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를 시작했어요

<그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2-02. 고객에게 유익을 주는 카페

by 이현웅

"죽고 싶어요!"

카페를 찾은 그녀가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첫마디를 그렇게 꺼냅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지만 저는 동요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그녀의 눈을 따뜻이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녀의 입술이 떨립니다. 눈 깜박임의 간격이 짧아집니다.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눈에 이슬이 맺힙니다. 무슨 말인가를 꺼낼 듯하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길을 떨굽니다. 침묵이 흐릅니다.

"이 노래, 정말 좋아하는 노래예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던 그녀가 그렇게 말합니다. 금세 다시 침묵으로 돌아갑니다.

어느 순간 음악 소리 사이로 그녀의 훌쩍임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저는 티슈를 건넵니다. 몇 곡의 노래가 지나가는 동안 그녀는 계속 웁니다.

"죄송해요."

갑작스러운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겸연쩍음 때문인가 봅니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지만 앞에 있는 저를 당혹하게 했다는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익숙한 일입니다. 저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잘하셨어요."

갑자기 울음이 터질 만큼 힘든 상황에 직면했기에 <마음 상담소>를 찾은 것이겠지요. 잘못된 것도, 미안해할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소통을 위한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 적어도 자신의 아픔을 표현할 곳을 찾아 나섰다는 용기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분 있을까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어서 위로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고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기도 위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비록 말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어른의 행동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우는 아기를 안아주거나 달래주거나 젖을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면 방긋방긋 웃습니다. 위로를 받은 것이지요.

옆에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본 일곱 살짜리 아이는 어떨까요? 어느 날, 할아버지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냅니다. 엄마 아빠는 동생만 예뻐한다는 확신 때문이지요.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던 겁니다.

어쩌면 인간 역사 전체에 걸쳐 모든 인류는 위로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더더욱 위로가 필요한 것 같고요.

제가 운영하는 카페 손님 중에도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거나 무슨 일인가로 다친 상태입니다. 치유를 위해 여러 처방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프로그램이 <마음 상담소>입니다.


길을 찾도록 도와 드릴게요


이 글은 카페를 찾은 사람들과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위로받기를 원하는 분도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별, 나이, 환경들을 바꾸거나 섞어 재구성하였습니다. 누구의 이야기인지 궁금해하기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받아주면 좋겠습니다.

'위로'라는 단어는 '따뜻한 말 또는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습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저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그분들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모처럼 실컷 울었어요. 사장님 앞에서 주책을 떨어 창피하지만, 마음은 편해졌어요."


울음을 멈춘 그녀가 말했습니다.

"잘하셨어요. 창피한 일 아니고요. 제가 음악 한 곡 들려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좋죠!"

"이적이 노래하는 <나침반>이에요."


저는 그녀를 위해 마음을 담아 음악을 전송합니다. 카페를 휘감은 감성적인 목소리의 가수가 그녀와 나 사이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힘들고 아픈 날, 슬픈 날, 괜스레 우울한 날에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노래합니다.

"정말 좋네요. 감사해요"

노래가 끝나자 그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끝내 속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또 와도 되죠?"


배웅하는 내게 그녀가 물었습니다.


"그럼요."


엘리베이터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문이 닫히고, 돌아서는 제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울음을 통해 저도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 아픈 마음을 그녀가 대신 울어준 것 같았거든요.

생각해보면 상담소를 찾는 분들을 통해 제가 더 위로를 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상담소를 운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베푸는 최상의 위로임을 배웠습니다.

오늘도 상담소는 문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아프고 지친 사람들, 슬프고 괴로운 사람들, 외롭고 우울한 사람들이 쉼을 얻을 수 있도록요. 황량한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가 먹구름처럼 앞을 가로막을 때, 노랫말에 나오는 '너'처럼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 상담소>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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