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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 Nov 21. 2019

경종을 죽인 것은 정말 연잉군인가

연잉군이 올린 부자 인삼차의 전말 - 뮤지컬 '경종 수정 실록'

"역사가 스포"


한 단어지만, 실화를 소재로 다룬 창작물들이 쉬이 빠지게 되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말이다. 조금만 고치거나, 고증에 엇나가도, 고증 오류 논란에 시달리기 쉽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역사 소재 극이 있다. 바로 조선의 20대 왕 경종의 이야기를 다룬 극, 극의 제목마저도 경종 수정 실록이다. (뮤지컬 경종 수정 실록 ~ 2019.1.12, 대학로 TOM 1관)


앓다 깨어나, 세제인 연잉군의 알현을 받는 경종의 모습, 부자인삼차를 올린 후 그는, 차를 들어 마시려는 형, 경종을 황급히 만류한다 - ⓒ뉴프로덕션




평범한 이과생이었던 내게, 경종은 그저 장희빈의 아들, 유약한 왕 정도에 지나지 않았었다. 아버지인 선왕 숙종과 후대인 동생 영조의 업적이 국사책 전반에 걸쳐 다뤄지는 반면, 짧은 재위 기간 탓 인지 그의 이야기는 잠시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았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 숙종이나 영조가 아닌 경종에 기반 해 작품을 개발했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극은 용상에 기대 서거나, 앉은(경종 역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른 디테일이다) 역사 속 이미지와 달리 지나치게 늠름한 왕 경종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경종의 모습 - 191029 커튼콜


극은 전반적으로 조선 제20대 왕 경종과 그의 동생이자 훗날 영조가 되는 세제 연잉군의 관계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경종은 대표적으로 독살설에 시달리는 왕 중 하나이고, 독살의 범인 혹은 배후로는 늘 훗날의 영조인 세제 연잉군이 지목되고는 한다. 보통의 독살설들이 야사 혹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반면, 연잉군과 경종의 관계에 있어서는 경종 수정 실록의 경종 4년의 기록, 그의 사망 전 며칠에 대한 부분에서 연잉군이 올린 게장과 생감, 그리고 부자 인삼차에 대한 내용이 쓰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1724년 7월 25일 내의원이 왕을 진찰함
1724년 8월 20일 게장과 생감을 먹음, 이후 고열과 설사에 시달림. 세제의 주청으로 (내의원의 반대에도) 부자 인삼차를 올림
1724년 8월 25일 37세의 나이로 조선 제20대 왕 경종 승하


경종이 승하 전 먹었던 음식 중 게장과 생감은 우리도 흔히 아는 음식인 반면(아는 만큼 게장을 먹으면 배탈을 일으키기 쉽다거나, 감을 먹으면 변비를 일으킬 수 있다던가 그래서 독소 배출을 지연시킬 수 있다던가 하는 수많은 카더라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며칠을 앓다 깨어난 왕에게 주청 드렸다는 부자 인삼차는 낯선 존재다 보니, 다들 부자 인삼차가 무엇인가 궁금해하곤 한다. 특히 잘 아는 인삼, 보약이나 보양의 느낌이 나는 인삼과 달리 이 부자라는 식물이 궁금해지곤 한다.

오늘의 연잉군(신성민 분) - 훗날의 영조가 세제시절 쓰던 군호가 연잉군이다 -191106 커튼콜


그렇다. 부자와 인삼은 모두 약재다. 특히 부자에 대해 누군가 묻는 다면, 아마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도 받았던 사약을 만드는 7가지 주재료 중 하나라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사약의 재료와 독살이라니,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가. 관극 중 전하께 부자 인삼차를 올리옵니다 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던 것도 이 부자에 대해, 특히 법제하지 않은 부자의 위험성에 대해 어설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방적 독약으로 몰린 부자, 그런데 실상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방문에서 감초만큼이나 많이 쓰이는 것이 이 부자다.


