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과 ESG의 결합이 가져온 실물 음반의 변화
음악시장의 발전은 음악을 듣는 수단의 발전과 궤를 함께 해왔다. 30cm의 크기를 자랑하는 LP(Long Play Record)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면서도 들을 수 있는 카세트 테이프와 CD(Compact Disc)로 발전했다. 지금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물리적 매체하면 ‘CD’를 떠올리지만, CD이외에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물리적 매체가 많이 개발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폰 대중화가 가져온 카드형 키노 앨범과 키트형 키노 앨범이다. 카드형 키노 앨범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키트형 키노 앨범의 초기 형태로, 스마트폰의 NFC 기능을 통해 음악 감상이 가능하며, 2014년에 처음 등장한 키트형 키노 앨범은 이어폰 3.5 단자를 활용하였으며, 2022년에도 꾸준히 발매되고 있는 음반의 형태이다.
스마트폰 대중화와 초고속 인터넷 이용 환경이 마련되면서 mp3 형식의 디지털 음원 불법 유통이 점점 사장되었다. 동시에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한 음악 청취가 압도적으로 늘어나며 글로벌 음악 시장이 회복되는 추세를 보였다. 디지털 혁신에 의하여 어디에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피지컬 음반을 제치고 우위를 선점하게 된다.
그러나 KPOP의 성장과 코로나19가 맞물리면서 국내 음악 시장에 지각 변동이 생긴다. 음원시장에 밀려난 음반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것. 가온 차트에 따르면, 지난해 톱 400 기준 음반 판매량은 전년 대비 31% 증가한 약 5459만 장을 기록했고, 음반 수출액 또한 전년보다 50% 가량 증가한 2억2083만6000달러(약 2624억원)를 기록했다고 한다. 수치가 증명하듯 현대의 음반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물리적 장치' 그 이상의 의의를 가진다.
오늘날 KPOP 산업은 대표적인 ‘팬덤형 비즈니스’로 자리잡았으며, 이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게 된 것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요인은 바로 '팬덤'과 ‘음반’이다. KPOP 산업에서의 음반은 단순히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을 넘어, 그 아티스트가 음악방송 및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도구로 자리잡았다. 즉 아티스트의 브랜드를 구성하는 콘텐츠이자 팬덤의 충성도와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팬덤형 비즈니스'와 '수익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에 펼쳐지고 있는 기획사의 과열된 마케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등장하는 추세이다. 작가들은 이 목소리에 초점을 두고 아래의 글을 구성했다.
엔터테인먼트사는 KPOP 팬덤의 음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유구하게 펼쳐왔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얼마나 많은 앨범을 구매했느냐’는 방식으로 당첨자를 추첨해 대량 음반 구매를 유도한 '팬사인회'이다. 이후에는 팬의 수집욕을 자극하기 위해 여러 버전으로 변형된 음반과 여러 종류의 포토카드를 구성품으로 내세웠고, 현재는 더 나아가 음반사마다 상이한 포토카드를 증정하는 하는 ‘미공포* 문화’를 조성했다.
*미공포: 미공개 포토카드의 줄임말로, 특정 기간동안 특정 음반사에서 앨범을 살 경우 특전으로 주는 포토카드를 일컫는다.
물론 음반 인플레이션은 음악 시장을 활성화시켰다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 내 급증한 음반 판매량은 과도한 상술이 만든 산물로 평가 받을 뿐더러, 플라스틱, PVC, 재활용이 힘든 포토북으로 구성된 과잉 생산되는 KPOP 음반은 플라스틱, PVC 등 재활용이 힘든 소재로 구성되어있기에 환경 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최근 팬들과 엔터 업계 내에서는 '착한 소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 사회적으로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 구조 개선) 경영이 화두로 떠오르는 만큼, 몇몇 엔터테인먼트 사는 앨범의 부피를 줄이고, 친환경 소재를 택하는 ‘앨범 다이어트’에 직접 나서고 있다.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로 구성된 피지컬 음반을 ‘재활용하기 좋게’ 만드는, 이름하여 ‘에코 프렌들리’ 전략을 택한 사례이다. 청하의 정규 1집 ≪케렌시아(Querencia)≫는 포토카드 외에는 친환경 종이를 사용하고 비닐 코팅을 최소화했으며, CD 역시 고정되는 플라스틱 없이 종이 봉투에 담았다. 제이비의 첫 EP ≪SOMO-FUME≫은 플라스틱 혹은 PVC 재질로 음반을 보호한 것이 아닌, 재생용지를 활용해 앨범을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2월 15일에 정규 2집을 발매한 트레저 역시 음반 제작에 있어 친환경 소재로 구성하였다. 인쇄물은 산림관리협회(FSC) 인증을 받은 용지와 저탄소 친환경 용지를 택했고, 이에 인쇄된 잉크 역시 콩기름 잉크에 환경 보호 코팅으로 제작하여, 극히 일부 구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경 보호 소재로 만들어졌다.
