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과 확신

밥 먹고 합시다 _ 여덟 번째 이야기

by 이현웅


나는 김칫국을 좋아한다. 그런 까닭인지 상대방은 떡 줄 생각도 하지 않는데 나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칫국 이야기가 나오면 그 옛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것이 떠올라 그 시절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하곤 한다.

얼마 전, 함께 밥 먹는 사람들과 김칫국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식당 것이 더 맛있는 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그날의 토론은 ‘선미식당’ 것이 더 맛있다는 것으로 끝이 났다.

며칠 후, 네 명이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메뉴는 김치찌개로 정했고 ‘선미식당’에서 먹자는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모처럼 먹을 김치찌개에 입맛이 당긴 나는 나를 태우기 위해 집 앞까지 온 동료에게 친절하게 인간 내비게이션을 자처하며 선미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 근처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데 동료가 뒤따라오며 “여기 단톡방에는 선미식당이 아닌데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여기 맞아요”라는 확신에 찬 말로 대꾸했다. 뒤따라오던 그가 “여기는 선주집이라고 돼있는데...”라고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나는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이 “아따, 그니까 여기가 맞다고요!”라고 호통 치듯 말했다.

먼저 도착해 있을 줄 안 두 명의 동료가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김칫국 네 개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너무 빨리 주문한 것인지 밥과 반찬이 다 나왔는데도 두 명의 동료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함께 있던 동료의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왜 안 오세요? 어? 우리 여기 왔는데? 선미식당요. 네? 여기 아니라고요? 그럼 어디예요? 선주집이라고요?”

전화를 받으며 나를 바라보는 동료의 얼굴은 금세라도 울 것만 같았다.

“어떡하죠? 여기 4인분 시켰는데...”

일이 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질책하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동료가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있는 모습에 미안함이 컸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식당은 ‘선주집’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내 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있던 ‘선미식당’에서 나는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있는 곳에는 이미 밥이 나왔으니 이쪽으로 오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선주집’의 두 명도 이미 4인분을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결국 밥값만 계산하고 그들이 있는 ‘선주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천만다행으로 밥이나 반찬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는 이유로 착한 식당 주인장은 돈을 받지 않았다. 참 고마운 분인데 그 후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날의 사건은 내 착각으로 인한 것이었다. 한 번 빠진 착각의 늪으로 나는 자꾸만 깊게 들어갔다. 다시 확인을 할 생각은커녕 의구심을 품은 동료의 말에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착각에서 확신까지 가는 데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그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성처럼 견고해졌다. 나는 쓸모없는 자유를 남용하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런 일을 얼마나 반복하며 살았을까를 생각하게 한 사건이었다.


그나저나 나와 함께 있던 동료에게 전화한 그 식구는 왜 그토록 승질이 급할까? 나는 참 느긋한데 말이야.

#에세이
#밥먹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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