부자와 가장 많이 혼동하는 또 하나의 약제가 초오다. 초오나 부자 모두 미나리 아재 비속 바꽃과 식물의 뿌리다. 초오가 모근이라면, 초오를 심어 그 곁뿌리로 자라난 것이 부자로 일종의 자근인 셈이다. 즉 같은 활성성분은 가진다는 뜻이다. 같은 활성성분을 가지는 바꽃류의 식물 중에는 투구꽃도 있다. 영화 <각시투구꽃의 비밀>에 나오고, 아마존이나 열대 우림의 어딘가에서는 화살 독으로도 쓴다는 그 식물, 맞다.


이런 부자의 주 성분은 아코니틴(Aconitine)이다. 신경 내 전기 신호의 전달을 담당하는 이온채널에 붙은 채로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이 주 기능인 독성 알칼로이드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약재를 사람에게 먹인다고?


여기에 바로 기술이 있다. 한약재로 의료기관(한의원 등)에서 취급하는 부자 혹은 초오는 ‘법제’라 불리는 과정을 거친다.


법제는 독성 알칼로이드인 아코니틴을 아코닌으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만약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초오나 부자를 먹게 되면, 빈맥을 포함한 심실부정맥, 서맥, 저혈압을 일으킬 수도 있다. 구토, 설사, 마비, 정신착란, 쇠약 등의 독성도 있다.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실제 중독된 사람의 12%가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다. 생 부자나 초오를 딱 1g만 먹어도 사람에 따라서는 치사량을 넘어서기도 한다. 왕왕 민간요법으로 명태와 끓인 초오를 먹고 목숨을 잃은 이야기 등이 뉴스에 나오는 이유다.


일어나 마지막 소회를 밝히는 왕, 경종의 모습, 무릎 꿇고 엎드린 세제 연잉군 앞 소반에 그가 올린 부자인삼차가 놓여져있다. - ⓒ뉴프로덕션

만약 부자에 중독되었다면? 해독약은?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빨리 배출을 시키거나, 활성탄이나 약용탄을 써서 흡수가 안되게 할 수밖에...


법제를 하지 않은 채 끓였다면 독성이 있다는 건 연잉군도 알았을 것이다.


우연찮은 결말인지
법제가 불행히도 덜 된 것인지
애초에 독을 줄일 의지가 없었고, 생 부자를 끓여 바쳤는지
내의원의 첨언처럼 인삼과 부자간 밝혀지지 않은 약제 간의 상호작용이 있었는지는 지금 후손들의 힘 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 답은 아마도 조선 제21대 왕, 가장 긴 재위 기간을 자랑한 임금이자 이 날의 연잉군이었던 이금, 영조만이 알 것이다.

두 번째 만난 경종/연잉군/홍수찬, 이 중 사관을 맡은 홍주형은 가상의 인물이다. - 뮤지컬 경종수정실록은 1월 초 까지 대학로 TOM2관에서 볼 수 있다.


극의 말미, 내레이션으로 경종의 죽음 그리고 경종의 죽음 이후 즉위한 영조의 업적을 설명한다. 그 영조의 초기 업적은 거의 다 경종이 이룩해 놓은 것이라는 것이 역사에 대한 나의  착각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 했달까


건저(후계자를 정하는 것) 대리(청정) 소동 속에서 기피하던 환국을 통해 안정을 꾀하고,  탕평을 꿈꿨으나 노론 정국에서의 소론 임금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는 것 속에서 바보인 줄 알았는데 밀당의 달인이었던 그. 임금 경종을 다시 보았다.


김일경의 상소 앞에서야 움직였던 사실은 치밀한 왕,

역모의 수괴로 몰릴 때 움츠리기보다 정면 돌파를 선택한 영조의 정공법


마지막 순간의 둘은 그 예전의 사이좋은 형제라기보다 이미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말 그대로 삼종(효종 그리고 숙종 경종)의 혈맥으로 남은 이가 세제 하나였기에 삼급수의 고변을 받고도 선택의 길이 없는 듯 보였다.


부디 하얀 무지개가 뜨기 전의 곳에서 박상검과 문유도의 사태 이전의 금이 윤이로 사는 그 꿈은 이루어졌을까. 팔십 세가 넘게 장수한 영조대왕은 형을 만난 훗날 무어라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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