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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상 Apr 28. 2023

"시계 보는 법 알아?"

The Snowman OST - Walking In The Air

아티스트 : Howard Blake
발매 : 1982
영화 [The Snowman]의 OST


https://youtu.be/upH1QZU4Z0Y

cf. YouTube, The Snowman - Walking In The Air


We're walking in the air

We're floating in a moonlit sky

The people far below are sleeping as we fly


하늘을 날고 있어

달빛 하늘을 떠가고 있어

날아가는 우리 아래 잠든 사람들 있네


I'm holding very tight

I'm riding on the midnight blue

I'm finding I can fly so high above with you


손 세게 붙잡고

푸르고 짙은 바다를 지나고 있네

그대와 함께 저 높이 날 수 있었어


All across the world

The villages go by like dreams

The rivers and the hills

The forests and the streams


세상을 가로지르면

꿈꾸듯이 스치는 마을이 보여

강물과 언덕도

삼림과 냇물도


Children gaze, open mouthed

Taken by surprise

Nobody, down below

Believes their eyes


문득 하늘 바라본 아이들

열린 입 다물지 못했네

저 아래 어느 누가

이 경관 믿을까


We're surfing in the air

We're swimming in a frozen sky

We're drifting over ice

And mountains floating by


하늘을 나아가고 있어

언 하늘에서 헤엄치고 있어

떠오른 우리 설산 너머로 건너가네


Suddenly swooping low over an ocean deep

Rousing up a mighty monster from his sleep


홀연히 내려가니 깊은 대양 닿을 듯하고

커다란 고래는 잠에서 깨어났네


We're walking in the air 

We're dancing in the midnight sky 

And everyone who sees us 

Greets us as we fly 


하늘을 날고 있어

새벽 하늘을 거닐고 있어

날아가는 우릴 모두가 환대해 주네




'눈사람 아저씨(The Snowman)'의 OST인 'Walking In The Air'를 들으면 자연스레 둘째고모가 먼저 생각난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고모께서는 한 때 컬러링으로도 설정을 해놓으셔서, 고모께 전화를 드릴 때마다 어린 소년이 미성으로 부르는 "We're walking in the air~"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이 노래와 애니메이션을 다 좋아한다. 눈사람과 아이가 하늘을 날면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노래는 어렸을 때 봤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에 깊게 남아있다.


나는 고모가 많다. 큰고모, 둘째고모, 셋째고모, 막내고모까지 총 네 분이다.

고모들이 다 나를 많이 귀여워해주시고 예뻐해주셔서 모든 고모들과의 추억이 여러가지 있지만, 먼저 둘째고모와의 추억을 꺼내볼까 한다.



나는 무슨 대(代)야?


유치원 때(내 기억 상)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조그마한 연립주택에서 부모님, 조부모님, 언니, 오빠, 그리고 둘째고모랑 막내고모와 함께 살았었다. 복작복작 했지만 즐거운 추억이 많았던 집이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셨고, 열심히 우리 삼남매를 키워주셨다.

특히 고모들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우리를 돌봐주셨는지, 지금도 고마울 따름이다. 동화책을 가져와서 직접 읽어주시고, 애니메이션도 같이 보고, 맛있는 간식도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말도 안되는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해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을 해주셨다. 그 대표적인 질문으로 "나는 무슨 대(代)야?"가 있다. TV 속에서나 가족들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라는 단어를 듣다보면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 해당이 되는거지?'

그때 나의 나이,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니 5살 내지 6살 정도 였을 거다. 그러니까 십 대에도 못 미치는 '어린이'인 것이다. 별난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고모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세윤이는 아직 많이 어려서 '대'까지는 아직 멀었어. 대신 몇 년 있으면 십 대가 될거야."라고 대답해주셨다. 십 대, 이십 대, 이렇게 '대'가 붙는 나이가 아직 안되었다니. 나는 괜스레 아쉬워했다. 숫자가 들어간 명확한 단어로 규정되고 싶었는데 그 곳에 소속되지 못한 아쉬움이랄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대'가 붙여진다고 하니, 희망을 가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드디어 십 대가 되었을 때, 고모가 세뱃돈을 주시면서 "우리 세윤이 드디어 십 대가 되었네!"라면서 축하를 해주셨다.

