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호수

by 뮤즈 윤담

잔잔한 호수


“남숙이를 처음 보고 잔잔한 호수 같다는 인상을 받았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줍었지만 황홀했고 뛸 듯이 기분 좋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말똥구리만 봐도 까르르 넘어가던 열여덟 소녀시절 나에 대해 이렇게 근사한 글을 써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돌멩이 던져 물 파장을 만들던 향수가 떠오르면 저 멀리서 잔잔하게 떠올려지는 잔상이 있다. 누구 돌이 더 멀리 가나, 누가 더 예쁜 파장을 만드는지 소소한 얘기를 나누던 때가 그립다.

재잘거림이 많은 여고시절, 마인드컨트롤을 하신다는 젊은 남자 선생님이 3학년 때 전근을 오셨다. 키는 작으셨고 얼굴도 체구도 모든 게 아담했던 분이셨다. 이목구비가 또렷하신 그 선생님은 오시자마자 우리들의 영웅이 되었다.

마인드컨트롤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마인드와 통제라는 뜻을 가진 컨트롤을 합한 개념으로서 본인을 포함한 누군가의 마음과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을 말한다는 뜻이다.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그걸 배우겠다고 몰려든 우리들로 인해 교무실은 북새통을 이루었고 옆자리에 계신 선생님들도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마인드컨트롤을 배운 4명의 여고생들이, 남자 여자 선생님들 할 거 없이 손가락 하나로 들어 올리는 망신스럽고 믿기지 않은 신기한 사태가 여기저기에서 벌어졌다. 선생님들은 설마 자신들이 들어 올릴까 하는 자만심에 자신만만했지만 번번이 참패였다.

그 선생님한테 슬그머니 관심이 가던 어느 날, 당시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하던 앙케이드를 써 달라고 갔다. 나를 처음 보신 느낌은 어떠했는지, 결혼은 연애냐 중매냐 첫 사랑은 누구였는지, 당시 사춘기 여학생들한테는 충분히 호기심과 관심거리 일 수밖에 없었던 짓궂은 질문들이었다.

그 날 선생님은 나를 ‘잔잔한 호수‘ 같다고 하셨다. 차분해 보이는 인상과 몇 가지 이유를 설명 해 주셨지만 지금은 그것 외에 기억나지 않는다.

“물이 괴어 있어 못이나 늪보다 넓고 깊은 곳“을 호수의 의미라고 사전에서는 설명하고 있는데 과분한 칭찬 같았다.

그 후로 나의 인상 때문인지 잔잔한 호수 같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마음이 순수하며 맑고 영롱했던 소녀가 이만큼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출렁이는 검은 파도로 보이는 건 아닐지. 욕심과 교만함,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 내 모습도 젖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어디에서 잔잔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본다.

수줍음 많고 순수했던 맑고 깊은 잔잔한 호수, 남숙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너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니, 끊임없이 되묻곤 하지만 예전의 잔잔한 호수를 찾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나의 블로그 이름도 잔잔한 호수다.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한 평 땅이 없어도 족합니다.’ 나의 블로그의 한 줄 평도 이렇게 올려 져 있지만 나이 들어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던 그 마음은 무색 할 정도로 퇴색해 버린 자만심에 불과 했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런 현상일 뿐인데, 다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어… 이런 합리화를 하며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스며들고 있다. 그 안엔 투명한 내가 아니었다. 세상 속의 나만 보인다.

인생 백세시대라는데 어떤 모습으로 나를 찾아야 할까 늘 고민거리다. 게을러서 건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허약하고 볼 품 없는 노인이 되어 가면 어쩌나. 흙으로 빚으시어 아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고 날마다 기도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나약함에 고개 숙이고 겸허 해 질 수 밖에 없다.

이제 예순의 나이를 바라보며 세속적이지 않겠다는 마음도 나를 지켜내지 못 하고 있다. 담담하며 단단하게, 불의를 보고 분노 할 줄 아는 당당함과 순수함으로 열여덟 살의 향기를 풍겨내고 싶다. 던져진 돌에 파장이 인다 해도 잔잔한 물결로 물살을 지켜가는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싶다. 하나님 보시기에 잘했다 칭찬 들을 수 있는 나이고 싶다.

그 선생님이 지금의 나를 보시면 뭐라 써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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