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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윤 Jun 18. 2019

노트르담 음악가들의 음악 기록하기

<도시.樂 투어> 프랑스, 파리(Paris) 2탄


*<도시.樂 투어> 프랑스, 파리(Paris) 1탄 "노트르담의 음악가들"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다성음악의 초기 형태인 오르가눔(organum)은 일반적으로 긴 음으로 지속되는 테노르(tenor) 성부 위에 움직이는 상성부를 가지고 있다. 가장 초기에 테노르 성부는 대부분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서 가져왔고, 그 위에 어울리는 음들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본래 단성 성가로 불리던 선율은 음악 진행의 기둥과 같은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성 음악은 시작되었다.


물론 여기서 '어울리는 음'이란 지금 우리가 귀에 익숙한 듣기 좋은 음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 시기의 '어울리는 음'은 이론적으로 비율이 맞아떨어지는 협화 음정(음정, 음과 음 사이의 거리), 즉 1도, 4도, 5도, 8도를 말한다.


처음에는 테노르 성부 위에 하나를 얹었고 그 뒤에는 2-3개씩, 점점 더 상성부는 여러 음들로 채워지게 되는데, 이 때문에 테노르 성부는 점점 더 상대적으로 긴 음가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음이 추가될수록 테노르는 그 간격이 너무 넓어 원래 선율을 알아채기 힘들어졌고, 선율로 인지되기보단 상성부 선율의 흐름에 중요한 베이스 음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상대적으로 음가가 차이나는 두 성부는 점차 정량적인 패턴으로 발전하여 비슷한 음가로 움직이기도 하고, 작곡가들이 음악을 만들 때 사용하던 여러 가지 방법을 혼합해나가면서 다양한 양식적으로 발전해나갔다.


이후에 성부(聲部)가 더 추가되고 확대되고 변형되면서 훨씬 더 큰 발전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테노르 성부를 굵직한 기둥으로 그 골격으로 유지하면서 윗 성부가 화려하게 진행하는 오르가눔 형태는 12-13세기 노트르담 음악가들에 의해 예술적으로 절정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웅장한 규모의 기본 구조 위에 아름다운 장식을 더해진 노트르담 대성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노트르담의 오르가눔이 수록되어 있는 13세기 볼펜뷔텔 필사본 일부 (출처. Herzog August Bibliothek Wolfenbüttel)

*위의 볼펜뷔텔 필사본에서 2성부의 오르가눔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아래 성부는 지속되는 테노르이고, 윗 성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음가를 표시하는 기보법


노트르담 음악가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유형의 음악들은 이전의 음악 관습처럼 즉흥적으로 연주되기보다는 먼저 작곡되고 기보한 것을 연주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따라서 이들은 섬세한 음악을 위해 음높이(음고) 외에도 상대적인 음의 길이(음가)를 나타내고자 했고, 고대 그리스 이래로 음가를 표시하는 최초의 기보법의 발달로 이어졌다.


'기보(notation)'는 음악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소리를 표시하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그것을 보전(保全)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당시에 음악가들이 어떠한 음향을 추구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보는 음악적 기호들로 표시된 것들을 재현했을 때, 소리가 본래 기록하고자 했던 의도와 일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있는 악보는 음악사적으로나 그 자체로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즉흥성을 인정하고 연주자의 자유로움을 인정하던 시대와 작곡가가 생각하는 음악의 완벽한 기보는 조금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가 언제나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음악이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기보법이 발전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



노트르담 음악가들, '음의 길이'를 기록하다


이 시기의 논문 『데 무지카 멘수라빌리』(De musica mensurabili, ca.1250)는 '측정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다성 음악에 대해 다루고 노트르담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표시하기 위해 12세기 말에 고안한 기보법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논문의 저자는 요하네스  가를란디아(Johannes de Garlandia)로 알려져 있는데, 다성음악에 대해 다룬 『데 무지카 멘수라빌리』 외에도 그는 『데 무지카 플라나』 (De musica plana)라는 논문에서 단성 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측정할 수 있는 음악'은 말 그대로 '음가' 있는 음악이라는 말이다. 노트르담의 음악가들은 작곡을 할 때 ' (롱가, longa)' '짧은 (브레비스, brevis)', 그리고 이것을 조합한 형태(리가투라, ligatura)를 사용했는데, 가를란디아는 이를 6개의 기본 패턴으로 만들어 '선법'(mode)이라고 불렀다.


'리듬'이 긴 음과 짧은 음, 즉 길이가 다른 음들을 조합할 때 생긴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오늘날 가를란디아의 6개의 선법을 '리듬 선법'(rhythmic modes)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된다.


가를란디아의 선법을 현대적으로 옮긴 것 (L은 긴 음이고 B는 짧은 음에 해당하며, 숫자는 선법을 말한다)




노트르담 음악가들은 음악 속에서 긴 음과 짧은 음이 어떻게 배열될 것인가, 그리고 더 이상 하나의 성부가 아닌 두 개 이상의 성부가 동시에 진행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유기적으로 음악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복잡한 '리듬'에 비해 너무나 단순한 형태일지라도, 상대적인 '음가'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기보 하려 했다는 사실은 후대 음악 발전에 엄청난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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