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2-04. 손님들이 카페의 역사입니다
혹독한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지만 카페는 여전히 손님이 없었습니다. 한 명도 오지 않거나 한 두 테이블에 그친 날도 많았습니다. 그 소수의 손님들 중에도 카페 일기장에 기록되는 손님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스피커 바꿔!
그날은 밖에서 일을 보느라 카페 출근이 늦어졌는데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손님이 저를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지인인가 싶어 물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와보면 안다는 손님의 말을 전할 뿐이었습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은 1번 테이블에서 그 손님이 기다리고 계시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손님은 등을 돌린 채 벽 쪽을 향해 앉아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손님의 앞쪽에 가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던 저는 약간 놀랐습니다. 손님은 깊이 파인 주름이 얼굴에 가득한 노인이었습니다. 짐작으로 80세는 족히 되어 보였습니다. 노신사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저를 찬찬히 살피더니 물었습니다.
“여기 주인장이오?”
거친 쉰 목소리였습니다. 노신사의 키가 6척은 되어 보일 정도로 컸습니다. 몸은 키에 비해 지나칠 만큼 마른 상태였고요. 그래서 그런지 매우 날카롭게 느껴졌습니다. 짧은 물음은 딱딱하다 못해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졌고요. 순간적으로 제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가게를 지켜야지 뭐하고 다니는 거요?”
나무라듯 목청을 높이는 통에 저는 당황했습니다.
“아, 그게… 오늘 제가…….”
“다른 말 말고 이거나 틀어줘 봐!”
더듬거리는 말로 변명을 하기도 전에 신청 메모지를 불쑥 내미셨습니다. 아예 반말이시더군요. 하지만 이유나 상황이 어찌 됐든 음악을 들으러 온 손님이기에 신청곡을 들려주는 것이 최우선의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세히 살펴본 메모지에는 페리 코모(Perry Como)의 <그링고스 기타(Gringo’s Guitar)가 적혀 있었습니다.
페리 코모의 매력적인 저음의 목소리와 애니타 커 쿼태트(Anita Kerr Quartat)의 코러스가 어우러진 노래가 애잔하게 가슴을 울렸습니다. 괴팍한 느낌의 노신사와 감미로운 음악의 부조화였습니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음악실 옆면 유리창을 통해 노신사를 훔쳐보았습니다. 노신사는 벽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듯 보였습니다. 어쩌면 바라본다기보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신청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흐를 때 노신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저는 애써 눈길을 돌려 노신사의 움직임을 모른 척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배웅 인사를 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카페에 다시 오는 것을 기대하고 싶지 않았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괜스레 LP 레코드를 뒤적거리며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출입문보다 먼저 들려온 소리가 있었습니다. 고함소리였습니다.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봤습니다. 음악실 정면에서 노신사 손님이 저를 바라보며 소리를 치고 계셨습니다.
음악소리 때문인지, 아님 노신사의 너무 빠른 말 때문인지, 무슨 내용인지는 확실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분이 언짢아졌습니다. 그분의 표정이나 손동작을 볼 때 유쾌해할 만한 내용이 아닐 것으로 짐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피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겠다 싶어 음악실을 나와 손님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리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정중함을 유지하며 말을 했습니다.
“음악 소리가 너무 작아! 음악 소리가 가슴을 쾅쾅 울려야는데 그러지를 못해! 당장 스피커 바꿔!”
노신사는 과장과 억지를 담은 듯한 호통을 쳤습니다. 사실 음악 소리는 결코 그렇게 작지도 않았거든요. 스피커도 손님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었고요. 하지만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얼른 그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신사는 조명이 어둡다, 쌍화차는 왜 없느냐, 주인이 왜 자리를 비우느냐는 등등의 몇 가지를 계속 나무라듯 지적했습니다. 저는 싫은 기색을 감추려 애쓰며 건성으로 대답만 열심히 할 뿐이었습니다.
“에이, 다시 오고 싶지 않아!”
노신사 손님은 그렇게 말하시고는 휙 하니 몸을 돌려 출입문을 향했습니다. 저는 잘됐다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도리라도 해야겠다 싶어 출입문 밖까지 따라 나가 배웅 인사를 했습니다.
“뭐 하러 여기까지 나와? DJ가 체통이 있어야지!”
