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원을 다 이루어주는 조약돌을 갖게 되다니, 당나귀 실베스터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인생사는 새옹지마인 듯하다. 조약돌 때문에 바위가 되어 부모와 생이별을 했다가, 또 조약돌 덕분에 다시 당나귀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의 키 포인트는 요술 조약돌을 손에 쥔 실베스터가 언덕에서 사자와 마주쳤을 때이다. 사자는 당나귀를 잡아먹을 수 있으니, 어린 당나귀인 실베스터가 겁에 질리는 것은 당연하다. 평소의 실베스터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실베스터의 손엔 무엇이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요술 조약돌이 있다. 사자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무엇이 온다 한들, 실베스터는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해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상태였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실베스터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새하얘졌다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순간적으로 생각이 마비되고 온 몸이 얼어붙었다고 해야 할까? 본능적인 공포로 말미암아, 실베스터의 이성이 마비되어 버렸고,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소원을 말하게 된다. “내가 바위로 변했으면 좋겠네!”
아마 이게 평소의 실베스터의 마음 상태였을 것이다. 갑작스런 위험에 처했을 때, 실베스터가 바랄 수 있는 거라곤 돌로 변해서 위험을 피하고 싶은 그런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실베스터가 얼마나 겁이 많은지 알 수 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실베스터는 본능적으로 어디로 피해야겠다거나, 어느 쪽으로 뛰어야겠다거나, 사자를 말로 구슬려보거나, 꾀를 써본다거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고, 난 이제 죽었구나!’라고 바로 포기해버리거나,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리고 싶은 생각이나 하는, 굉장히 수동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사자 앞에서 어린 당나귀가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냐만서도, 그렇다고는 해도 하나뿐인 목숨, 생존을 걸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조금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뭐라도 살려는 투쟁은 해봐야지. 안 그런가?
나는 요술 조약돌이 실베스터에게 있어서는 ‘돼지 목에 진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베스터는 요술 조약돌의 파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그릇이 못 된다. 요술 조약돌은 그의 마음이 원하는 것, 마음보다도 더 깊은 그의 무의식이 원하는 것까지도 무엇이든 알아채고 현실로 이루어주는데, 실베스터의 마음속엔 두려움이 너무 많아서, 자칫하면 그쪽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술 조약돌은 사자만큼이나 실베스터에게 위험한 물건이 될 수도 있다. 실베스터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현실화되게 하는 요술 조약돌만큼 무시무시한 게 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실베스터가 집으로 돌아와 요술 조약돌을 금고에 넣어둔 것이 최고로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조심히 다뤄야 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나에게 실베스터의 요술 조약돌이 있다면, 내 마음속의 어떤 소원이 이루어질까?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할 마음의 소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누군가에 대한 미움,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불만, 혹은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 누군가를 일부러 골탕 먹이고 싶어하는 마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쉽게 다 얻으려는 욕심 등등, 걷잡을 수 없는 패망의 지름길이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내 욕심이 항상 다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내 욕심은 오직 나한테만 좋은 일일 가능성이 크기에 말이다. 게다가 무의식에 부정적인 의식들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요술 조약돌은 그야말로 재앙이 될 것이다.
결국엔 요술 조약돌이 있건 없건 간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내 마음속, 무의식 속에 무엇이 있느냐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알고 조절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삶, 모두가 꿈꾸는 그런 삶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오는지, 마이더스 왕의 사례에서도 이미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치면 참 웃기는 거다. 우리는 끊임없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세상을 꿈꾸지만, 내 욕망이라는 것 자체가 생각만큼 나에게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나에게 해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것이 바로 내 욕심, 내 욕망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한 성찰이 먼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