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은 밤

<그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2-05. 위로의 언어

by 이현웅

<이 글은 카페 손님인 철우씨가 들려준 말을 토대로 기록하였습니다.>


문득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잠에서 깨어나 보니 캄캄한 밤인데 아무도 없고 혼자라는 생각에 울컥할 때가 있었나요? 몸이 아픈데도 곁에서 돌봐줄 사람 하나 없다는 생각으로 서러운 적이 있었는지요?


철우 씨의 집과 가족은 서울에 있습니다. 그는 군산에 있는 직장에서 근무합니다.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명퇴 대신 군산행을 택했답니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가족을 보러 서울에 올라가는데 이번 주는 가지 못했습니다. 지독한 감기 몸살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번엔 당신이랑 지은이가 내려오면 안 될까?"


주말이 가까워오는 데도 차도가 없어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며칠 동안 먹는 것도 거의 없어 몸은 기진맥진하고 도저히 서울까지 갈 힘이 없어서였습니다. 대답은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딸과 함께 음악회에 가기로 했답니다. 음악회 가는 것을 취소하거나 다음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철우 씨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철우 씨는 입맛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토요일 저녁, 약을 먹기 위해 억지로 밥을 먹었습니다. 집 앞에 있는 국밥집에서 욱여넣듯 밥을 먹는데 괜스레 처량하고 서글픈 생각이 밀려옵니다. 온몸은 흠씬 두들겨 맞은 듯 뼈마디까지 아픕니다. 약기운 탓인지, 감기 몸살로 인한 것인지 몽롱한 느낌과 함께 잠이 밀려옵니다.


잠에서 눈을 떴을 때, 철우 씨는 아내와 딸이 있는 서울 집이라고 착각합니다. 몇 시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혼자임을 알아차립니다. 온몸은 땀범벅입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여명의 하늘이 보입니다. 순간적으로, 전에 없던 감정의 덩어리가 솟구치는 것을 느낍니다. 가슴을 치밀고 올라오는 그것은 목울대를 지나 눈시울에까지 이릅니다.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방금 본 영상처럼 떠오릅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일찍부터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때부터, 삼십 수년 동안 짊어져야 했던 고단함의 무게가 오늘따라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지금의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고졸의 학력으로 견뎌야 했던 고충의 시간도 떠오릅니다. 은근하면서도 치졸한 무시와 차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아내와 딸을 향한 가장의 역할이었습니다. 지독한 장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포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죽어라 열심히 일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자주 찾아온 위경련으로 바닥을 뒹굴면서도 일만 했습니다. 나중에야 담석으로 인한 것임을 알고 담낭 제거 수술을 했을 때에도 병원의 권고와 상관없이 이틀 만에 퇴원했습니다. 아내와 딸을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집사람이 저한테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하대요. 음악도 안 듣고 연극도 안 보고 책도 안 읽는 사람이라고요."


언젠가 카페를 찾은 철우 씨가 한숨과 함께 한 말입니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어렸을 땐 혼자 살아내느라 그랬고 결혼해서는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새가 없었죠."


철우 씨라고 해서 음악 듣고 책 읽는 일이 싫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들은 음악에 마음을 온통 뺏긴 적도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에게 선물 받은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철우 씨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문화생활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적어도 딸아이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는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애써온 것이 가족과는 다른 취향의 사람으로 간주될 줄은 몰랐습니다.


며칠 전에 회사 동료들과 갔었던 음악 감상 카페가 생각났습니다. 음악이 듣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던 카페 주인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시각이 새벽임을 알고는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든'이라는 말에 마음을 멈춰세웁니다.


- 사장님, 지금 카페 문 안 열었죠?ㅋㅋ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웃음이 납니다. 답을 기대하고 보낸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을 뿐입니다.


- ㅎㅎㅎ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습니다. 어찌 이 시간에 안 주무시고요? 주말인데 서울 안 가셨어요?


철우 씨는 깜짝 놀랍니다. 몇 분 만에 카페 주인으로부터 답장이 온 겁니다. 더욱이 딱 한 번 갔을 뿐인데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기억해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 몸살이 심해서 못 갔습니다.

- 저런...ㅠㅠ 병원엔 다녀오셨고요? 식사는 제대로 챙겨드셨나 모르겠네요. 사모님도 내려오시지 못할 상황이었나 봐요.


카페 주인의 메시지에 울걱하고 맙니다. 두 사람은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습니다. 단 한 번 만난 사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여러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그러다가 문득 '카페 해 먹기 참 힘들겠구나' 생각도 듭니다. 사과를 합니다.


-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행히 제가 깨어 있어 바로 답변드릴 수 있었어요. 혹시 듣고 싶은 음악은 없나요?

- 슬픈 음악요.

- 아...

- 음악 들으면서 실컷 울고 싶네요. 맘껏 울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질 것 같아요. 그런 음악 있나요? ㅎ

- 글쎄요. 그렇게 실컷 우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한 곡 올려드려 볼게요.


메시지 창에 올려진 곡은 이십 수년 전에 사망한 가수 김광석의 <혼자 남은 밤>이었습니다. 처음 듣는 곡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몇 달 전에 발표한 노래였습니다.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가 방 안을 휘감고 돌더니 철우 씨의 가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철우 씨는 창문을 열었습니다. 어슴푸레한 여명의 빛깔이 창문을 넘어와 몸을 감싸는 순간 철우 씨는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습니다. 노랫말 때문인지 가수의 음색 때문인지 푸른 새벽 빛깔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살아오면서 견뎌야만 했던 고단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가장으로서의 무게 때문만도 아니었을 겁니다.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쓸쓸함 때문에 그토록 눈물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철우 씨는 카페 주인이 선곡해준 노래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숙명일 뿐인 가장의 역할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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