아, 어쩌란 말인가요! 노신사 손님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연신 혀를 차는 말투로 불만이 가득한 혼잣말을 쏟아냈습니다. 언짢아진 저는 노신사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은 뒤에야 카페로 들어섰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시 오고 싶지 않다던 노신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바라던 바라고 속으로 생각했죠. 음악실에 들어왔는데 상한 기분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왠지 그분에 대한 느낌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하여 어디에선가 뵌 적이 있다거나 어떤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다시 오지는 않을 거라는 그 한 가지 예상만으로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봄은 서서히 무르익어 갔고 카페에도 점점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노신사 손님의 기억은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주나 지나갔지만 예상대로 카페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단 한 번의 방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으로 카페 일기장에 기록되는 듯싶었습니다.
<봄날은 간다> 한 곡 틀어봐!
때아닌 매서운 바람과 함께 장맛비처럼 굵은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노신사 손님이 카페에 다시 오셨습니다. 음악실에 있던 저는 그분을 보자마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것을 느꼈습니다.
“음악 몇 곡 들어보고 주문할 거야!”
주문을 받으러 간 직원에게 역시 딱딱하고 거친 말투로 말하셨습니다. 그 거슬리는 목소리가 음악실에 있는 저에게까지 확연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제 마음이었습니다. 노신사 손님의 태도에 기분이 언짢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분의 감성을 돋게 하는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곡한 음악이 Peggy Lee(페기 리)의 <쟈니 기타(Johnny Guitar)>였습니다. 지난번에 노신사 손님이 신청하신 <그링고스 기타(Gringo’s Guitar)>를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음악실의 옆면 유리창을 통해 노신사 손님을 훔쳐보았습니다. 그분은 페기 리(Peggy Lee)의 노래를 듣는 동안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노래가 중간쯤 흘렀을 때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침은 노래가 다 끝날 때 까지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오래된 천식 환자의 기침과도 같았습니다. 그 뒤로 몇 곡의 음악이 나가는 동안에도 기침은 멈추는가 싶다가도 다시 심하게 나오는 것을 반복하였습니다.
노신사 손님이 눈부신 청춘의 날에 들으셨을 것으로 짐작되는 음악 몇 곡을 진지하게 선곡했습니다. 왠지 모를 연민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노신사 손님에 대한 낯설지 않음을 다시 느꼈습니다. 묘한 감정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노신사 손님이 저를 불러 제가 그곳으로 갈 때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어르신,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앉아!”
노신사의 앞쪽에 서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제게 짧고도 거친, 흡사 명령과도 같이 말하셨습니다.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그분의 얼굴을 보았는데, 바로 그때 노신사의 눈에 아른거리는 액체를 보았습니다. 기침을 심하게 한 탓인지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숨소리는 거칠었고, 그르렁그르렁 하는 소리가 확연하게 들려왔습니다.
“뭐 한 잔 마셔!”
뜻밖에도 노신사는 제게 마실 것을 권하셨습니다.
“괜찮습니다, 어르신.”
“잔말 말고 마시라면 마셔!”
호통 치듯 거칠고 투박한 소리로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노신사의 다음 말에 저는 가슴이 콱 막혀오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내가 폐에 물이 찼대. 폐암이라네.”
마치 남의 이야기라도 하는 듯 무덤덤하게 말하셨습니다. 하지만 노신사 손님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말투는 여전히 투박했지만 힘이 없었습니다.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떨렸습니다.
격렬한 기침은 쌕쌕거림과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번갈아 냈습니다. 손으로 입을 가린 노신사의 기침은 금방이라도 손가락 틈으로 각혈이 튈 것만 같은 기침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제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물을 가져다 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대추차 좋네. 몸에 좋은 대추차 한 잔씩 하자.”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던 기침이 잦아들자 노신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노신사 손님과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주로 노신사 손님이 이야기를 하는 쪽이었고 저는 듣는 쪽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젊은 시절에 다녔던 서울 종로 일대의 음악다방과 음악감상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노신사 손님이 우리 카페에 오시게 된 것도 카페 밖에 걸린 스피커에서 나는 음악 소리를 듣고 옛 생각이 나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종로와 광화문 일대의 음악다방은 다 꿰고 있는 듯 줄줄 나열하면서 그 음악다방 각각의 특징까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다행히 기침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일에 신명 나서 말하는 것처럼 노신사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음악을 상당히 깊이 있으면서도 다양하게 듣고 좋아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분에 관한 궁금증이 커져갔습니다. 현재 앓고 계시는 폐암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가족들은 있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 등의 신상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봄날은 간다 한 곡 틀어봐!”
