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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직 애널리스트 Aug 06. 2023

'사이버 가수'에서 '버츄얼 아이돌'로 퀀텀점프

아담, K/DA, ae-에스파, MAVE:, PLAVE의 이야기들


일본의 음악 판타지 애니메이션 <달빛천사>를 기억하나요?

지병으로 가수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루나’가 저승사자의 도움으로 건강한 소녀로 변신하여 남은 1년 동안 가수 활동을 하는 내용입니다.


애니메이션 자체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극 상에서 ‘루나’가 부르는 곡이 히트를 기록하며 앨범으로 제작됐습니다. <달빛천사> 주제곡에 대한 추억이 현재까지 이어져, 실제 해당 곡을 가창한 ‘이용신'님께서 2018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달빛천사 주제곡으로 공연을 개최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vW29MP8Nxo&t=393s

(요즘 필자의 노동요 중 하나라는 사실)


그만큼 달빛천사의 ‘루나'는 2000년대 소녀들에겐 일종의 "버츄얼 아이돌"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필자 역시, 조그마한 다이어리에 <달빛천사> 주제곡을 빼곡히 적으며 루나를 동경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합니다.

 

버츄얼 아이돌에 기대가 크지 않았고, 사람이 아닌 캐릭터에게 “아이돌"이라는 호칭을 부르는 것이 이질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달빛천사> 노래를 다시 듣기 시작하면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우리에겐 버츄얼 아이돌이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의 캐릭터를 좋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버츄얼 가수에 대한 무관심이 기대감으로 채워졌습니다.


마침 2020년 코로나 이후 비대면 비즈니스가 발달함에 따라 ‘가상 세계(Virtual World)' ‘가상 인간(Virtual Human)’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타고 있습니다.  '불쾌한 골짜기’ 등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가상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으나, 장기간의 비대면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국가/기업 입장에서 버츄얼 인간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었습니다.


최근 다양한 버츄얼 가수가 나옴에 따라, 과거-현재까지의 국내 '버츄얼 가수' 사례들을 정리하여 독자분들께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1. 아담(ADAM)


국내 최초 사이버 가수 '아담(ADAM)'


현재 세계의 가장 첫 번째 버츄얼 가수는 1982년에 방영한 일본 SF로봇 만화영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Super Dimension Fortress Macross)>의 주인공 ‘링 미메이 (Lynn Minmay)’임을 위키피디아 및 Chat GPT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가장 익숙한 첫 번째 버츄얼 가수는 바로 ‘아담(ADAM)'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아담'은 미리 생성한 3D 캐릭터 영상에 실존 가수의 목소리를 합성한 것입니다. 당시엔 ‘버츄얼 가수’라기보단 ‘사이버 가수’라는 호칭이 더 익숙했죠.


‘아담'의 캐릭터는 생각 이상으로 구체적입니다. 사랑하는 인간 여성의 곁에 있고자 사이버 세계를 떠나 현실 세계로 왔다는 ‘아담’은 혈액형 O형, 시력은 나쁘나 평소 콘택트렌즈 착용, 신장 178cm, 체중 등 신체적인 부분부터 좋아하는 색은 블랙, 존경하는 인물은 존 레논, 자주 가는 장소는 신촌의 라이브 카페입니다. 현재 버츄얼 가수들과 비교해 보아도 전혀 밀리지 않는 정교한 설정 아닐까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724OFKcNB8


그 덕분인지 데뷔 앨범 <제네시스>는 20만 장을 판매하였고, LG생활건강 레몬주스의 CF모델로 활약하는 등 기대되는 차세대 인물(?) 중 하나로 손꼽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모델링 자동화기법' 기술로는 기업의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아담'의 30초 방송 출연을 위해 개발자 5-6명이 2달간 작업을 해야 했고, 결국 돈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2. K/DA & ae-에스파


‘아담' 이후에 국내 최초 여성 사이버 가수 ‘류시아(Lusia)’ 등 몇몇의 버츄얼 가수가 존재했으나, 눈에 띌 만한 기술적 업그레이드나 성과를 보여준 버츄얼 가수는 없었습니다. 금전적 이익보다는 손해를 입기 쉬운 상황에서 어느 누가 쉽게 해당 산업에 뛰어들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0년을 기점으로 버츄얼 가수 업계에 새로운 양상이 나타납니다. 바로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며 ‘비대면 비즈니스'의 한 양상으로 ‘버츄얼 가수’가 대두되었습니다.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국내에 비슷한 성격 공유하는 두 그룹의 버츄얼 가수가 등장합니다.


