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 중심 산업에서 학위를 고민한다는 것

대기업 신입사원의 미국 박사 도전 #2

by 뮤직 애널리스트

“굳이? 엔터 업계에서 학위 하나 더 얻어서 뭐 하려고?”


엔터테인먼트 실무 현장에서 학위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나 인정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실제로 제가 근무하던 회사도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비즈니스를 아우르고 있었지만, 석사 학위가 연봉이나 직위에 변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많은 산업군에서는 석·박사 학위가 일정 부분 인정되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여전히 학위가 커리어 전환점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온 주체가 실무자입니다.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이론적 프레임이나 학문적 접근보다는,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쌓아온 경험과 감각 위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사실 많은 산업이 초창기에는 그와 같겠지만, 엔터 산업은 특히 ‘기술’보다 ‘사람’이 핵심 자원이 되는 산업이기에 그 특성이 더욱 뚜렷합니다.


둘째, 미디어 산업은 전반적으로 흐름이 빠르고 트렌드의 생명력이 짧습니다. 그중에서도 음악, 특히 K-POP은 트렌드를 선점하는 속도와 민감도가 유독 높은 영역입니다. 이 때문에 책상 앞에 앉아 분석하는 시간보다, 현장을 빠르게 읽고 반응하는 역량이 더욱 높게 평가받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실무 중심 산업에서 학위를 고민하게 된 산업적 배경개인적인 이유 각각 세 가지씩 소개하려 합니다.


1. 지속가능한 음악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조건은 "사람"


현재 시점의 국내 음악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성숙기’에 들어섰다고 판단합니다. 초기 성장의 속도를 지나 ‘지속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사업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죠.


아래 이미지는 전통적인 사업 생명주기(Business Life Cycle) 곡선을 나타냅니다. ‘도입기 → 성장기 → 성숙기 → 쇠퇴기’로 이어지는 이 곡선은 산업 전반의 흐름뿐 아니라, 개별 비즈니스나 브랜드의 생애주기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사업생명주기(Business life cycle) 출처: CFI’s FREE Corporate Finance Class.

도입기(Launch Stage): 초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수익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케이팝 산업 초창기, 혹은 한 아티스트가 데뷔하고 시장 반응을 얻기 전 단계를 떠올리면 됩니다.

성장기(Growth Stage): 수익이 빠르게 증가하는 시기로, K-POP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본격적인 글로벌 진출에 성공한 시기가 이에 해당합니다.

성숙기(Maturity Stage): 수익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되, 점차 경쟁이 심화되고 비용이 증가하는 시기입니다. 지금의 국내 음악 산업이 이 단계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쇠퇴기(Decline Stage): 수익이 감소하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기이며, 이 단계에서 라이프사이클 연장 전략(Life Cycle Extension)이 중요해집니다.


더 이상 ‘노동’이나 ‘자본’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산업을 확장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시도를 통한 우연한 성공 방식에서 벗어나, 반복 가능한 성공의 패턴을 구축하고 실패 가능성을 줄이며 산업의 안정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성장 패턴, 즉 (산업에 특화된) 사람 중심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본질적으로 ‘사람이 만들어 가는 산업’입니다. 아무리 기술이나 시스템이 고도화되더라도, 이 산업의 완성은 결국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사람의 기획력, 문제해결력, 창의력에 있습니다. 결국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그 ‘사람’을 어떻게 길러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사람’을 길러낼 수 있는 구조적 수단이 바로 학계라고 믿습니다. 학문 중심의 집단만으로는 산업의 진보 속도가 느릴 수 있고, 실무자 집단만으로 구성된 조직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음악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실무자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실무자 중심의 구조에서는 유능한 인재가 업계에 진입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성장을 장기적으로 지속시키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합니다 (전 시즌 기업보고서에서 확인했듯이 유독 짧은 근속연수로 확인 가능).


따라서 저는 실무와 교육이 결합된 체계적 훈련을 통해, 이 산업을 다음 단계로 이끌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자형 실무자’, 혹은 ‘실무형 연구자’가 필요합니다.


2. 음악 비즈니스의 중심, 미국


음악 산업의 자본과 구조는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K-POP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 시장을 전제로 한 전략 수립이 기본이 되었고, 빌보드 차트 진입, 코첼라와 같은 세계적인 페스티벌 참여, 미국 내 라디오 및 방송 노출은 K-POP 아티스트의 글로벌 성공에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K-POP은 산업 구조와 자본, 기획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탄생한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이는 한국 근현대사의 궤적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유입된 음악과 일본 대중음악의 영향 아래, 한국 대중음악은 다양한 외부 문화를 흡수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이후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Multi-member IDOL’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후 힙합, 제이팝, 브릿팝 등 다양한 해외 장르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 주류를 이루며, K-POP은 글로벌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죠.


K-POP 아이돌의 활동 방식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타이틀곡/수록곡 활동을 병행하며 음악방송 출연만 한 달 넘게 이어갔습니다. 지금은 평균 1~2주, 길어야 3주 내에 음악방송 활동을 마무리하고, 디지털 콘텐츠와 글로벌 프로모션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변화했습니자. 이는 국내 팬만이 아니라, 전 세계 팬층을 고려한 전략적 전환입니다.


