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등가죽에 붙어도

밥 먹고 합시다 _ 일곱 번째 이야기

by 이현웅


그니와 점심을 먹는 일은 자주 있는 일상 중 하나다. 수개월 째 계속하고 있는 일이다. 그니의 업무가 끝나는 시간은 들쑥날쑥이다. 어떤 날은 오전 일찍 끝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오후 한 시가 넘어서 끝나기도 한다. 하여, 그니와 점심을 먹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밥을 함께 먹기 시작한 초기에는 별안간 전화를 해 10분 후에 집 앞에서 만나자고 한 적도 있다. 내가 아무리 미모가 출중하다 해도 그렇지 어찌 세수도 안 하고 나갈 수 있겠는가. 또 어떤 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동행이 있기도 했다. 평소 약속 시간을 1분 단위로 챙기고 부끄러움이 많아 낯을 가리는 나로서는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인간의 능력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휘될 때가 있다. 내가 그랬다. 어느 때쯤에 이르러 나는 업무 중에 보내는 그니의 메시지 한 줄만으로도 일이 끝날 시간을 예측하는 내공을 지니게 되었다. 기다리는 나를 염려하여 최대한 빠르게 끝내려는 마음을 안고 보낸 그니의 업무 종료 예상 시간을 보면서 나는 ‘더 빠를 수도 있겠구나’, ‘더 늦어지겠구나’를 가늠할 정도의 촉을 발달시키기도 했다.

- 오늘 빡세네요.
오전 10시 33분에 그니의 메시지가 떴다.

- 늦게 끝나나요?
한 시쯤 끝날 것 같은 상큼한 예감으로 그렇게 물었다.

- 1시쯤요
‘쯤’이라는 글자를 보며 나는 한 시가 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1시 반쯤 되겠네요?
- ㅋㅋ 선수

나를 픽업하러 온다는 그의 메시지에 오늘 ‘잘하면 기록을 깰 수도 있겠는걸?’ 하고 생각했다. 가장 늦게 먹는 점심시간으로 우리만의 기네스북에 등재될 것 같았다. 배고픔을 느끼던 뱃속은 점점 무디어져 갔다. 꼬르륵 소리도 언제부터인가 들려오지 않았다. 요즘 뱃살 걱정이 많은데 배가 쏙 들어간 느낌이었다.

비록 기록은 깨지 못했지만 우리가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2시 17분이었다. 밥이 나오기까지 몇 분이 걸리는 동안 내 배는 등가죽과 붙어 블루스를 추고 있었다. 뜨거운 국밥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데 그렇게 맛있는 머리 국밥은 처음이었다. 본래 맛있는 국밥인데 본의 아니게 20시간 동안 굶다가 먹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정기적인 식사 시간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 못할 일이겠지만 점심 한 끼를 비정기적으로 먹는다 하여 허리가 아프거나 내 출중한 미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배가 등가죽에 붙어도 열심히 땀 흘리고 난 그니의 밥 친구가 되어 먹는 점심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먹어도 맛있고 즐겁다. 함께 먹는 일은 철학을 꽃피우고 담론의 장이 열리게도 한다. 때로는 타인에 대한 분석과 디테일하고 애정 어린 뒷담화는 우리의 우정을 더 짙고 깊게 만들어준다.

항간에는 그니와 나의 관계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정말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아무리 잠복근무를 하며 우리를 감시하거나 미행해도 SNS에서 특종으로 단독 보도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커밍아웃이나 검은 커넥션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에너지가 있다면 숨어서 지켜보지 말고 차라리 우리와 합류하여 부담 없는 꽃등심이나 8천 원짜리 ‘뜨아 반 샷’을 사시라. 대신, 재수 좋으면 배가 등가죽에 붙어 블루스를 출 수도 있음을 상큼하게 예상하고 오시라.

오늘 저녁은 느지막하게 김밥 한 줄과 그니로부터 선물 받은 군산짬뽕으로 장식했다.



#에세이
#밥먹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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