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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상 Apr 05. 2016

#11. "난 양손잡이야"

패닉 - 왼손잡이

아티스트 : 패닉
장르 : 발라드, 락
발매 : 1995.01.01
배급 : 다날 엔터테인먼트
1집 앨범 [Panic]의 여섯 번째 트랙 곡




난 왼손잡이다.


글씨를 왼손으로 쓰고, 밥도 왼손으로 먹는다. 하지만 사실 엄연히 말하면 난 양손잡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글씨 쓰는 것과 밥 먹는 것을 왼손으로 처리하니, 주위의 사람들은 나를 왼손잡이라고 한다.


이왕 왼손잡이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기념(?)으로, 나의 손 용도에 대해 고찰해보겠다.

(상황에 따른 손 방향을 이렇게 자세히 파헤친 적은 처음이다!)


왼손 사용

글씨 쓰기. 지우개 질 하기. 그림 그리기. 밥 먹기. 집게 질 하기. 돈 세기. 프라이팬 위에서 뒤집개 잡고 요리하기. 음료수 뚜껑 돌려 따기. 캔음료 캔 따기. 스카치테이프 떼서 붙이기. 계산할 때 카드나 돈 내밀기. 액체 류 따르기. 종이 찢기. 핸드폰에 USB 꽂기. 샤프에 샤프심 넣기. 옷에 조그만 얼룩이 묻었을 때 솔질하기. 커피 탬핑하기... 등등.


커피 탬핑. 나는 손 방향이 반대다. 왼손으로 누르고, 오른손으로 받친다. (출처 : www.coffeeguild.co.kr)



오른손 사용

꼬치구이나 치킨 집어서 먹기(이건 또 뭔가). 잔 들어 마시기. 가위질 하기. 칼질 하기(부엌칼, 커터 칼). 마우스 조작하기. 이 닦기. 배드민턴 치기. 휴지로 눈물 닦거나 코 닦기. 볼링 하기. 포켓볼 치기. 화장 하기. 누구 만지거나 쓰다듬기. 머리 말릴 때 드라이기 잡기. 기타 치기(왼손잡이였다면 돈 꽤나 들었을 거다). 팔씨름 하기. 농구 슛 넣기. 오락실 펀치 하기... 등등.


오락실 펀치. (출처 : mypi.ruliweb.daum.net - 문제 된다면 바로 지우겠습니다!)



양손 사용 (둘 다 편함)

가위바위보 하기. 칠판에 크게 글씨 쓰기(이건 왜 그런지 정말 모르겠다).


칠판에 글씨 쓰기. 내가 좋아하는 EBS 윤리 영역의 강승희 쌤. (출처 : m.ebsi.co.kr)



상황에 따른 손 방향을 다 정리해보니, 내가 진정한 양손잡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렸을 때는 그저 왼손잡이인 줄만 알았다. 다들 나보고 왼손잡이라고 하니까. 그리고 내가 봐도 왼손만 쓰니까. 하지만 어렸을 때는 다양한 활동들을 안 해봤을 시기였다. 그때는 글씨 쓰고 밥 먹는 게 주된 일상이었으니, 나의 '오른손 사용처'들을 아직 발견 못했을 것이다.



cf. YouTube, [Panic] 왼손잡이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 보고 한 번쯤
그냥 모른 척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 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나나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 보고 한 번쯤
그냥 모른 척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 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나나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
난 왼손잡이야

나나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 나 나




※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시는 걸 추천해요.

저도 이 음악을 들으며 그때의 감정을 더 캐치해 적었답니다.





내가 유치원 때, 할아버지께서 언제나처럼 왼손으로 밥 먹는 나를 보시며 "왼손을 쓰면 안 된다. 오른손을 써라."라고 하셨다. 보수적인 할아버지께선 내가 '옳은' 손, 즉 오른손을 쓰지 않고, '틀린' 손인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을 먹는 게 탐탁지 않으셨나 보다. 그러나 어린 나는 당돌했다. 지금 쓰고 있는 지극히 편한 왼손을, 왜 굳이 불편하게 오른손으로 옮겨야 하는지 설득이 잘 안됐고, 의문 또한 들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왜요?"라고 물음을 제기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가 할아버지께 적지 않게 '한 소리' 들었다고 한다. 엄마의 자식인 내가 왼손을 쓰니, 할아버지께서는 엄마에게 혼 아닌 혼을 내신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할아버지께 나의 왼손잡이에 대한 '한 소리'를 듣고 난 후 안방으로 들어오니, 문제의 내가 오른손으로 즐겁게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 그때 나한테 배신감 무지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흥분하며 말하시는 걸 보니, 그때의 엄마가 얼마나 '부들부들'했을지 느껴진다. (엄마, 미안해ㅜㅜ 딸래미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요?) 그때 이후로 우리 엄마는 나보고 사이비 왼손잡이라고 한다.