마치 제 속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느닷없이 음악을 신청하시더군요. 그러고는 또다시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토해지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새가 날면 새가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어르신 댁은 어딘가요?”
노신사의 신청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가까운데 살어.”
“가족분들은…….”
“혼자 살어”
“아…….”
“할마이는 삼 년 전에 먼저 갔어.”
“아… 그럼, 자녀들은….”
“자식? 남매 뒀는데 아들놈은 지 엄마보다 먼저 가버렸어. 자식 죽고 할마이도 시름시름하더니 가버렸지.”
“아…….”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기 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으네…….”
쓸쓸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노신사 손님의 표정에는 짙은 비애감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어. 그나저나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쩔 거야?”
다시 투박하고도 거친 말투로 나무라듯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계산하겠다며 한사코 말렸지만 노신사는 고집을 꺾지 않고 제가 마신 찻값까지 계산하고는 나갔습니다. 저는 갑자기 전에 없던 조급함으로 노신사의 뒤를 따라나섰습니다.
“뭐 하러 나와? 들어가!”
저를 향해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을 내저으셨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노신사 손님의 뒷모습이 애잔하고 슬퍼 보였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노신사 손님의 쓸쓸한 말이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냥 보내드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갈등에 사로잡혔지만 그 이상의 마음 씀이 제게는 없었나 봅니다.
노신사 손님이 떠나간 후, 한참이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음악실에서의 방송도 어떻게 했는지조차 모를 만큼 우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쁜 일상의 날들을 보내다 보니 그분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문득 그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처음에 느꼈었던 묘한 낯익음을 여전히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낯익음의 원인을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노신사 손님은 제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전화도 잘 못할 게야
날들은 흘러갔습니다. 개업 후 첫 번째 맞이한 봄은 그렇게 가고 있었습니다. 봄 끝자락의 어느 날, 저장되지 않은 번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 "나야!"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특유의 말투가 전화기 너머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노신사 손님이었습니다.
- "어르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셨을 리가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전에 없던 반가움과 묘한 감정이 뒤섞여 저도 모르게 반색하며 물었습니다.
- "잘 지냈지."
- "지금 어디 계신가요?"
- "나? 그건 왜 물어? 그나저나 손님은 좀 늘었나?"
- "아, 예 예,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 "어르신 건강은......"
- "건강? 폐병 환자가 뭐 그렇지. 목소리 들었으니 됐어. 잘 살아."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듯한 노신사의 말에 제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또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침묵을 깨뜨리며 노신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 "이사장! 일전에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마소."
- "어르신 별말씀을요."
- "이사장 보면 아들 같아서 그런 거니까 너무 섭섭해하지 마소."
아! 아들 같아서! 가슴이 콱 막혀오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 그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노신사에게서 느꼈던 낯익음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바로 제 아버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열네 살 겨울에 세상과 작별하기까지 어린 저에게 아버지는 늘 무섭고 투박한 분이었습니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 바깥 풍경 한 번 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시던 그 날까지 어린 자식에게 한 번은 보여줄 법도 한 옅은 미소 한 번 보여주지 않았던 아버지였습니다.
어린 저에게의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동무들에게도 아버지에 관해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늘 저의 허물에 대해 관용보다는 타박과 매정함으로 일관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제 곁을 떠난 후,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늦은 깨달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게 했습니다. 지금의 이 나이에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같이 느꼈다는 노신사의 말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분의 말투와 표정이 왜 그리 낯설지 않았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 “이사장!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하소. 그러다 보면 단골들이 많아질 게야.”
눈이 뻑뻑해왔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입술이 떨렸습니다. 왈칵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한 번 쏟아진 눈물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 “어르신…….”
- “아마 전화도 잘 못할 게야. 하긴 나 같은 늙은이 잔소리 안 들으면 좋지 뭐. 암튼 열심히 잘해봐! 이만 끊소.”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전화가 끊기고 말았습니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겨우 어르신을 불러봤지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유도 모를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림을 노신사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 사이 노신사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알았을 때, 저는 흐느껴 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의 정체를 지금도 확연히 알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열네 살 어린 나이부터 수 십 년 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들 때문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거기에 가족들의 돌봄도 없이 홀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야 하는 쓸쓸하고도 처량한 노신사 손님에 대한 연민이 더해져 그렇게 울음이 났나 봅니다.
오늘, 저는 노신사 손님과 아버지를 생각하며 김진호의 <가족사진>을 선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