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에 온 손님"(황선미/김종도/비룡소)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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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애초에 우리 마음에 이런 두려움을 심어주는 게 바로 부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방울의 부모는 할머니 댁에 가면서 금방울에게 “낯선 손님에게는 함부로 문을 열어 주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금방울이 이미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낯선 손님’에 해당되고 만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 다 조심해야 하는 적!’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버린다. 낯선 손님의 성별, 종족, 그가 처한 상황, 이런 것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차단! 이게 진짜 두려움인 것 같다. 모르는 것은 무조건 경계하고, 멀리하고, 연을 맺어선 안 된다는 두려움 말이다.


비록 어리긴 해도 금방울에게는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를 해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대상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선한 이웃을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착한 마음도 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을 때, 놀라서 일단 문고리를 잠그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 “누구세요?”라고 물어볼 여지만 있었어도, 금방울은 비에 젖은 오소리 아줌마와 아기를 집 안에 들여 함께 따뜻한 밤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에, 금방울은 그가 누구인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경계하기에만 바빴다. 상대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가 나한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먹고 밀어내는 형국이다. 금방울이 부모에게 주입받은 과도한 두려움 때문에, 오소리 모녀는 차가운 비를 맞고 빈 집에서 밤새 떨어야 했다. 두려움이 많은 세상에서는 자신이 피해를 입을까봐 남을 도와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의 두려움에도 근거는 있다. 실제로 낯선 이에게 당하는 피해가 적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그만큼 위험 요소를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들을 보면, 통계적으로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 의해 자행되는 면식 범죄가 훨씬 더 많다. 그러니까 낯선 이라고 해서 무조건 경계를 해야만 한다는 정당한 근거는 많지 않은 셈이다. 사실 낯선 이를 두려워하라는 것은 세상을 두려워하라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고, 내가 아는 것 안에서만 안심할 수 있다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힘들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모의 두려움은 아이들의 세상을 한정 짓고,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마냥 어리게만 본다. 그래서 걱정이 많고, 무조건 조심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세 자매의 맏이인 금방울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약하고 뭘 모르는 존재가 아니다. 일단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고, 부모 대신 동생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조심성도 있다. 아이다운 걱정과 두려움이야 당연히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못하고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못하지 않는다. 잠들지 못하는 작은 방울을 위해 밤에 혼자서 빗속을 뚫고 빈 집으로 달려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빈 집에서 덩치를 발견한 후, 놀라서 돌아왔다가, 빈 집으로 다시 한 번 가는 것은 진짜 진짜 큰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엔 단순히 담요를 가지러 간 거지만, 두 번째로 갈 때는 거기에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동생을 위해 한 번 더 용기를 짜낸 것이다. 이번엔 어떻게든 담요를 가지고 가야겠다는 굳은 일념이 금방울을 빈 집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하지만 금방울이 진짜 놀라운 것은 그때부터였다. 덩치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고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하는 것을 보고, 금방울은 담요가 어쩌면 작은 방울보다 덩치에게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침대 속에서, 단지 애착 담요가 없어서 칭얼거리는 작은 방울과 바람이 쑹쑹 들어오는 차가운 빈 집에서 젖은 채 떨고 있는 덩치 중에서 누구에게 담요가 더 필요한 것인지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한 것이다. 애착 담요가 없어서 잠들지 못하는 작은 방울이 안쓰럽고, 작은 방울이 칭얼거리면 본인이 피곤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금방울의 선택이 정말 놀라웠다.


담요를 가져가길 포기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심지어 금방울은 도로 집에 가서 덩치를 위한 장작과 따뜻한 차를 가져오기까지 한다. 동생들이 있는 집엔 들일 수 없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비 내리는 밤에, 그것도 혼자서, 자기 집과 빈 집을 오가는 수고를 세 번이나 할 수 있는 이 꼬마 금방울은 얼마나 대단한가! 금방울의 예상대로 작은 방울은 비록 담요는 없었지만 결국 지쳐서 잠이 들었고, 금방울의 판단과 선택 덕분에 오소리 모녀도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조금씩 양보해서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세상에서 외면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본다. 세상에 나를 해하려는 무서운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나랑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으면서도, 그저 자신의 화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남에게 폭력을 써서 화풀이를 하거나,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자들을 질투해서 뺏으려고 하거나, 힘이 약한 자를 괴롭히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간의 경계심을 가질 필요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나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도구 이상으로 심해질 경우,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모든 것들을 막연히 두려워하게 된다. 그냥 나와 같은 멀쩡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괜시리 이상한 눈으로 의심하면서 쳐다보게 된다. 겉은 멀쩡해보여도 속엔 뭘 감추고 있을지 모르니, 일단 경계하고 보는 게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 대해 닥치고 의심부터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에너지를 뺏기는 스트레스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하니 그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말이다.


게다가 더 끔찍한 것은 그런 무차별적인 두려움 속에서 우리가 놓치는 게 정말 많다는 사실이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기, 진짜 좋은 사람들을 밀어내기, 진짜 좋은 기회들을 놓치기, 마음을 열고 서로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순간들을 거부하기 등등. 피해막심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항상 같이 있다. 나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지만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원래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원래는 나쁜 사람이었는데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쁜 것을 거부하다 보면 좋은 것도 함께 거부되고 만다. 난 그저 나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게 올 수 있는 모든 좋은 기회들도 차단하게 된다. 일체의 위험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다. 기회는 위험 속에 있기 때문이다. 진주를 꺼내려면 조개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야 한다. 하지만 조개에게 물릴까봐 무서워하면 결코 진주를 얻을 수 없다.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삶에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있다는 것. 아무런 위험 없는 안전한 기회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은 잘 안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늘 품고 있다. 그런 본질적인 원리를 받아들여야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시도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이 두려운 가장 큰 이유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모든 것은 유동적이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가장 두려운 위험일 테지. 변하지 않는 것, 안전한 것을 찾는 이들에게 이 인생은 거대한 혼란과 위험 구덩이에 불과하다. 그러니 삶이 살아질 리가 없을 밖에. 두려움은 우리의 눈을 가린다.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막상 보면 괜찮을 것을 보지 않고 계속 겁내게 만든다. 삶을 살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삶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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