칼같이 MIX 된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우리 가족에서 나만 왼손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엄마와 오빠도 왼손을 사용한다. 우리 가족의 왼손잡이, 오른손잡이는 정말 칼같이 나눠졌는데, 이를 볼 때마다 '유전의 신비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버지는 순수 오른손잡이다. 엄마는 순수 왼손잡이다. (하지만 글씨 쓰는 것과 밥 먹는 것은 오른손으로 옮기셨다고 한다. 나머지는 정말 다 왼손을 사용하신다.) 맏딸인 언니는 순수 오른손잡이다. 오빠는 순수 왼손잡이다. 막내딸인 나는 오른손과 왼손이 골고루 다 섞인 양손잡이다.

우리 가족 유전도(?). 밸런스가 딱 맞는, 기가 막힌 믹싱이다.


더 신기한 것은 손잡이 유전과 같게 성향도, 겉모습도 비슷하다.

순수 오른손잡이인 아버지와 언니는 무던한 성격에 끈기가 있다. 활동적이며 에너지가 있다. 추진력이 뛰어나고, 우울감은 빨리 털어버린다. 외향적이며 많은 사람들과 단체 활동을 잘한다. 골격이 있는 아버지를 닮아 언니도 골격이 있는 편이다. 골반이 넓고 허리가 잘록해 우리나라에선 파격적일 수도 있는 서양권 옷도 잘 받는다.

순수 왼손잡이인 엄마와 오빠는 조용하다. 생각이 깊으며 말을 적게 하는 편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하며, 섬세하다. 손으로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것―엄마는 뜨개질이나 코바늘, 오빠는 건담 조립이나 그림 그리기―을 잘한다. 내성적인 면이 있으며, 따뜻하다. 엄마가 팔다리가 가는 편인데 오빠가 그걸 똑 닮았다. (엄마의 마른 체형이, 여자인 언니나 내게 유전된 게 아니라, 남자인 오빠에게 유전된 게 조금 슬프다.)

나는 아버지의 외향적인 성격과 엄마의 내성적인 성격 둘 다 가지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좋아하고,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하지만 틈만 나면 사색에 잠긴다. 뭔가를 하고자 하는 추진력에 불이 붙으면 수면 시간을 줄여서라도 열중하지만, 무기력의 시간이 다가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의 마음을 가진다. 섬세한 그림은 잘 못 그리지만, 감성적인 PPT는 잘 만들 자신이 있다. 뼈대가 있어 팔다리가 두툼한 아버지와 뼈대가 가늘고 마른 엄마를 동시에 닮아 팔다리가 두꺼운 듯 얇은 듯 두껍고,  몸 전체적으로는 살집이 있는 편이 아니지만 말랐다고 하기엔 무리인 몸을 가지고 있다.



양손잡이의 장점을 소개합니다


양손잡이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일의 효율성 증가'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같이 일하니, 남들에게 거슬릴 게 나에겐 너무 편한 것이다. 양손잡이의 장점을 한번 늘어보겠다.


1. 마우스 조작하면서 필기하기

이거 정말 최고다. 공부 효율성 짱이다. 대학교 2학년일 때서야 '마우스 조작하면서 필기하기'가 나한테만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ITQ 강좌를 들을 때, 내 옆에 앉은 언니가 마우스 조작하다가 교재에 필기하고, 또다시 마우스 조작하는 바쁜 오른손을 보고서야 알았다.

시험 기간이 되면, 나의 양손은 풀가동돼서 벼락치기의 시급함을 조금은 느긋하게 한다.




2. 술과 안주를 동시에 즐기기

'밥 먹기'는 왼손으로, '잔 들어 마시기'는 오른손으로 처리한다. 이 둘의 만남은 술자리에서 정말 괜찮은 조합이 된다. 술이 약한 편인 나는 왼손으로 안주를 집어 먹고, 오른손에 들린 술잔의 술을 쭈욱 마시고, 다시 왼손으로 안주를 집어 먹는다. 그럼 입 쓴 시간이 단축돼서, 술 약한 나라도 조금은 더 요령 있게 버틸 수 있게 된다.


