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樂 투어> 폴란드, 크라쿠프(Krakow)
내가 방문하는 도시들은 대부분이 음악과 관련한 호기심의 발동으로 작정하고 찾아가는 곳이지만, 간혹 어떤 곳들은 계기나 이유가 있어 들르게 된다.
폴란드 남쪽 도시, 크라쿠프(Krakow). 2019년 7월 학회 참석차 들러 이 곳에 8박 9일을 머물렀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기차로 오가기 편한데, 나의 경우 다른 여행지를 고려하여 비행기로 이동했다.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늦은 시간 움직이게 되었지만, 크라쿠프 공항 자체가 크지 않고 시내 중심부에서 20Km 정도에 위치하여 비교적 가까웠고 버스로 이동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음악 관련 학회에 참석하기 위한 방문이었지만, 크라쿠프는 음악과 관련해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우리들 대부분이 서유럽의 음악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동유럽권인 폴란드 음악은 기승전결, 쇼팽(Fryderyk Chopin, 1810-1849) 밖에 떠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크라쿠프 사람들도 쇼팽을 사랑한다. 구 시가지에 쇼팽 콘서트 홀(Chopin concert hall)이 있고, 규모가 작긴 하지만 쇼팽의 음악만 연주하는 음악회를 매일 여는 곳도 있다.
쇼팽 콘서트 홀의 경우는 약 50석 규모의 작은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홀과 다르게,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칠 법한 곳,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기념될 만한 곳이라기보다는 쇼팽을 기념하고 이런저런 음악회를 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규모 작은 살롱에서 크지 않은 울림으로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이 때문에 이 곳에서는 규모에 걸맞는 피아노 독주나 실내악 연주가 주로 이루어진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음악을 즐기고 싶다면, 여행 중 한번 들러봐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크라쿠프의 특별한 점은 이 곳에서 열리는 많은 음악회에서는 폴란드 작곡가의 음악과 크라쿠프 출신의 작곡가와 연주자들의 무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크라쿠프의 폴란드 음악축제(The Festival of Polish Music)는 올해 15번째를 맞이한다. 운이 좋게도 학회 기간과 맞물린 축제기간 덕분에 거리에서는 많은 관광객과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중 한 음악회에 갈 기회가 있었다.
축제기간 동안에 크라쿠프 곳곳에 위치한 유서 깊은 많은 교회와 성당에서 음악회가 열리는데, 이때 연주되는 음악들은 대부분 폴란드와 관계있거나,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발굴된 폴란드 작곡가들의 곡들이다. 동시에 우수한 젊은 기량 있는 폴란드 연주자들에게 자국의 음악을 연주하며 의미 있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기에, 실제로 이 음악축제는 폴란드 음악 문화 보존의 선순환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7월 축제에는, 쇼팽,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뿐만 아니라 유제프 미하우 포니아토프스키(Jozef Michal Ksawery Pniatowski, 1816-1873), 스타니스와프 모니우슈코(Stanislaw Moniuszko, 1819-1872), 미치스라프 카를로비츠(Mieczyslaw Karlowicz, 1876-1909), 에밀 밀스키스키(Emil Mlynaraki, 1870-1935), 율리우스 자레브스키(Juliusz Zarebski, 1854-1885) 등 다소 생소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7세기 초반 바르샤바로 수도가 옮겨지기 전까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방의 수도였던 크라쿠프, 이 곳에서 폴란드와 관련한 많은 음악들이 연주되고, 사랑받고, 보존되고 있다.
크라쿠프가 음악도시였던가? 크라쿠프는 류트(lute) 모양을 닮았다. 바벨성(Wawel castle)이 위치한 곳은 류트의 꺾인 목에 해당한다. 믿거나 말거나 크라쿠프는 그 자체가 음악 도시인 셈이다.
중세시대의 많은 필사본, 폴란드 음악의 황금기였던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음악 출판물들, 지금도 크라쿠프에는 많은 음악 유산이 보존되어 있고 연구되고 있다. 세계2차대전을 겪으면서도 독일의 사령부가 크라쿠프에 위치한 덕분에 폐허가 되지 않을 수 있어서 아름답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그런 의미에서 1364년에 설립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인 야기엘론스키 대학(Uniwersytet Jagiellonski)도 꼭 한 번 들러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