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사임당 품처럼
늦가을의 절정은 우리를 가만 내버려두질 않는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의 시가 떠오르는 가을이 우리를 황홀하게 한다.
가을을 보내기 아쉬운 나의 마음은 아랑 곳 없이 가을은, 제 잎을 떨구어 빛바랜 낙엽으로 거리를 채운다. 바스락 소리에 다람쥐도 놀라 달아난다. 겨울 같던 어제의 칼바람이 무색 할 정도로 포근한 만추의 주말. 바쁜 아이들과 동행하여 떠난 강릉에서의 하룻밤 가벼운 여행은 엑기스였다.
하늘. 구름. 바람. 바다. 파도. 모래. 단풍. 낙엽.
헨델의 메시아, 테라로사, 차가운 물회. 강릉과 함께 벗 할 수 있는 것들이 감정을 사로잡는다.
거리는 조용하고, 차도 사람도 붐비지 않는 강릉의 차분함이 마음을 끈다. 퇴직하면 여기 내려와서 살자고 남편이 얘기한다. 식당의 인심도 후하고 넉넉하여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사임당의 고고한 인품과 아름다움이 도시에 내려앉은 듯, 고즈넉함이 저녁놀에 물들어 있다. 해마다 강릉을 찾는 매력적인 이유이고, 정이 가는 이유이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나 자란 강릉은, 오죽헌과 선교장 등 여러 가지를 통해서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솔 나무가 빼곡히 해변을 채우고 솔 향이 가득한 경포대, 정동진, 볼거리도 다양하며 풍부하다. 사임당의 기품과 이이의 덕망이 조용하고 겸손하게 말을 한다. 교양과 학문을 갖춘 훌륭한 여성상으로 꼽히는 사임당의 지혜와 기량이 얼이 되어 지금의 강릉으로 이어오게 했으리라. 어머니 품처럼 온화하고, 단아하고, 넓고 깊은 자애로움을 안고 매력적인 강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노래한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듣기위해 만추의 강릉을 찾았다. 강릉시립합창단이 두 시간 반 이라는 긴 시간을 숨죽이며 집중하게 한다. 지휘자의 춤추듯 부드러움 뒤에 뿜어내는 강렬한 지휘봉에 매료 되었고, 예수님의 고난을 눈앞에서 보이듯 헨델의 선율은 기립 박수로 환호하게 한다. 메시야의 꽃인 '할렐루야'가 터져 나오자 객석에 앉은 회중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을 때는 장엄했다.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듯 엄숙함의 전율이 온몸을 감싼다. 환희와 감동의 여운으로 강릉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요즘 인기 있는 하나로 자리매김 한 호텔 바캉스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신선하며 매력적인 휴가로 떠오르고 있다. 호텔에서 하루, 이틀 묶으며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쉼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몸과 마음도 호사를 누린다.
이튿날,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위해 잠을 설쳐가며 눈을 떴다. 일출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동해만의 보너스다. 동해 하늘은 서서히 빛을 밝히고 ‘태양은 오늘도 떠오른다.’ 라는 기량을 당당하게 뿜어낸다.
솔 내음이 가득한 경포 바닷바람의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호텔에서의 조식을 즐기러 가는 멋과 맛이 있다. 편한 얼굴과 복장으로 자리를 찾아 앉는다. 창가 쪽은 부지런한 이들의 차지련만, 비어있는 자리가 눈에 띈다. 따사로이 창을 뚫고 굴절 되는 빛이 화사하다. 기분 좋은 시작이다.
바다는 푸르고, 모래는 길고 넓게 펼쳐져 있다. 하얀 거품을 내뿜은 파도는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신다. 파도를 가르며 쾌속으로 달리는 보트가 짜릿하게 눈에 잡힌다. 겨울바다의 싸한 공기가 얼굴에 와 부딪혀 코끝을 싸늘하게 한다. 한적함은 있지만 고요하진 않다. 발에 밟히는 모래알이 보드랍다.
그 날의 행복은 사진 속의 얼굴들이 말을 한다. 그 날 떠오르는 태양만큼이나 밝고 환하다. 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최고의 명작이다.
헨델의 메시아로 마음을 풍요롭게, 호텔에서의 느긋한 휴식. 겨울 냄새 가득한 싸한 바다를 가슴에 안은 1박2일의 짧은 여행. 늦은 가을을 보내기에 소박하며 단아한 시간이다.
얼큰하고 찐한 장칼국수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한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잠시 쉬어간다.
입안에서 맴도는 비엔나커피의 달콤함은, 돌아오는 내내 사임당의 품에 젖어들게 한다.
강릉을 기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