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놀이터랑 별로 친한 스타일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글짐 같은 건 올라는 가지만, 내려오는 게 무서워서 그렇기도 했고, 그네의 경우도 재밌긴 하지만, 몇 안 되는 그네를 차지해야 하는 경쟁이 싫어서 피했던 것 같다. 미끄럼틀도 순서를 기다리는 게 싫었다. 앞에서 느리게 가도 짜증나고, 내 뒤로 누가 급하게 내려와서 부딪히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시소. 혼자서는 절대 탈 수 없는 놀이 기구. 제일 꺼려했던 놀이 기구이다. 굳이 시소 따위 안 타고 돼, 라는 마인드?
그렇다고 시소를 한 번도 안 타본 건 아니다. 다만 늘 같이 타는 애들이 내 맘에 들지 않았다. 나랑 맞춰서 재밌게 타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더 타고 싶은데, 재미없다고 훌쩍 먼저 일어나서 가버리면 상처를 받았다. 또 내가 원하는 리듬으로 타면 좋은데, 자기 멋대로 힘을 줘서 쿵쿵 올렸다 내렸다 해버리면,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자존심이 상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남의 힘에 의해 왔다갔다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가 하면 또 내 성에 맞지 않는 상대도 있었다. 그런 약한 아이를 만날 때면, 좀 전에 내가 싫어했던 그 아이처럼 더 힘주어서 발을 굴러서 그 애를 울게 만들고 싶기도 했다. 거참... 쓰다 보니 아주 고약한 심보로구만?
암튼 시소는 그런 존재였다. 함께 탈 수밖에 없는, 그러나 함께 즐겁게 타기가 아주 어려운, tricky한 도구랄까? 그래서 고정순 작가가 이 시소를 소재로 그림책을 쓴 것에 대해 감탄을 보내고 싶다. 인간사에서 다른 인간과 어울려서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모든 경우들이, 다 이 시소를 함께 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와 체급이 너무 달라도 안 되고(너무 가볍거나, 무겁거나), 상대가 원하는 것이 나와 너무 달라도 안 되고(빨리 움직이고 싶거나, 느리게 움직이고 싶거나), 무엇보다도 서로의 눈을 보며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기본적인 배려가 장착된 인간들만이 함께 즐겨볼 수 있는 놀이기구인 것이다.
동시에 시소는 한계가 명확하다. 시소의 길이 만큼 높이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다. 그네는 줄로 되어 있어서 타는 사람의 의욕이나 기술만큼 꽤 유연성 있게 높이 올라가는데 비해, 시소는 한계가 정해져있다. 딱 거기까지만. 더 올라가고 싶어도 한계가 있고, 올라가면 반드시 그만큼 도로 내려와야 한다. 내가 올라가면 그 다음엔 반드시 남이 올라가야 하고, 내가 내려가면 그 다음엔 반드시 남도 내려와야 한다. 어떤 의미에선 꽤 공평한 게임인 셈이다. 결국 시소의 즐거움이란 더 큰 자극이 아니라, 함께 오르락내리락 하는, 번갈아 누리는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최대치의 재미를 끌어내야 하는 놀이인 것이다. 무한 경쟁하는 종목은 아니라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조카들과 시소를 탈 때는 아이들이 무섭지 않도록 어른인 내가 강도를 조절한다. 자극을 원하면 있는 힘껏 올려주고, 겁이 많은 녀석인 경우엔 부드럽게 움직여준다. 시소의 한 쪽이 좀 더 어른이거나, 배려가 있는 경우, 그렇게 맞춰줄 수 있다. 그럴 때, 시소를 탄 나의 즐거움보다는 상대방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큰 즐거움일 경우가 많다. 아, 내가 그래서 시소를 싫어했었나? 내가 즐겁고 싶은데, 상대방이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만큼 즐거울 수 없는 놀이기구라서? 그러고보면 함께 시소를 타면서 즐거워했던 유일한 경험은, 어느 날 엄마, 아빠랑 산책 나갔다가 한 아파트 근처 운동장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엄마랑 함께 시소를 탔을 때였던 것 같다. 찾아보면 그때 찍은 사진도 남아있긴 할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즐거웠을까? 엄마가 언제나 나를 배려해주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