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2-03. 고객의 행복을 위해
커피 좋아하는 현지씨
현지씨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돌보며 학원까지 운영하는 워킹맘입니다. 그런 현지씨에게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어느 날 저에게 상담을 신청해왔습니다.
"사장님은 이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약간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냥 아주 살짝 웃기만 했습니다.
"요즘, 남편이 너무 보기 싫어요. 저랑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문득 현지씨 남편이 어떤 분일까 궁금했습니다.
"언제 한 번 같이 커피 드시러 오세요."
"그 사람은 커피도 안 좋아해요. 정말 저랑 맞지 않죠. 그 사람은 음악도 안 좋아해요."
"그럼 뭘 좋아하실까요?"
제가 애써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웃으면서 그렇게 물었습니다.
"저한테 잔소리하는 거요."
"아, 그렇군요."
"앞으로도 그 잔소리를 계속 들어야 할 생각 하니까 끔찍해요. 정말 요즘엔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한다니까요."
음악 좋아하는 윤철씨
윤철씨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특정한 장르를 좋아합니다. 음악 감상을 위해 혼자 카페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끔은 저랑 대화하기를 원할 때도 있습니다. 원래는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칵테일을 두 잔쯤 마시면 얘기를 좀 하는 편입니다. 아내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무척 좋다고 했습니다.
"윤철씨는 아내분에게 잔소리를 많이 안 하시는가 봐요?"
며칠 전 현지씨가 남편의 잔소리 때문에 이혼까지 생각한다는 게 떠올라 그렇게 물었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잔소리 안 해요."
"아내분이 뭐든 잘하시는 건 아니고요?"
제가 짓궂게 질문했습니다.
"아뇨. 잔소리 들을 일은 많죠. 근데 전 그냥 웬만하면 넘어가죠. 꼭 필요할 때만 한마디 하는 편이죠."
현지씨의 남편이 좀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와이프는 저를 많이 좋아해요. 저 없으면 못 살걸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철씨의 아내분을 본 적은 없지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며칠 후, 윤철씨가 카페에 왔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항상 칵테일 후에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더니 그날은 커피부터 주문했습니다.
"와이프가 이혼하자네요?"
이런. 윤철씨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던 아내가 이혼을 하자고 했다니요.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뇨. 그래서 답답하다는 겁니다. 대체 말을 안 해요.
"혹시 짚이는 것은 없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요. 저는 정말 와이프에게 최선을 다하거든요. 참는 것도 많고요."
그 뒤로도 윤철씨는 자기네 부부 문제에 관련된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이혼 얘기를 꺼낸 것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우선은 이혼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진솔한 대화를 해보겠다는 결론으로 대화를 마쳤습니다.
얼마큼 얘기를 나누고는 다른 손님을 맞이하느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창가 자리에 현지씨가 혼자 와 있었습니다. 커피가 아닌 데낄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남편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이혼하자고 했어요."
"아... 뭐라고 하시던가요?"
"잘못했대요. 용서해달래요."
갑자기 15번 테이블에 있는 윤철씨가 떠올랐습니다. 윤철씨도 아내분에게 무조건 용서해달라고 빌면 어떨까 싶었거든요. 현지씨는 남편과 이혼을 할 것인지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조우
현지씨가 그만 가봐야겠다고 일어섰습니다. 계산을 위해 카운터로 향하던 현지씨를 앞서서 가는데 윤철씨도 그만 가려는지 카운터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가시게요?"
제 물음에 윤철씨는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제 뒤를 따라오던 현지씨를 보고 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뒤돌아 현지씨를 봤습니다. 현지씨도 놀란 표정 같기도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로 윤철씨를 보고 있었습니다.
"두 분 서로 아시는 사이인가요?"
윤철씨와 현지씨는 둘 다 난처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이런 데도 와?"
현지씨가 윤철씨한테 타박하듯 말했습니다.
"어. 나 여기 단골인데?"
그랬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였습니다. 어라? 그런데 뭔가 맞지 않는데요? 현지씨 말로는 윤철씨가 커피도 안 좋아하고 음악도 안 좋아한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윤철씨는 아내분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이상한데요?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아내분이 윤철씨 없이는 못 살 거라고 했는데요?
그랬습니다. 10년 가까이 부부로 살았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겁니다. 집에서는 잠 못 잘까 봐 커피를 마시지 않은 윤철씨였습니다. 음악은 난해한 장르를 좋아하다 보니 현지씨에게 음악 좋아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답니다. 각자 바빠서 데이트할 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서로에 대해 취향을 너무 몰랐던 겁니다.
윤철씨는 자신이 그렇게 잔소리가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답니다. 그저 아내를 위해 가끔 한 두 마디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듣는 쪽의 현지씨는 고역이었던 거죠.
그날 윤철씨 현지씨 부부와 저는 늦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친정 엄마에게 맡겨놓고 말입니다. 두 사람은 계속 투닥투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알콩달콩 애정의 기류가 흘렀습니다. 윤철씨가 앞으로는 정말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습니다. 두 사람은 화해를 했습니다. 카페에서 나갈 때에는 손을 꼭 잡은 채였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윤철씨와 현지씨는 카페에 오지 않았습니다. 두 달이 되어가니 괜스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혹시 다시 불화를 겪는 것은 아닌지, 정말 최악의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카페에 왔습니다. 부부의 표정이 야릇했습니다. 윤철씨가 머뭇머뭇하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대표님, 저희에게 둘째가 생겼는데 아무래도 대표님이 화해시켜주신 그날 저녁에 생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