물론 이러한 해결책이 음반 과잉 생산으로 인한 환경 오염 심화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방안이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환경을 고려한 음반 제작은 ESG 기업으로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환경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향후 더 나은 피지컬 음반 제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돋움이 되리라 예측해본다.
2022년 1월 18일에 컴백한 IST 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빅톤은 ‘플랫폼 앨범’이라는 센세이션한 형태의 음반을 판매하여 KPOP 씬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플랫폼 앨범은 기존 피지컬 음반의 구성품이었던 화보집과 CD 속 트랙을 디지털화하여 ‘1Takes’라는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소비자가 직접 수령하는 것은 포토카드와 해당 디지털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리얼 넘버 카드이다. 해당 음반은 실물 앨범보다 저렴한 가격(7,900원)으로 판매되며,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인 한터 차트와 가온 차트에도 정상적으로 집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톤에 이어 IST 소속 걸그룹인 에이핑크의 HORN도 플랫폼 앨범 버전을 발매하였고, 향후 타 IST 소속 아티스트도 이들과 같이 플랫폼 앨범을 발매하지 않을까라는 큰 기대감을 모은 상태이다.
가장 기본적인 음반의 형태였던 주얼 케이스의 음반이 오늘날 회귀하여 간소화된 형태에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실물 CD가 환경 친화적이지 못한 만큼, 최대한 패키지라도 간소화하자는 시선으로도 볼 수 있다. 한 아이돌 전문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환경 운동도 쥬얼 케이스 발매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물론 플라스틱이 아예 안 나올 수는 없지만, 쥬얼 케이스는 다른 종류의 CD보다 포장재 등이 덜 나온다”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2021년에 샤이니, 엑소 백현, NCT 127, NCT Dream, ITZY, 스트레이 키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등의 대형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가 쥬얼 케이스로 만들어진 음반을 발매한 것을 보면 쥬얼 케이스 버전의 음반 발매는 다시금 보편화 되어가는 추세로 보인다.
모든 산업과 뗄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한 NFT는 음악 산업에서도 점점 자리를 잡는 중이다. 래퍼 키썸은 메타버스 사업을 진행 중인 위치크래프트를 통해 버추얼 앨범을 공개했다. 키썸의 ‘사실 날 감싸 안아 주길 원해’ 버추얼 앨범은 해당 앨범의 NFT 보유자만이 메타버스 전시관을 통해 직접 아바타를 움직이며 음악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NFT 음반이다. 버추얼 앨범은 NFT 형태로 1000개만 발행되었으며, 구매자는 평생 소유권이 보장되고, 추후 언제든지 재판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SM 엔터테인먼트는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걸그룹 ‘에스파'를 선보였고, 이외에도 엔터 4사 모두 메타버스와 NFT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초석을 닦으며 파트너쉽을 체결하는 중이다. 아직 KPOP과 NFT가 결합된 콘텐츠 판매가 활성화된 것은 아니지만, 대형 기획사들이 주력하고 있는 사업인 만큼, 피지컬 음반을 넘은 버추얼 음반으로의 진화도 기대해볼만하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 따르면, 케이팝 산업의 주 타겟이 되는 MZ 세대의 88.5%가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지하고 있으며, 환경 관련 챌린지나 캠페인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세대를 주 고객으로 삼고 있는 만큼,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많은 양의 음반 판매만 추구하기 보다는,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착한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전략 역시 도출할 필요가 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세대인 만큼 에코프렌들리(Eco-Friendly) 전략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또한, 온라인 세상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한 만큼, 모바일 기기를 통해 콘텐츠 경험과 착한 소비가 동시에 가능한 플랫폼 혹은 버추얼 음반 등이 이들에게 소구될 수 있다.
마케팅적 관점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환경문제가 대두되는 만큼,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도 지속가능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사례들과 같이 지구를 생각하는 다양한 형태의 음반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글: 김서영, 박채영, 예시연, 한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