3. 집게질과 가위질이 상충되지 않아, 고기 편하게 굽기

고기 굽기가 전혀 불편할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은 대부분 집게 질 or 젓가락질이 오른손이고, 가위질 또한 오른손이니, 고기를 집으며 가위로 자르는 일련의 행동이 살짝 불편하다고 한다. 이를 중학교 가서야 알았는데, 깨달은 이 후로 웬만하면 굽는 걸 자처하고 있다. (but, 잘 못 구움)


5. 오락실 펀치 해서 손목이 나가도, 아무렇지 않게 학교 생활 하기

이걸 보고 헛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정말 나한테 일어났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현장학습으로 영화관을 갔다. 영화를 다 보고 친구들이랑 근처 오락실에서 놀았는데, 친구 한 명이 나보고 펀치 한 번 남았는데 해보겠냐고 제안을 했다. 재밌어 보였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오른손으로 강타를 날렸다. 요령 없이 펀치를 날린 내 손목은 굉장한 각도로 꺾였고(친구의 증언이다), 곧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다.

난 너무 놀라서 즐거운 오락실에서의 한 때를 강제 종료하고 바로 집 근처 병원으로 갔다. 인대가 심하게 부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소견서를 적으실 때, 나보고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물어보셨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우물쭈물 거리면서 "오...오락실..펀치요..."라고 하자, 의사 선생님께서 소견서에 '오락실 펀치'라고 멋들어지게 적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부상당한 손목은 오른쪽이다. 글씨 쓰는 손은 왼쪽이다. 그래서 붕대를 감았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학교 수업을 잘 듣고, 필기도 잘할 수 있었다.

아, 쓰다 보니까 기억이 더 났다. 내가 붕대 감았을 때, 내 앞에 있는 친구도 며칠 전에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 팔에 금이 가 붕대를 감았다. 나란히 붕대 감은 우리가 웃겼던지, 우릴 보시는 선생님들마다 "너네 둘이 싸웠냐?"라고 물어보셨다.

어찌 됐든, 내가 앞으로 또 어떤 바람이 불어 오락실 펀치를 해서 손목이 나간다 해도, 필기는 계속될 것이다. Keep Calm And Write On!


6. 김치 볶음밥 해 먹으려고 김치 썰 때, 젓가락으로 김치 집으면서 칼질하기.

이거 은근 유용하다. 김치를 썰 때, 맨 손으로 잡기도 좀 그렇고, 비닐장갑을 하나 빼서 쓰기엔 좀 아깝다. 그래서 나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도마에 옮기고, 그 젓가락으로 김치를 잡아가면서 칼질을 한다. 왼손으로 젓가락질하고, 오른손으로 칼질하니 불편할 게 없다.



단점을 집자면?


1. 손날에 묻는 연필 가루 or 볼펜 잉크

어쩐지 글씨에 블러 효과가 나오더라.

왼손으로 필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사진을 공감할 것이다. 문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니, 왼손잡이들은 글씨를 쓰면서, 바닥을 쓰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중학교에 갓 진학하고 반 배정 고사를 봤을 때, 난생처음 OMR 카드를 썼다. 컴퓨터 사인펜으로 다 마킹을 하고, 잘 마킹했나 확인하려는 순간 난 경악했다. 왼손으로 슥슥 칠하면서 '쓸림'에 대한 신경을 안 쓴 탓에, 마킹 부분이 전부 번져 있었다. 그때부터 왼손으로 번지게 하지 않고 마킹하는 법의 중요성을 알고, 주의하기 시작했다.


OMR 카트. (출처 : http://blog.daum.net/_blog/photoList.do?blogid=0JLn8&categoryid=276884)


2. 여러 명과 함께 식당에 가면, 내 자리는 왼쪽 가장자리로 자동 확정

그리고 여러 명의 친구들과 식당에 가면, 아무래도 난 왼쪽 가장자리에 많이 앉게 된다. 난 왼손으로 밥을 먹으니, 왼쪽 가장자리에 앉아야 오른손을 쓰는 다른 친구들과 불편하지 않다. 친한 친구들과 식당에 가면 친구들이 알아서 나를 구석으로 모는데, 아주 고맙다.





"난 왼손잡이야"가 아니고 "난 양손잡이야"를 주제로 이번 글을 써내려 갔다. 나를 양손잡이로 낳아주시고, 왼손을 '틀린' 손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린다.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양손잡이든,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잡이만의, 왼손잡이는 왼손잡이만의, 양손잡이는 양손잡이만의 장점이 있다.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특별한 손을 사용하는 우리는 아무것도 망치지 않는다. 그 나름대로의 개성과 장점을 살려 나를 발전시킬 건데, 남이 뭔 상관이야? 그냥 내 모습대로, 내 멋대로 살면 되지!


Who Cares? Don't Sweat It!

알게 뭐야? 걱정하지 마!





음악을 쓰는 여자의 더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시다면.

http://blog.naver.com/colday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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