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사랑했기에, 엔터 퇴사했습니다

대기업 신입사원의 미국 박사 도전 #1

by 뮤직 애널리스트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

참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다 보니, 다시 브런치를 열어보는 일에도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음악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앞으로도 이 산업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구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제는 제 방향성을 또렷하게 다듬어야 할 시점이 되었더라고요. 보다 정성적인 성장의 흐름을 기록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브런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음악을 업으로 삼고 계시거나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의 여정을 나눠보려 합니다. 더불어 음악 엔터테인먼트 업계 분들께 대학원 진학을 안내하고 싶은..더 많은 동료를 만들고 싶은...저의 소망이 발현된 글입니다 하하.

기회가 된다면 이전처럼 음악 산업 관련 이야기들도 간간히 풀어볼 예정이에요.


2022년 석사 과정 막학기에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회사에 합격했습니다.


입사 전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공채 지원부터 [서류 – 인적성 – 실무면접 – 인턴십 – PT발표 및 임원면접 – 최종합격]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와는 “이 회사에만 붙는다면 노예가 되겠습니다!”라며 웃으며 버텼던 기억도 납니다. 다행히 최종합격이라는 결과를 쥐었고, 잠을 안 자고 밥을 안 먹어도 행복했습니다. 부모님께선 회사에서 보내준 편지와 케이크를 받고,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시고 행복해하셨지요.

합격의 기쁨


정식 사원으로 생애 처음 받아보는 회사 복지와 월급도 좋았지만, 자리에 앉아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이 당-연한 업무 환경이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그게 일이니까요.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되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음악이 들리고, 아티스트와 마주하고, 음악 방송 있는 날이면 회사 앞에 팬분들이 쭉 서계신 모습을 볼 때마다 '아 내가 엔터업계에서 일하는구나' 하고 뿌듯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좋은 동료, 선후배분들을 만나 다양한 팀을 경험하며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 문장이 제 일상을 지배했습니다.


과연 이 일을 10년, 20년 뒤에도 하고 있을 수 있을까?

엔터 특성상 앨범/음악/콘텐츠는 국내+해외를 모두 타깃 하기 때문에 24시간 올라운드 매니징이 필요합니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케이팝 앨범의 발매 주기가 짧아지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의 전략-기획-실행이 유기적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몇 개의 팀을 걸쳐오며 팀바팀/부바부가 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 특성상 워라밸이 지켜지기엔 아직 열악한 구조였습니다.


수십 번의 야근 끝에, 깊은 고민과 노력으로 완성한 결과물 좋은 평가를 받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거대했습니다. 유독 '덕후(positive)'들이 많이 모인 집단이라서 그런지, 환경만 조성된다면 본인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아쉽게도 당시엔 구조 변동이 빨랐지만 그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바로 ‘1인 노동자로서의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내가 10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팔릴 만한 사람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유독 노동 강도가 높고 창의성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산업인 만큼, 새로운 세대는 계속 유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제작/실무/스탭 직군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심지어 본인은 제작자도 아니고 데이터를 위주로 봤음). 관리자의 위치에 올라간다고 해도, 그에 따라 요구되는 건 단순한 업무 처리 능력을 넘어섭니다. 업무 조율, 커뮤니케이션, 팀원 관리와 평가, 나아가 어느 정도의 정치력까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사람'이 주가 되어 돌아가는 사업인 만큼 대체적으로 인력이 부족합니다. 위 고민은 개인 미래에 대한 고민인 점.)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보고서 작성 중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들을 한눈에 마주했습니다. 우연히 직원 평균 근속연수를 확인했고, 그 수치를 보며 막연한 불안이 근거 있는 우려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직률이 높은 업계 특성상 근속연수가 짧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이직을 하며 개인의 커리어를 높이는 거죠.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여도 '평균' 뒤에 감춰진 숫자가 너무 작았습니다.


출처: 에스엠 2024 사업보고서_직원 평균 근속연수
출처: JYP 2024 사업보고서_직원 평균 근속연수
출처: CJENM 2024 사업보고서_음악사업 직원 평균 근속연수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일은 매우 힘들고 고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봐도 기쁘지 않고, 일이라고 생각되어 음악을 멀리하는 기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집인지 집착인지, 음악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취업만 하면 진로 고민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뿐 아니라 제 주변의 많은 직장인들 역시 ‘넥스트 커리어’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커리어 고민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점에서 내심 안도했습니다.


업계 내 수많은 동료들이 음악 플랫폼, 유통사, 영화사, OTT, 글로벌 미디어, 계열사, 광고대행사 등 다양한 산업의 좋은 기업들로 이직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 중요한 것은 산업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제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몸이 빠릿빠릿하진 않지만, 데이터를 다룰 줄 알고 사고력이 높은 편이며,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문서 작업에도 강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티스트 덕후’라기보다는 ‘음악 덕후’라는 점도 제겐 나름의 차별점이었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을 종합해 보니, 현시점 제가 가야 할 길은 박사 진학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실 석사 과정 때부터 박사 과정을 밟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결심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더 미루다 보면 ‘연구’를 위한 연구자가 아니라, 단지 ‘노후’를 위한 연구자가 될 것 같았습니자. 산업에 대한 애정이 있고, 관련 인사이트를 쌓아온 시기가 또 올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건강과 에너지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이 아니면 온전히 학업에 집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천 시간에 걸친 진지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오랫동안 애정을 쏟았던 업계와 회사였기에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닌 수많은 이유와 복합적인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이 확고해지자마자, 저는 바로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박사 지원 시기는 12월부터 1월까지로 정해져 있었기에, 지금을 놓치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024년 2월에 확신을 갖고, 2024년 5월에 퇴사했습니다.



재직 중 얻은 가장 큰 경력은 좋은 사람들을 얻은 것, 아직도 그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