구’가 어떤 건지는 잘 설명하지 못해도 ‘진짜 친구’가 아닌 것은 금방 가려낼 줄 안다. 할머니는 ‘진짜 친구’가 아니고, 뱀도 ‘진짜 친구’가 아닌 것이다. 왜? 고양이가 볼 때 그들로는 만족이 안 되는 면이 있고, 또 그들에게는 고양이가 싫어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원하는 건 뭘까? 날마다 같이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쥐도 잡을 수 있는 그런 친구다. 즉, 자기와 비슷한 상대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고양이랑 같이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그리고 뱀도 마찬가지다. 그와는 신체 구조가 달라서 그가 원하는 놀이를 함께 할 수가 없다. 즉 기능적으로 치명적인 하자가 있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바로 그런 친구는 아닌 것이다. 아무리 그에게 잘해주고, 마음을 써주고, 늘 함께 해줘도, 고양이는 그런 거 말고 다른 것, 함께 그가 원하는 놀이를 할 상대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로는 도저히 만족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 멀리서 자기와 같은 부류인 여자 고양이들을 만났을 때 그는 뛸 듯이 기뻐한다. 그들 앞에서 멋있게 보이려고 약간의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함께 이야기 좀 하지 않겠느냐고 솔직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 그토록 원했던 동류의 고양이였으나, 안타깝게도 같은 고양이들 중에서도 그와 마음이 결이 같은 상대를 찾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그들은 좋은 가문의 고양이만 사귀는 타입이었고, 그들의 기준에 고양이는 그저 애송이일 뿐이였다. 다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친구가 있고, 그 기준이 서로 부합되면 정말 좋겠으나, 대부분은 안 맞기 일쑤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날 싫어하고, 나를 원하는 사람은 내가 싫은 것이다.
여기서 진짜 어려움이 도래한다. 과연 고양이는 현 상황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내 타입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할머니와 뱀이 나한테 잘해주니 그들과 친구를 하면 되는 것인가? 그럼 고양이는 행복해지나? 아마 아닐 것이다. 고양이의 마음속에는 이들이 고맙고 좋긴 하지만, 여전히 난 진짜 친구를 갖고 싶어라는 마음이 항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친구도 아니면서 고양이는 왜 할머니와 뱀 곁에 계속 머무는가? 외로우니까. 진짜 친구가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당장은 없으니 그동안에 혼자 외롭게 있으니 누구라도 있는 게 더 나은 것이다. 일종의 대타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100% 만족시킬 누군가,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언제나 그 환상에 사로잡힌 채, 현실에서 자신이 가진 것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지금은 형편상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꼭 진짜 친구를 찾아 완벽하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가짜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면서 그냥 만족하는 척 하는 자신을 경멸하면서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100% 완벽한 나의 진짜 친구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건 로또보다 더 희귀한 확률의 있을 수 없는 기적 같은 것이다. 모든 면에서 나와 다르게 커온 누군가가 어떻게 나랑 100% 맞을 수가 있겠는가? 아예 처음부터 나의 완벽한 친구로 맞춤형으로 제작된 것이라면 모를까,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완벽한 친구에 대한 환상, 그것 자체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원형이다. 단순히 친구뿐만이 아니다. 완벽한 남편, 완벽한 아내, 완벽한 선생님, 완벽한 사장님, 완벽한 부하직원, 완벽한 학생, 완벽한 아이, 완벽한 부모, 완벽한 정치인, 완벽한 사업가, 완벽한 지도자... 그런 건 없다. 누구나 다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있고, 어느 누구 하나 완벽하고, 흠 없고, 완전무결하지 않다. 그게 팩트다. 이걸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실망하고 실망하고 또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꿈꾸는 자여, 깨어나라. 완벽한 진짜 친구? 그런 건 없다. 내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 게 그게 당연한 거고, 그런 점들을 서로 조율하면서 맞춰가는 것이 진짜 친구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일 뿐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잘 조율된 친구를 보면서 어느 날 문득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아! 이 사람이 나의 진짜 친구였구나!’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