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일곱송이 수선화
아티스트 : 양희은
발매 : 1971.09.01
[고운노래 모음] 앨범의 일곱 번째 트랙 곡
눈부신 아침햇살에 산과 들 눈뜰 때
그 맑은 시냇물 따라 내 마음도 흐르네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도
I may not have mansion, I haven't any land,
Not even a paper dollar to crinkle in my hand,
But I can show you morning on a thousand hills
And kiss you and give you seven daffodils.
난 집도 땅도 없고,
수중에 가진 돈도 없지만,
수많은 언덕 위에 밝아오는 아침을 보여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께 입 맞추며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릴게요.
I do not have a fortune to buy you pretty things,
But I can weave you moonbeams for necklaces and rings,
And I can show you morning on a thousand hills,
And kiss you and give you seven daffodils.
당신께 예쁜 물건을 사줄 능력은 안되지만,
달빛을 엮어 만든 목걸이와 반지를 당신께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수많은 언덕 위에 밝아오는 아침을 보여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께 입 맞추며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릴게요.
긴 하루 어느덧 가고 황혼이 물들면
집 찾아 돌아가는 작은 새들 보며
조용한 이 노래를 당신께 드리리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도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도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
아버지께서 지방에 며칠 간 내려가셨던 어느 날.
오랜만에 엄마를 단독 선점하여 엄마와의 여유로운 저녁의 한 때를 보내고 있었을 때, 엄마는 대뜸 노래를 듣자고 하셨다. 양희은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서유석과 함께 부른 <하늘> 등등 양희은의 노래들을 신청했다. 그리고 <일곱송이 수선화>도 듣자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일곱송이 수선화>라는 곡을 처음 듣게 되었다.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도
양희은의 오리지널 곡이 아닌 외국 곡을 번안한 거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냈을까? '가난한 이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이 노래를 듣는 이들은 그 마음이 결코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알거다.
But I can show you morning on a thousand hills
And kiss you and give you seven daffodils.
'가난한 이 마음'은, 언덕 위의 멋진 아침 풍경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에 부푼 큰 마음인 것이다. 직역과 의역 사이, 그 모호한 경계에서 가장 멋진 문장을 만들어 낸 번안가가 새삼 존경스럽다.
엄마는 옛날 양희은 목소리가 좋아.
엄마는 양희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말했다.
"요즘 양희은 말고, 옛날 양희은으로 틀어줘. 엄마는 옛날 양희은 목소리가 담백하고 까랑까랑해서 좋아."
나는 요즘 양희은도 옛날 양희은도 다 좋은데, 엄마는 취향이 아주 확고하다. 기교가 들어가고 성악 발성이 느껴지는 요즘 목소리는 별로 안좋으시단다. 같은 <아침이슬>이어도 초창기 70년대 버전이 좋지, 요즘 방송에서 부르는 버전은 별로란다.
우리 엄마가 1960년 생이니, 엄마가 한창 학생일 때 들었던 70년대의 '담백하고 까랑까랑한' 양희은 목소리가 더 익숙하시긴 하겠다. 우리 엄마가 학생이었을 때, 그때는 하루하루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다사다난하고 복잡했던 시기였겠지. 하지만 그때는 낭만이 있었다고들 한다.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라고 말해도 그 마음이 귀하게 느껴지고 시의 한 구절처럼 아름답게 여겨지던 시절.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팍팍한 요즘과 다르게,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어도 낭만이 있던 시절.
소프라노 조수미가 어머니께 "엄마의 고등학생 시절은 어땠어요?"라고 여쭈어보니, 어머니께서는 "그때는 먹을 것도 없었고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릴케의 시가 있어서 행복하게 여고 시절을 보냈단다."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끔찍했던 6·25 전쟁을 겪었을 그 시절에도 낭만과, 릴케가 말했던 '반짝이는 행복'이 있었던 것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엄마와 같이 노래를 듣는 시간은 소박하지만 행복하다. 잔잔하지만 아름답게 물빛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호숫가에 편하게 앉아있는 기분이다.
60년대에 태어난 엄마와, 90년대에 태어난 내가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지금까지도 같이 듣는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아마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목소리의 그 '옛날 양희은'이, '요즘 양희은'이 된 지금까지도 노래를 계속 불러주신 덕분일 것이다. 옛날 양희은의 노래를 타고타고 지금에 다다른 엄마. 그리고 요즘 양희은의 노래를 타고타고 70년대에 당도한 나. 우리 둘의 인생에는 양희은이라는 동일한 발자취가 남겨진 셈이다. 고마운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