엔터 실무를 경험하며 생각보다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실무적으로 어떤 '한계'와 '변수'들이 존재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얻었지요. 이 경험은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일해보는 것 자체가 음악 산업과 음악 소비자 연구에 있어 더 단단한 기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3. 팬덤을 넘은 대중 소비자, 기술의 역할


현재 국내 음악 산업 연구의 주류는 ‘팬덤’ 중심의 질적 연구, 혹은 ‘플랫폼’ 구조 분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음악 산업을 연구해 온 교수님, 연구자분들께서는 K-POP 팬덤을 중심으로 한 질적 탐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계십니다. 저 또한 그분들께 영향을 받아 석사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케이팝 팬덤은 정말 독창적이고 특별한 집단입니다. 열정, 조직력, 콘텐츠 생산 능력, 그리고 사회적 파급력까지 지닌 이 집단은 연구 가치가 매우 높은 대상입니다. 하지만 질적 연구를 수행해 보며 느낀 점은,,, 이 분야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과 문화 해석 능력’을 모두 요구하는 고도의 작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 역량뿐 아니라, 방대한 자료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통합적 사고력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 영역은 저에게 도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저는 '팬덤'을 포함해 음악을 경험하는 일반 ‘소비자’ 자체를 양적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팬이라는 특정 집단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경험하며 반응하는 전체 소비자 군의 행태와 심리를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소비자 경험 내 '기술'이 중재하는 역할이 커지면서, 크게 '음악 소비자''기술'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 산업 내 기술의 활용은 예를 들어,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은 포트나이트(Fortnite)에서 메타버스 콘서트를 열었고,

더 위켄드(The Weeknd)는 Apple Vision Pro를 활용한 증강현실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습니다.

국내 사례로는 블래스트(VLAST)가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PLAVE)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죠.

https://www.youtube.com/watch?v=wYeFAlVC8qU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은 포트나이트(Fortnite) 콘서트

https://www.youtube.com/watch?v=RvxBS9ZeJLQ

더 위켄드(The Weeknd)는 Apple Vision Pro 티저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EYG4ROejmyI

블래스트(VLAST)가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PLAVE) 뮤직비디오


이처럼 기술은 단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음악 경험 자체를 재정의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AI 기술로 제작된 드레이크 & 더 위켄드(Drake & The Weekend, https://www.youtube.com/watch?v=rQssjhX31Z0)의 ‘AI 곡’ 사례처럼, 법적·윤리적 기준이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기술이 앞서가는 문제도 존재합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생산을 넘어, 기술을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를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체계화하는 연구가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음악 산업의 현장과 기술의 접점을 이해하고, 그것이 소비자 경험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는 연구는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음악 산업 내 기술 활용 및 데이터 기반 분석을 중심으로 한 양적 연구가 매우 부족한 편입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통계 분석을 시도한 논문들이 간혹 보이기는 하나, 음악 산업 자체를 깊이 있게 다루는 전문 연구는 여전히 드뭅니다.


저는 이 점에서 기회를 보았습니다. 산업 현장의 흐름을 알고 동시에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 ‘실무 기반 연구자’로 성장한다면 고유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



1. 전문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식

박사 진학을 단순히 ‘학위증’을 얻는 과정으로 보지 않습니다. 산업을 더 깊이 이해하고 구조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석사 과정을 거치며 그 가치를 체감했습니다. 논문을 완성하는 경험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것이었고,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답을 설계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창작과는 달리, 연구는 기존의 이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리를 구성하는 작업입니다. 모든 문장은 명확한 근거 위에 쌓여야 하며, 그 결과는 학술적이고 실무적인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 실무 현장에서 체득한 감각 위에 이론적 기반을 더할 수 있다면, 보다 지속가능하고 설득력 있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박사 진학을 고민하기 전, 저 역시 여러 차례 진로 전환과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회사를 옮긴다고 해서 고민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제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어떤 조직에 들어가더라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현장을 멈추더라도, 학문적 기반을 통해 더 단단한 전문성을 쌓아야 할 시기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더 오래 이 산업을 사랑하며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로.


2. 경제적 안정성은 필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학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회사원으로서 안정적인 수입을 누렸기에, 박사 과정에 진학하더라도 최소한 그에 준하는 재정적 안정성이 필요했습니다.


미국 박사과정은 대부분 ‘풀펀딩’ 구조로 운영되며, 학비와 생활비가 포함된 지원을 받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학문 수련의 기회를 넘어, 일종의 고용 구조에 가까운 제도입니다. 이 점이 제가 미국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풀펀딩이 보장되지 않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제외했습니다.


음악 산업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영국도 고민했지만, 연구 기회, 지원 구조, 학문적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미국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3. 재밌습니다


저는 ‘재미’에서 동력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연구는 분명 어렵고 고된 일이지만, 흩어진 현상들이 이론에 맞물려 해석될 때의 짜릿함, 예상치 못한 데이터 해석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때의 기쁨, 논문이 투고 확정되었을 때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줍니다.


대학원 과정이 힘든 이유는 결국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도교수님과 동료들이 있더라도, 연구자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풀어야 합니다. 석사 과정에서도 그 점이 특히 힘들었고, 박사 과정에서는 그 무게가 더해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자유의 대가(책임)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직장에서는 혼자 기획하고 실행하며 결과까지 도출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반연 연구는 주제를 정의하고, 방법을 설계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자율성’이 보장됩니다. 내가 먼저 스스로를 설득하고, 지도교수님을 설득하고, 더 나아가 학계의 독자들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죠.


분명한 자율성과 책임이 공존합니다. 저는 이 점이 연구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꿈꾸는 방향이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시대가 변해간다면 자연스레 바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박사 이후의 구체적인 꿈은, 아직은 제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간직해두려 합니다.


다만 하나 분명한 건,
저는 '음악'이라는 세계 안에서 저의 업(業)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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