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인으로부터 한 강연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강연자인데 그 이유가 카리스마 넘치는 강연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강연을 하면 좌중을 휘어잡는다는 표현도 덧붙였습니다. 대체 어떻게 강연을 하길래 그럴까 궁금하여 혹시 강연 영상을 볼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더니 흔쾌히 보여주었습니다.
영상 속의 강연자는 매우 열정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강연 내내 목청을 높여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강도 높게 표현했습니다. 때로는 어떤 대상을 향한 비판과 비난을 쏟아놓기도 했고 그럴 때는 유독 강한 제스처를 사용했습니다. 어떤 때는 어느 대상에게 질책하듯, 호통치듯 말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존대어가 아닌 반말조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강연 영상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의 과도한 열정은 듣는 저를 피곤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칠 때에는 소신 발언이라기보다는 자만심처럼 느껴졌고 특정한 대상을 향한 비판과 비난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제스처는 눈에 거슬렸고 중간중간의 반말은 그의 인격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한 사전에서는 ‘무대 카리스마’를 ‘무대 위에서 관객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아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나 자질’이라고 정의합니다. 어쩌면 이 사전적 정의 때문에 카리스마 넘치는 강연자가 되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극적으로 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하기 위해 위트와 재치를 넘어 퍼포먼스에 가까운 행동을 경쟁하듯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스피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즉석에서 나타내는 즉각적인 반응보다 이후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청중을 제압하고 휘어잡기 위한 카리스마보다는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은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강연자가 하는 말이 청중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상처를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카리스마’가 아니라 ‘칼있으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