지금 나는 만 29세다. 남 얘기 같았던 '내일 모레 서른'이 나에게 온 것이다. 고모, 저 이제 곧 세번 째 '대'를 맞이해요!



시계보는 법 알아?


동화책을 주력으로 하는 출판사에서 근무하셨던 둘째고모는 재미난 동화책을 자주 가져와 주셨다.

'강아지똥', '찔레꽃 울타리 - 사계절 이야기', '피터와 늑대',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등등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아직까지도 삽화와 내용이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이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Love You Forever)'는 어렸을 때 그저 즐겁게만 읽었는데, 성인이 되어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다시 읽어보는 데 얼마나 코 끝이 찡해 오던지.


저자 : 로버트 먼치, 그림 : 안토니 루이스, 출판 : 북뱅크, 2000


고요하고 잔잔한 어느 날, 둘째고모께서는 늘 그랬듯이 열심히 나와 놀아주셨다. 동화책을 목소리 변조까지 하며 읽어주시는데 재밌어도 너무 재밌는 것이 아닌가? 나는 꺄르르 웃다가 "한 번 더 읽어줘!"라고 했다. 고모는 혼을 담아 다시 처음부터 읽어주셨다. 그러다 그 책의 마지막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또 "한 번 더!"를 외쳤다. 그렇게 "한 번 더!"를 몇 번이나 했을까? 많이 지쳤을 고모가 나를 바닥에 얌전히 눕히고, 본인도 그 옆에 누우시고는 벽에 걸려있는 아날로그 벽시계를 가리키며 이렇게 질문하셨다.

"세윤아, 시계보는 법 알아?"

나는 그 때 5살 내지 6살 남짓한 유치원생이었어서 시계 보는 법을 몰랐다. 아마 '시계'라는 단어 조차도 받아쓰기 시험에서 '시개'라고 쓰지 않았을까.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저기 가장 긴 바늘(초침)이 한 바퀴를 돌면, 그 다음 긴 바늘(분침)이 한 칸 움직여. 그리고 그 바늘이 한 칸씩 해서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가장 짧은 바늘(시침)이 조금씩 움직인다? 정말 그렇게 되나 한 번 볼까?"

그렇게 고모는 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의 옆에서 한 시간 남짓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의 끝없는 "한 번 더!"의 흥분은 진정이 되었다.

"이제 그만! 고모 힘들어."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차분하고 우아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어린 조카의 마음에 상처 하나 내지 않고 무한 동화책 읽어주기를 마무리 하시다니. 무한 감탄, 무한 감동.



한여름 밤의 부채질


아직 집집마다 에어컨이 보급화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집은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보내야 했다. 초여름을 지나 밤이 되어도 열이 이글이글 오르는 한여름의 열대야가 찾아오면 잠에 드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그날도 최대한 빨리 꿈나라로 가기 위해 눈을 꼬옥 감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옅은 바람이 기분좋게 팔락팔락- 느껴졌다. 둘째고모께서 더워하는 어린 조카를 위해 잠도 주무시지 않고 열심히 부채질을 해주셨던 거다. 잠이 들락말락한 상태여서 또렷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둘째고모와 막내고모가 번갈아가며 내가 잠들 때까지 계속 부채질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렇게 고모들 덕분에 나는 더위를 잠시 잊고 금세 잠들 수 있었다.



추억의 설탕빵


나는 고모들이 간식으로 자주 만들어 준 '설탕빵'을 참 좋아했다. 식빵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리면 완성인 간단한 레시피이다.

십 대에도 못 미쳤던 어린이가 어느새 삼십 대를 앞둔 어른이 되어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날, 문득 설탕빵이 먹고 싶어 집 근처 마트에서 식빵을 사서 후라이팬에 살짝 구웠다. 그리고 설탕을 솔솔 뿌려서 살짝 녹기를 기다렸다가 한 입 먹어 보았다. 에구, 추억의 그 맛이 안 나네.

어쩔 수 없지. 아쉬운 대로 설탕 같은 눈이 솔솔 내려오는 추억의 '눈사람 아저씨' 애니메이션을 오랜만에 봐야겠다.


'눈사람 아저씨(The Snowman)'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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