K/DA


‘K/DA’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롤)>을 기반으로 한 버츄얼 아이돌입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을 기념하기 위해 선보인 ‘단발적'인 프로젝트성 그룹입니다. 게임업계에서 캐릭터를 활용해 아이돌 활동을 하는 것은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이지만,  K/DA처럼 실제 가수를 기용한 경우는 거의 국내 최초입니다.


K/DA의 노래(POP/STARS)는 각 가상 캐릭터에 대응해 국내 걸그룹 (여자) 아이들의 미연·소연과 미국 가수 매디슨 비어(Madison Beer)·자이라 번스(Jaira Burns)가 가창했습니다. 해당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무려 5억 뷰라는 유튜브 조회수를 달성했고, 버츄얼 비즈니스 흐름 내 이례적인 성과를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OGzo9TKEUw

(KDA Performance At The Worlds 2018 [League Of Legends])


라이엇 게임즈가 마련한 LoL Worlds 2018 파이널에서 실제 가수와 가상 캐릭터와 함께 공연을 선보이면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본 무대는 가상과 현실 세계의 간극을 좁히며, 많은 관중이 즐길 수 있었던 베스트 퍼포먼스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다만 매우 단발적인 프로젝트였고, 그들의 성과 대부분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점이 ‘버츄얼 아이돌’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말하기엔 어려울 것 같습니다.


ae-에스파


‘ae-에스파’는 SM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걸그룹 ‘에스파(aespa)’ 세계관 속에 등장하는 버츄얼 가수입니다.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세계관 속에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멤버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 가는 스토리텔링을 마련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q-ivLY_9A8

(SM Culture Universe)


‘SM Culture Universe’ 영상 에피소드를 통해, 앞서 언급했던 세계관을 시각화시켜 대중의 몰입을 높이려는 노력이 가시적으로 나타납니다. SM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스토리와 영상미 또한 훌륭합니다. 하지만 해당 캐릭터가 독자적으로 활동하기보단, 실제 가수인 ‘에스파'의 온라인 버전(서포트 형식)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버츄얼 아이돌'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아쉬운 점이 남습니다.


비록 두 그룹 모두 실존하는 가수의 버츄얼 버전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지만, 1) 거대한 팬덤을 갖고 2)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3)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음악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버츄얼 가수’를 논할 때 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3. MAVE:


MAVE: (메이브)


‘MAVE:’는 2023년 1월 25일 데뷔한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소속 4인조 버츄얼 아이돌로, 넷마블에프앤씨의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함께 언리얼 엔진과 메타휴먼 크리에이터를 활용하여 제작한 가상 걸그룹입니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기술력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기획력의 결합으로, 데뷔 이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얻었던 ‘버츄얼 아이돌'입니다.


각 캐릭터의 움직임은 댄서들의 모션 캡처로, 목소리는 실제 사람의 보컬을 기반으로 한 AI로 만들어졌습니다.  메이브는 지난 1월 28일 MBC 공중파 음악방송인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데뷔곡 ‘판도라’를 선보이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기대에 부흥하듯이 <PANDORA(판도라)> 뮤직비디오는 공개 13일 만에 1000만 뷰를 넘어서며 ‘버츄얼 아이돌'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KUiVy3LElC0?feature=share

(MAVE: 챌린지)


더불어 ‘MAVE:’는 숏폼 댄스 챌린지도 업로드하며 실제 ‘아이돌'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새로운 앨범 소식과 자체 콘텐츠 외의 스케줄을 소화하는 경우가 부재하여 아쉬울 따름입니다.



