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침

by 뮤즈 윤담

그 날 아침

강남 성모병원 사거리, 오전 열시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왠지 상쾌하게 다가오는 아침. 신선한 아침 공기에 차창 밖으로 눈이 돌려진다.

라디오에선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이 힘차게 흘러나온다. 듣는 내 마음이 짧은 순간 서글픔과 불쌍한 마음에 머물고 만다. 군대 행진곡이 무색해질 만큼.

음악과 함께 내리는 비에 한껏 내 마음을 맡겨보지만, 그런 내 마음을 이내 멈추게 한다.

환자복을 입은 노인이, 간병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이끄는 휠체어에 앉아 끌려가듯 도로를 걷고 있다. 산책 나온 모양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목적 없이 앞을 직시하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듯 가는 모습이 눈에서 떠나질 않는다. 끌어 주는 대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그의 상황이 서글퍼 보인다. 휠체어가 가는대로 이끌려 가는 노인한테 무슨 기운이 남아있을까. 우산을 받쳐주지 않았다고 한들, 왜 안 씌워 주냐고 큰소리 한 번 낼 수 있었을까. 편치 못한 몸에 비를 맞으며 휠체어는 걷고 있다. 어쩌면 그 할아버지는 자기가 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가 아파서 저렇게 시린 얼굴일까. 부인이라도 있어야 할 자리에, 무표정하며 의무감으로 무장한 듯 보이는 오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인은 먼저 세상을 떴나, 자식들은 모두 직장에 나갔나, 하는 측은함

에 한없는 아픔이 나를 죄어온다. 아무런 동요도 없이, 여전히 비는 내린다.

어느 새 신세계백화점에 들어선다. 파란 신호로 바뀐 기억이 없는데 사거리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지하 주차장이다.

반가운 수필 수업 시간.

조금 전에 보았던, 휠체어에 몸을 실은 노인의 안색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다. 노인의 몸짓과 얼굴과, 표정 없는 눈가가 아른거려 편치 않은 마음이다. 요즘은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볼 때마다 마음이 서글퍼진다. 백세 시대에 저런 상황이 안 되리라는 보장이 있나. 미래의 나의 모습이라고 상상해 보니 아찔하다.


요즘 사회적으로 노인 문제가 화두다. 누가 풀어가야 하는지, 답이 없다. 내가 책임지고 나를 지켜 가야 한다. 사회보장 제도가 아무리 잘 되어 있다 한들 어디까지 따라 갈 수 있겠는가. 청년들은 점점 결혼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자녀 양육에 대한 미래를 계획 하지도 않는 현실이다. 독신이 로망인 양, 한껏 자신 있다고 으쓱대는 청년들한테 일침을 가한 어느 앵커의 말이 떠오른다. “그들이 나이 들어 독거노인이 됐을 때를 그들은 알까요?”

초점 없는 허연 눈동자가 안 되려면,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도살장으로 가는 듯 웃음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 안 되려면, 지금 잘 살아야 한다. 내 몫이다.

큰 소리 치기에는 너무 허약해 보이는 지금의 나의 모습. 부끄러운 나머지 너 지금까지 뭐했냐고, 혼이라도 내고 싶다. 아흔을 넘긴 나를 거울에 비춰본다. 병들어 누워 있는 날에는 그 책임을 어찌해야할까. 부끄러움이 스며든다. 부모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슬퍼할 자식들 얼굴 떠올리며 건강 지키라고 했던 스승님의 말씀이 오늘따라 더 서글프게 내려앉는다. 엄마 때문에 가슴 아픈 일을 안겨 주어서는 안 되는데. 엄마 때문에 자식들을 울려서는 안 되겠기에.

그 날 아침의 노인은 비를 맞는 줄도 모른 채 어디까지 갔던 걸까. 돌아오는 마음은 얼마나 시렸을까. 아버지를 뵈러, 남편이 걱정 되어 저녁에 들른 가족들이, 아버지, 남편의 차가운 아침 산책을 알기나 하려는지. 보이지 않게 흐르는 눈물을 볼 수나 있으려는지.

점점 메말라가는 사회 정서에 현대인들의 병은 깊어만 가고 있다. 누구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깊이 뿌리 박혀 있으니 잘라 낼 도리가 없다.

서로서로 다독이며 사랑하고 긍휼한 마음이라면, 비를 맞으며 산책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을 것을. 비를 맞게 하는 그런 간병인 따윈 없었을 텐데.

그렇게 만든 현실과 사회가 야속하고, 사랑보다는 이기적인 인간들에 대한 회의가 몰려오는 아침이다.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믿은,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어라.

내내 그 아침에 나를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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