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by 이현웅

금요 연재 소설 <카페이야기> 첫 번째

***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 배경, 인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00. 프롤로그


그녀가 죽었다. 어느 가을날에.


지나고 나서야 밝히는 것이지만 그날 카페 출입문의 종소리를 들은 현우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자정이었다. 카페 출입문의 종소리가 울린 것이. 열린 문을 통해 늦가을의 밤바람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한기를 느끼며 동시에 뜻 모를 섬뜩함으로 현우는 몸을 떨었다. 스탭 테이블에 앉아있던 현우는 출입문쪽을 바라봤다. 파티션 위로 남자의 머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음악실 바로 앞까지 걸어온 남자는 현우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자정이 넘었기 때문에 영업이 끝났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바로 그때였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확연하게 보이는 짙은 눈썹의 남자를 본 순간 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자의 눈길이 현우의 움직임을 감지한 것 같았다. 현우가 발걸음을 떼자 남자도 움직였다. 현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 걸음도 되지 않았을 때에야 걸음을 멈추었다.


“은수 형.... 아니세요?”


남자를 향한 현우의 목소리는 꿈속을 헤매는듯했다. 아마 20년쯤 되었을 것이다. 이 남자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런 은수형이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고향 사람 누구에게도 카페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알고 왔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우연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삶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고 생각했다.


“현우? 현우 맞구나..... 제대로 찾아왔네.”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고 현우는 은수형의 손을 덥석 잡았다. 20년 만에 고향 선배를 만난 반가움보다는 뜻 모를 다른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저를... 일부러 찾아오신 거예요?”


현우의 물음에 은수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11번 테이블에 앉은 은수 형은 침묵을 지켰다. 한숨을 길게 내몰아 쉬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20년 동안 연락조차 없던 은수형이 그 깊은 밤에 일부러 찾아왔다는 것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몇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얽히고설켜 현우는 혼란스러웠다.


"형,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현우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려 애쓰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게... 오랜만이지... 나야 뭐 그냥저냥 살지...."

"근데 어찌 저를 일부러 찾아오시고...."


현우는 어렵게 꺼낸 질문의 말끝을 흐렸다. 은수형은 또다시 긴 한숨을 내쉬더니 대답 대신 술을 주문했다. 독한 술을 원했기 때문에 데낄라를 내왔다.


은수형이 메고 온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놓은 것은 데낄라를 넉 잔이나 연거푸 마시고 난 후였다. 그가 꺼내놓은 것은 낡은 봉투의 편지 꾸러미와 작은 원형 펜던트였다. 펜던트를 열자 젊은 남녀의 흑백 사진이 있었다. 남자는 현우였고 여자는 은수 형의 동생 은유였다. 서은유. 현우의 가슴에 고통의 파도가 일었다. 편지는 현우가 은유에게 쓴 것들이었다. 대부분 40년 전부터 30년 전에 쓴 편지였다. 편지를 뒤적거려보는데 그 시절 장면 장면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런 회상도 잠시, 현우는 섬뜩한 현실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은유가 자네한테 전해주라고......”


가슴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이걸... 왜요?"


어쩌면 현우는 몸서리쳐지는 예감을 떨치기 위해 그렇게 물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지금... 어디 살아요?"

"......"

"잘 살죠?"

"......"

"......"

“가버렸네. 며칠 전에...”


침묵 끝에 은수형이 말했다. 현우의 숨이 막혀왔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물을 수 없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 순간 모든 것이 사실이 되어버릴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허망하게 가버렸어....”


읊조리듯 말하더니 은수 형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현우는 울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방금까지 듣고 있던 음악도, 롤스크린에서 움직이던 영상화면도, 카운터에 서있는 여직원도, 현우에게는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분명 비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0년 동안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었던 은수형이 마치 며칠 전에 본 사람처럼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꿈속에서의 일일 것이라고 우기고 싶었다. 현우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계속 현실이 아니라고 외쳐댔다.


"젊은것이 뭐가 그리 급하다고......."


더는 거부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녀의 부음 앞에서 현우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평소에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셨다. 독한 데낄라를 두 사람은 연거푸 들이켰다. 그러는 동안 은수 형은 흐느껴 울다가 또 마음을 가다듬고 은유에 대한 말을 했다가 또다시 울음을 쏟곤 했다. 술에 약한 현우이지만 처음 한 동안은 전혀 술에 취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가 어느 때쯤 현우의 기억은 끊겼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현우는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카페였다. 술에서 덜 깬 까닭인지 몇 시간 전의 일이 마치 꿈속에서의 일처럼 느껴졌다. 다음 순간 은수형이 떠올랐다.


'은수형.......'



그제야 은수형과 술을 마셨던 것을 기억해냈다. 은수형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떠난 후였다. 테이블 위에는 그가 놓고 간 편지 꾸러미와 사진 펜던트만이 남겨져 있었다. 펜던트를 열었다.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은유......'


그녀가 죽었다는 은수형의 말을 기억해냈다. 심장의 한 부분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이 가슴에서 일었다.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음악을 현우가 튼 것인지, 아니면 DJ 찬휘가 튼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전인권의 <새야>가 카페를 휘감고 있었다.


‘새 이제 떠나거라 너의 하늘로

너만의 자유로운 세상으로’


펜던트 속 사진을 보고 있던 현우에게서 울음이 훅 터졌다.


‘새 이제 날아가라 너의 하늘로

너만의 아프지 않은 세상으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눈물이 솟구쳤다.


‘뒤돌아 보지 말고 그냥 날아가라

가슴 아프지 않은 곳으로

날아가라 뒤돌아 보지 말고

날아가라 내 생각하지 말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통곡이 터졌다. 음악 소리보다 현우의 엉엉 우는 소리가 더 컸다.


‘날아가라 날아라 날아가라

언젠가는 널 반겨줄 내 자릴 위해

날아가라 내 생각하지 말고

날아가라 날아라 날아가라’


2019년 11월 29일, 현우와 은유의 쉰다섯 번째 가을 어느 날이었다.



https://youtu.be/BXbSrGWRI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