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박김치사랑

아픔

by 뮤즈 윤담

나박김치사랑



“나박김치를 그냥 냉장고에 넣어 익혔더니 글쎄 너무 시었어요."

“그래도 실온에서 익어서 팍 신게 아니면 괜찮을 거예요."

“네, 아주 못 먹을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구역장님 신거 좋아하세요?”


나를 주기 위한 나박김치 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녀가 나박김치를 담갔을 데 맛있다고 말 한 그 날, 밥을 통 못 먹는다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내 온 카톡 내용이다.

"구역장님, 이따 범계역으로 나오세요. 나박김치 팔러 지금 출발합니다. 입맛 없을 때 드시면 좀 나으실 거예요. “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그녀의 음성은 밝고 따뜻했다. 입맛이 없다고 괜한 말을 했구나, 후회했다. 다리가 불편하니 절대 오지 말라는 나의 전화를 따돌리고 기어코 지하철을 세 번이나 환승해 가며 먼 거리를 달려왔다.

그녀는 고관절과 림프에 암이 전이되어 양쪽 겨드랑이의 통증으로 잠자는 것도, 걷기도 힘든 상태였다. 고통을 마다하고 편치 않은 다리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다 저녁때 나박김치 한 통을 전해 주고는 선걸음으로 돌아갔다. 금요일 밤 기도회를 드린다고 교회로 되돌아 간 그녀를 나는, 평생 잊지 못 할 거다. 친정 엄마가 담가 주시던 담백하고 깔끔한 서울식 나박김치 그 맛이었다. 고맙다는 말 보다 최상의 말은 없을까….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는, 국립 암센터에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나박김치는 그렇게, 내게 왔다.

샘물 같은 나박김치였다.


3년 전 내가 다니는 교회로 옮겨온 그녀는, 30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고 회복된 후 홀로 어린 두 자녀를 키우며 편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간경화로 투병 중인 남편을 병수발 7년 끝에 먼저 보내고, 3년 후 그녀는 유방암이 발병 되었다.

이제 회복이 되어 딸, 아들이 장성하여 자리도 잡아 그녀의 삶을 살아 볼 차례가 되었는데 3년 전, 유방암이 재발 되어 치료 중이다. 처음에 찾은 병원의 의사가 제대로 치료만 해주었더라도 조금은 더 생명을 연장 할 수 있었을 거란 안타까움이 있다. 그 의사는 회복이 불가하다는 판정 아래 본인이 연구 중인 임상 실험 약을 투여했고, 입안이 헐고 구내염이 목젖까지 퍼져 물 한 모금 못 먹는 부작용을 동반했다. 그녀는 “내가 마루타가 된 기분이에요”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죽는 게 낫겠다며 고통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그녀를 위한 기도는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살려 달라고 매달린 혈우병 여인처럼 간절했다.

약 먹기를 중단하고 국립 암 센터로 옮긴 후 항암치료를 받아왔지만, 전신에 퍼진 암세포를 이길 힘은 없었다. 보름 전에 만난 그녀의 얼굴은 황달기가 완연했고 복부에 물이 차서 배가 불러 있었다. 앞으로의 시간이 두, 세 달이라고 했던 의사의 말이 두 달을 채 못 넘기고 너무 빨랐다.

그렇게 그녀는, 지난 어린이날 새벽 주님 곁으로 갔다.

지금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곁을 떠나기 이틀 전, 서울로 이사 온 집들이 선물이라며 내게 예쁜 찻잔과 찻주전자를 소포로 보내온 게 그녀의 유품이 되었다.


그녀가 보고 싶다.

쉴 틈 없이 달려왔다고,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다고, 속내를 울음으로 터트린 그녀가 이제는 주님이 계신 천국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한다.

그녀가 베풀고 떠난 사랑은 셀 수 없이 많다. 귀한 사랑을 기억한다.

그 때 먹었던 그런 나박김치 맛을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까.

“힘드시지요?” 물으면, “괜찮아요.” 라며 씩씩하게 명랑한 웃음으로 답한 그녀의 하얀 피부가 내 앞에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린다.

그녀가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이 된 예쁜 찻잔과 찻주전자는 말하고 있다.

“행복하세요,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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