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한테 맞고 사는 여자들 이해가 안가. 그런 경우 대부분은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용서를 하지 말아야 하거든. 한 번은 봐주자 하다가 그렇게 되는 거지. 여자가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부도 하고 사회활동도 해야 해. 그냥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자신을 가꾸지 않는 여자들이 남편에게 맞고 살 확률이 높아.”
미영 씨는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여고 동창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두 명의 친구는 미영 씨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것 같았는데 다른 한 명인 소연 씨는 얼굴이 굳어 있습니다.
“그게 왜 여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거지? 때리는 남편이 나쁜 거지.”
소연 씨는 항변하듯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습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갑자기 싸늘해졌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세 명의 동창생은 소연 씨가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현재 그 사람이 처한 입장이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기울입니까? 대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말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 중심이 될 때 좋은 기능을 합니다. 네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세 사람이 공감하는 얘기라 하더라도 다른 한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좋은 대화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선의로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처한 입장과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하는 말은 자칫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지인들과의 대화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업무적인 상담을 할 때에도,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사람의 입장이나 처한 상황에 대해 알 수 없다면 적어도 누군가가 들어서 불편하거나 상처 받을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하면 괜찮을까요? 강연을 듣는 사람 중에 중국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요? 청중석에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100명의 청중 중에 99명이 좋아한다 해도 단 한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면 그 강연은 좋은 강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싶다면 부디 듣는 사람의 마음과 복지에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