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신입사원의 미국 박사 도전#3
다섯 달 만이네요 하하
본래는 격주로 업로드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학기가 시작되니 정말 정신이 없더라고요. “첫 학기에 코스웍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연구에 집중하자”는 포부로 무려 5과목을 수강하고 TA까지 맡다 보니, 말 그대로 숨을 헐떡이며 살았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교수님들, 선배들, 동료들을 만나 미국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종강이 다가와서야, 이제 한숨 돌리고 이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되었네요.
이번 겨울방학에는 꼭 이 브런치북 시리즈를 마무리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특정 직무보다 ‘산업’이 먼저 보였던 순간
아마 저와 비슷한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직무(마케팅, 전략, 재무, 사업 등)보단 특정 산업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싶다.”
이 정도라도 명확해졌다면, 저는 그 자체로 충분히 박수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목적이 없던 시기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긴 했지만, 꼭 맞는 옷을 찾고 싶은데 계속 기성복만 입어보는 느낌이었죠. 그러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 음악 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가 분명해졌습니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국내 음악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체감했고, 무엇보다 이 산업을 좋아하고 자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귀국하자마자 음악과 관련된 일이라면 눈에 보이는 대로 뛰어들었습니다.
미디어 전공, 그리고 연구 방향
커뮤니케이션·광고·PR·미디어·언론·영화연구 등은 전공자분들이 아시다시피 범위가 매우 넓고, 학교마다 전공명과 지향점도 제각각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산업 중심의 미디어학과에 석사 진학할 수 있었고, 또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음악’만 외치던 학생을 ‘기술’과 ‘연구’의 언어로 다듬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국내/해외 저널에 논문을 쓸 수 있었고, 연구 역시 사용자·소비자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정리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입시생이 되다
그리고 멀쩡한 회사를 뒤로한 채, 돌고 돌아 다시 입시생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디에 지원해야 할까?”
특히 기초학문이 아닌 융합학문(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정치학, 경영학 등)에 관심 있는 사회과학 전공자라면, 비슷한 고민을 하실 것 같습니다. 준비하면서 이 지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썼고, 이렇게 하면 시간을 덜 낭비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사회과학 전공자라면 먼저 정리해야 할 질문
사회과학 전공자가 박사 진학 전공을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학과 이름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가입니다.
같은 사회과학이라도 이론을 확장하는 연구인지, 방법론을 정교화하고 싶은지, 혹은 현실 문제를 설명하거나 해결하려는 연구인지에 따라 훈련 방식과 평가 기준은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융합 성격이 강한 전공일수록 이 분기점을 먼저 정리하지 않으면, 지원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박사 진학 이후에도 계속해서 연구 질문(RQ)을 찾아가고 있지만, 사전에 본인이 지향하는 연구 방향성을 어느 정도 잡아두는 것은 입시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당시 입시 준비하며 읽었던 논문을 엑셀 시트로 정리했는데, 그 수를 세어보니 약 220편 정도 됩니다. 특정 교수님의 대표 연구를 중심으로, 각 논문을
research topic
research context
objective
theory
methodology
results
contribution
limitation
내가 하고 싶은 연구와의 연결점
으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같은 주제라도 어떤 전공에서 연구하느냐에 따라 문제 설정과 접근 방식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를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시간을 들이는 것이야말로, 이후 박사 과정 전반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인으로서 연구를 못하고 있던 기간 동안의 연구 트렌드를 팔로업할 수 있는 기회)
관심 있는 교수님이나 재학생 분들께 컨택 메일을 보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저는 실제로 미팅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고, 간단한 회신만 받은 적도, 아무 답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만 컨택 결과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보냈던 메일에 대해 1년 뒤인 2025년 10월, “현재 내가 학생을 모집 중이니 꼭 지원해 보라”는 답장을 받기도 했거든요. (정말 예상 못 한 타이밍이었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워낙 바쁘고, 매년 수많은 컨택 메일을 받으십니다. 특히 이공계처럼 랩실 중심 구조가 아닌 사회과학 전공의 경우, 컨택이 곧바로 합격 여부를 좌우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적합성을 직접 확인하고, 학교와 전공을 판단하는 데에는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저는 꼭 한 번쯤 시도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같은 사회과학’이 아니다
한국은 최근 미디어 산업의 성장으로 많은 학과가 ‘미디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에서는 대부분 Communication 안에 있는 경우가 많고 Media 대학은 손에 꼽습니다. 문제는 커뮤니케이션 전공 내 음악 연구가 주로 문화연구 중심이라는 점이었고, 소비자·양적 연구를 주로 하는 저와는 완벽히 맞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지도교수님과 여러 전략을 논의한 끝에, 커뮤니케이션/미디어와 경영(마케팅 & MIS) 3파트에 모두 지원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습니다. 저는 5월에 퇴사를 했고, 지원 마감은 12월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TOEFL, GRE, 서류(CV, SOP, PS), 인터뷰 준비까지 모두 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꺼내든 방법: SWOT
이럴 때 제가 자주 사용하는 프레임워크가 바로 SWOT입니다. 실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지만, 전략적 사고를 정리하기에는 여전히 유효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고민이 생기면 ChatGPT에게 SWOT을 그려달라고도 합니다.. 하하
이렇게 정리해 보니, MIS는 제 강점이 가장 약한 분야라는 결론에 이르러 제외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석사 전공과 연결되지만, 실제 연구 관심사는 헬스·조직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산업과 소비자 분석에 가까웠기 때문에 세부 트랙이 맞는 학교 위주로 지원했습니다.
마케팅은 전공자로서의 약점은 분명했지만, 실무 경험과 연구 주제의 접점이 많아 도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Communication/Media 1곳, Marketing 1곳에서 오퍼를 받았고, 추가로 2곳에서 웨이트리스트를 받았습니다.
CHECKLIST: 직장인 현실 버전
1. 국내 박사가 아닌, 해외 박사 진학의 메리트가 있는가? (에피소드#2)
2. 융합학문 전공자라면, 관심 있는 연구 주제와 질문은 무엇인가?
2.1. SWOT 작성 → SOP/CV에 활용 가능
2.2. 이전 지도교수님 또는 관심 학교 교수·학생과 미팅
2.3. 지원 전공 확정
3. 지원 소요 시간 현실적으로 가늠하기
3.1. TOEFL/GRE 디폴트 상태에서 한번 풀어보기
3.2. 학교별 타임테이블 구글시트 정리 추천서 개수·마감일 확인
4. 퇴사 일정 조율 또는 본격 집중 시점 결정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계신 분들께: 위 1,2,3을 회사 다니면서 병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2번 단계에서 퇴사했습니다. 다만 다시 돌아간다면 최소한 3.1까지는 미리 해두었을 것 같아요.)
다음 에피소드엔 구체적인 지원 과정을 들고 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