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30만 년 넘게 숨겨온 비밀
“인간은 모두 원죄를 지녔다”
이 말은, 모태 신앙에 가까웠던 내게 너무나 황당했던 말이다. 세상에 대한 뚜렷한 주관도 없던 어린 시절임에도, 죄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순수했기에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그런 내가 ‘원죄’에 대해 말하려 한다.
“부모는 모두 원죄를 지녔다.”
삶은 고통이다. 인간은 고통에 맞닥뜨리면 그것을 극복하거나 외면하려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결국 고통과 동거해야만 한다. 그렇게 고통이 점점 커지면, 결국 삶은 고통에 잠식된다. 거대한 고통은 필연적으로 삶에 죽음을 끌고 온다.
그러다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거대한 고통과 함께 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삶을 멈추는 것이 낫지 않나?”
여러 가지 질문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죽음이라는 무거운 결정이다.
그러나 그중 누군가는 이 결정을 숙고한 끝에, 또 하나의 진실에 다다른다. 그 진실은 인류가 30만 년 간 숨겨온 비밀이자,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도록 인간의 DNA 깊숙이 새겨진 금기다.
“나는 태어남에, 동의한 적이 없다.”
이 명백한 진실은 깊숙이 은폐되어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한 뒤, 주위 사람들에게 ‘동의 없이 태어난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대부분은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한 사람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워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삶에 대한 거대한 고통을 깊이 느낀 사람만이 이 결론에 다다를 자격이 주어진다. 원인과 서사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존재를 동의하지 않았다’라는 인식은 큰 고통의 부산물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내 경험을 일반화하긴 어렵다. 이는 검증된 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권위자의 말, 실증적 연구, 객관적인 데이터 같은 이른바 ‘공신력 있는’ 지식 만을 신뢰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이 있다. 그런 ‘지식 생산자’들은 내가 말하는 이런 종류의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고, 그것을 결코 중요한 문제라 여기 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의 주류가 아닌 존재, 일탈, 비적응 같은 문제에 대해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류’에 완벽히 속한 이들은, 인류에서 벗어난 이들의 문제를 결코 감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한 생명이 처음 어미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 ‘태어난다’고 말한다. ‘태어난다’의 어원은 ‘태어나다’라는 동사로, “사람이나 동물이 형태를 갖추어 어미의 태(胎)로부터 세상에 나오다”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태어나다’는 말은 형식은 능동이지만, 의미는 수동인 역설적인 말이라는 것이다. ‘생기다’, ‘벌어지다’, ‘아프다’, ‘배고프다’, ‘잠들다’도 이와 같은 형식이다.
누구나 신생아가 자아가 없으며, 사고를 하지 못하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잉태와 출산은 오로지 부모(혹은 그에 상응하는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 ‘태어남’은 본질적으로 강제지만, 사회적 맥락에서는 주체적 행위인 것처럼 포장된다.
누군가 수명이 다해 죽는다면, 그 죽음은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강제로 목숨을 빼앗는다면, 그 행위는 살인이다. 가해자는 법의 처벌과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된다. 당연히 그 죽음은 용납되기 힘들다.
“동의하지 않은 죽음을 선물하는 것은 살인이다."
“자유의사 없이 강요된 노동은 강제 노동이다.”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은 폭행 혹은 추행이다.”
이처럼 타인의 신체, 정신, 시간, 삶 등을 침범하는 행위는 모두 폭력으로 규정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분명히 물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난 것인가, 태어남을 당한 것인가?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명하다.
그렇다면, 동의 없이 삶을 타인의 손에 쥐어주는 행위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것은 ‘강생’이다. 강요할 강(強), 날 생(生), 즉 태어남을 강요하는 것이다.
살인은 생명을 파괴하고, 출생은 존재를 강제한다
부모의 원죄는 자녀를 강생한 것이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동의할 수 없는 세상에 생명을 내던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