4. PLAVE


PLAVE(플레이브)


마지막으로 소개할 버츄얼 아이돌은 ‘PLAVE(플레이브)’입니다. ‘PLAVE’를 현시점에서 가장 ‘버츄얼 아이돌'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했기에, 본 글의 가장 마지막 챕터로 정리합니다.


먼저 ‘PLAVE’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이를 제작한 팀 ‘블래스트(Vlast)’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블래스트(Vlast)’는 18년 동안 MBC에서 근무한 이성구 대표를 중심으로 사내벤처 1기로 독립한 기업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lTK8c4w0c2


블래스트의 이성구 대표는 MBC 창사 60주년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를 작업한 인재입니다. 현재 해당 영상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임에도 약 3500만 정도의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획기적이었고 동시에 가슴을 울렸습니다. 이성구 대표는 해당 프로젝트로 버츄얼 휴면에 관한 확신을 얻은 뒤, 사내벤처를 설립한 뒤 ‘PLAVE’를 개발했습니다.


그 영향 덕분인지 ‘PLAVE’는 여타 버츄얼 아이돌보다 대중/팬과의 소통을 매우 중요시 생각합니다. 음악방송 출연은 물론이거니와, 라이브 방송을 통해 직접 팬들과 일대일 소통을 나누기도 하며 다른 아이돌과 합동 챌린지도 수차례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H3nOPbjUf88?feature=share

(PLAVE 멤버 간섭 방지용 알고리즘 오류 예시)



다른 버츄얼 아이돌은 녹화한 영상본으로만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반면, ‘PLAVE’는 실제 사람이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활용해 3D캐릭터 옷을 입고 활동하여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리얼타임 그래픽으로 개발되었기에, 언리얼 엔진 기술을 통해서 ‘PLAVE’ 캐릭터 뒤의 진짜 사람을 빠르게 가상 인간으로 변환시킵니다.


또한 멤버들의 아바타가 몸이 서로 충돌해 겹치거나 뚫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방송에서는 직접 제작한 간섭 방지용 알고리즘을 도입했습니다. 때때로 모션 캡처에 오류가 나 멤버들이 몸이 뒤틀리는 해프닝이 있기도 하지만, 팬들은 오히려 그 오류에 당황하는 멤버들을 보고 더 ‘사람 같다' ‘친근감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불쾌한 골짜기'의 한계를 뛰어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더불어 모든 멤버가 작곡/작사가 가능한 능력자이자, 각각 보컬과 춤, 랩 전부 소화 가능한 실력파이기 때문에 ‘PLAVE’라는 버츄얼 아이돌의 가능성과 진정성이 더욱 높게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위 이미지는 인간과의 유사성(human likeness)과 인간이 느끼는 호감도(familiarity) 간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입니다. 인간과 유사해질수록 호감도가 상승하지만, 오히려 일정 임계치에 도달하면 호감도가 급락합니다. 애매하게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띌수록 사람들은 그 모습을 이질적이고 기이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 버츄얼 아이돌의 사례를 살펴보면 “얼마나 인간과 닮아있는가"가 아닌 “얼마나 인간처럼 행동하는가(진정성이 있는가)”가 주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PLAVE’는 3D 보단 2D 웹툰 캐릭터에 근접함에도, 대중들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 그들을 소비합니다. 국내 음악산업은 음악 자체가 중요한 것도 있지만, 팬과의 소통이라는 것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장벽을 허물수록 버츄얼 아이돌에 대한 가치는 높아질 것입니다. 일반적인 버츄얼 휴먼은 여러 CF모델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버츄얼 가수는 대중을 설득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5G와 같은 네트워크 기술이 더 발전되면, 라이브 스트리밍 같은 실시간 소통/공연도 가능해질 것이라 전망합니다.


결국 모든 비즈니스는 ‘돈'으로 순환합니다. 실제 아티스트 한 그룹을 관리하는 제반 비용보다 버츄얼 아이돌을 개발하는 금액이 낮다면, 많은 기업들이 버츄얼 아이돌 비즈니스에 투자하고 성장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지금의 ‘버츄얼 아이돌'이 훗날 누군가의 도라에몽, 코난, 뽀로로, 이누야샤, 춘식이, 달빛천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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