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토는 어째서 자기가 모든 걸 가졌다고 믿게 되었을까? 혹시 파우스토의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을까? 이 세상 모든 것이 네 것이라고? 마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아빠 사자 무파사가 아들 심바에게 절벽 아래 보이는 모든 것을 네가 다스릴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만약 파우스토가 그 말을 정말로 믿었다면, 어째서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확인을 하는 일이 필요했을까? 다스리거나 관리하거나 살펴보는 것 정도면 족했을 텐데, 어째서 “넌 내 거야!”라고 선언하고 나서, 상대로부터 “네, 전 당신 거예요.”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을까? 확인을 받아야만 안심이 되는 거라면, 그건 역으로 이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의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어째서 파우스토에게는 ‘소유’, ‘내 것’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파우스토의 행동 중에 소유와 관련해서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은 아마도 맨 처음 꽃을 만났을 때였을 것 같다. 파우스토가 “넌 내 거야!”라고 말했을 때, 꽃은 곧바로 “맞아요, 난 당신 꽃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파우스토는 꽃을 똑 따서 자기 양복 주머니에 꽂는다. 내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장면에서 조금 소름이 끼쳤다. 그림책의 텍스트에는 나와 있지 않고, 오직 그림으로만 표현된 장면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누군가의 소유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상대방이 나를 아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훼손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고 남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나 자신을 순순히 내어줄 때의 결과라는 게 이런 파국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에서 차은재(이성경 분)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하자, 오히려 그 책임을 물으며 병원에서 쫓아내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 그림책에서 제일 재밌는 건 파우스토의 어처구니없고,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행동보다는, 그런 파우스토를 상대하는 대상들의 반응이다. 꽃은 “맞아요, 난 당신 꽃이에요”라고 말했고, 양은 “아마 그럴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나무는 “아, 그래요. 당신 것일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했고, 호수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산은 “아니, 나는 내 거야.”라고 말했고, 바다는 “너는 나를 가질 수 없어”라고 대답했다. 이 반응들은 각 개체마다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나를 허용하는 정도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 미숙하고 어리고 무지한 상대를 대하는, 처리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꽃이나 양, 나무처럼 그 사람 수준에 맞게, 그 사람이 원하는 답을 줘버릴 수도 있다. 그냥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저렇게 고집스럽게 우기니 ‘네 맘대로 생각하세요’라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내가 피곤하니까 오래 상대하기 싫어서 ‘예~ 예~’ 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호수처럼 아예 일체의 대답을 회피해버리는 수도 있겠고.
하지만 산은 달랐다. 산은 파우스토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아마도 산은 파우스토처럼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믿는 대로 말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파우스토와 동등한 상태에서 말하는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의 생각은 달랐고, 파우스토는 그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네가 맞거나, 내가 맞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지, 나와 다른 생각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파우스토가 난리를 치는 걸 보면서도 산은 버텼다. 하지만 파우스토가 끝까지 박박 우겨대자, 결국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승복하고 만다. 사실 대부분은 산처럼 이유야 어쨌든 결국 말을 바꾸기 때문에 파우스토 같은 인물들이 이런 패악질을 계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끝까지 우기면 이기니까. 파우스토는 득의양양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끝판왕 바다 앞에 선 파우스토.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해왔던 대로 똑같이 화내고 우기고 버텨서 바다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그 방법이 늘 통해왔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파우스토에게 논리적으로 대응한다. 그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그러면서 파우스토의 무지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실상 그는 아는 게 전혀 없다. 그가 아는 거라곤 우기는 거 하나 밖에 없다. 만약에 파우스토가 조금의 이성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이었다면, 바다에게 질문을 받는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도 있었을 텐데, 이 불쌍한 파우스토는 바다의 질문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심지어 바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상태에서,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발을 구르기 위해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수영할 줄도 모른 채 바다에 빠져버린 파우스토를 향한 바다의 대응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바다는 파우스토가 물에 빠져 죽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이 그림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리 애써도 대책이 없는 사람은 그냥 포기하는 게 상책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저러다 죽게 그냥 내버려둬!” 이런 느낌?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땐 바다는 바다일 뿐이라서 어쩔 도리가 없었겠구나 싶다.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파도가 물에 빠진 파우스토를 건져 올린다거나 하는 일은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으니 말이다. 바다가 어떤 곳인지는 파우스토가 미리 알았어야 하는 상황이다. 바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뛰어들었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무지가 자초한 상황일 뿐. 바다가 그를 구해줘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방법도 없는 것이다. 바다가 파우스토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파우스토가 대책 없는 짓을 해서 자멸한 것이다.
다시 맨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파우스토는 어째서 자기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믿게 되었을까? 아니, 파우스토는 어째서 모든 걸 가지고 싶어했을까? 어쩌면 파우스토는 ‘내가 가진 것이 바로 나’, ‘소유=나’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바다의 질문처럼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려면 자기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았어야 했다. 파우스토는 자기가 가진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졌다는 것 자체로 만족했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하는 소린지, 아니면 그냥 거짓으로, 입바른 소리로 ‘그래, 난 네 거야’라고 말하는 건지도 구별하지 못했다. 아...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피상적인 인간을 보았나! ‘참으로 어리석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무식이 통통 튀긴다고나 할까? 그래서 파우스토가 너무나 안쓰럽고 딱하고 불쌍하다.
이 세상에 파우스토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수많은 파우스토 같은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과연 어떤 자세로 대응해야 할까? 파우스토 같은 사람도 망치에 머리를 맞은 듯이 충격을 받아, ‘아, 혹시 내가 뭘 모르는 게 아닐까?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자문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무지한 자들의 최후가 결국 물에 빠져 죽는 것이라면,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바다가 어떤 식으로 대응했다면 파우스토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것이 내게 남은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