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곽란(吐瀉癨亂), 그리고 작은 누나
잡문(雜文) _ 하나
잠 속에서 불쾌했다.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 4시. 수면 앱을 보니 1시간 9분을 잤다. 며칠 전부터 찾아온 소화불량에도 몸을 돌보지 않은 탓이었을까. 그대로 다시 잠들 수 없을 것 같아 차에 있는 까스활명수를 두 개 가져왔다.
한 개를 마셔도 속이 개운하지 않은 느낌에 또 하나를 마셨다. 마지막까지 다 들이키고 난 순간, 호흡에 이상을 느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않은 당혹스러움. 화장실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기 뚜껑을 열자마자 토악질을 해댔다. 찢어질듯한 가슴 통증, 제어되지 않은 몸뚱이. 다 토했는가 싶더니 이번엔 아래쪽에서 경련이 일었다. 토사곽란의 시작이었다. 그때, 작은 누나가 떠올랐다. 낮에 통화를 하면서 서럽게 울던 누나였다.
생애 중에 구토를 한 것은 오늘로 두 번째였다. 처음 한 것은 아홉 살 봄이었을 것이다. 큰 형수의 첫 아이 출산을 돌보기 위해 어머니는 한 달 동안 서울에 가셨고 부엌살림은 다섯 살 위인 작은 누나가 맡았다.
그날 오후, 나는 견디기 힘들 만큼 복통에 시달렸다. 구토 증세를 느껴 뒤란으로 달려가 뒤엄자리에서 토악질을 했다. 토해도 토해도 자꾸만 또 토했다. 누군가 등을 두드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누나는 그런 나를 보면서도 등을 두드려주거나 내 안위에 대해 묻지 않았다. 오히려 동무들과 놀면서 놀리듯 말했다.
"쟈가 왜 저런다냐?"
"야, 니 동생 등 좀 두드려줘라야."
"냅둬어."
나는 분명 상한 반찬을 먹고 탈이 난 것이라 확신했고 그 책임이 부엌살림을 맡고 있는 누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내게 일말의 미안함이나 측은지심조차 느끼지 않는 누나가 원망스러웠다. 그것은 내 안에서 분노로 자리 잡았다. 아마도 어머니의 긴 부재로 인해 감당해야만 했던 쓸쓸함도 한몫을 했으리라.
그날 이후, 나는 복수의 날을 생각했다. 그 날은 그리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동네 농협 창고 빈터에서 여럿이 모여 놀던 중 아랫집에 사는 동네 형과 시비가 붙은 작은 누나가 발길질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외면했다. 다섯 살이나 많은 덩치 큰 형에게 덤벼드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혈육의 끈끈한 정을 나타낼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내게 왜 가만있느냐는 동네 형들의 조롱에 그저 나는 웃기만 했다. 마치 그들과 한 패거리처럼.
그 사건 이후, 누나와 나는 더 멀어졌다. 객지로 나간 누나는 몇 해 뒤 동네 형에게 시집을 갔다. 한 동네 살면서도 누나와 나는 데면데면했고 어쩌다가 친정에 온 누나를 못마땅해했다. 누나도 내가 집에 없을 때를 골라 어머니를 만나러 오곤 했다. 그런 세월은 내가 마흔이 넘을 때까지도 계속됐다.
나이를 먹어서는 돈에 집착하는 누나가 싫었다. 그저 남편, 두 아이에게 벌벌 떨며 온갖 정성을 쏟으면서도 동네 사람 눈치 보인다는 핑계로 한동네에 사는 친정 엄마에게 소홀한 누나가 원망스러웠다. 어쩌다가 형제간에 돈거래가 있으면 높은 이자를 따박따박 받았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쉬이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내 가슴 한 켠에는 늘 누나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었다.
어렸을 적, 유전자의 힘 덕분이었는지 나는 지능이 높았고 그에 따라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또래보다 뚜렷하게 빨랐다. 나보다 4년을 먼저 학교에 간 누나는 4학년이 될 때까지 한글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에 반하여 나는 아랫집 아저씨의 도움으로 여섯 살에 한글을 깨쳤다. 요즘에야 네댓 살이면 한글을 깨치는 게 다반사가 되었지만 그 시절에 어떤 기관이나 과외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 어린 나이에 한글을 읽는다는 것은 시골 동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가난 때문에 일찍부터 객지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형들과 누나는 내게 많은 것을 기대했다. 명절이 되어 모두 모이면 누나의 교과서를 가져와 내게 읽기를 시키는 일은 그분들의 즐거움이었을 듯싶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날에 작은 누나는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내 글 읽기에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은 형과 누나가 유독 발음하기 어려운 글자를 써놓고 작은 누나와 내게 읽기를 시킨 일은 나중에 세월 지나 뒤돌아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작은 누나의 틀린 발음에 형들과 큰 누나는 박장대소를 했고 뒤이어 정확히 읽은 내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으니 그것은 작은 누나에게 고스란히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작은 누나는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누나는 내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먹을 것이 생겨도 나누지 않았으며 누나로서 베풀 최소한의 챙김마저 하지 않았다. 용돈을 받으면 하루 이틀 새에 다 써버리는 나와는 다르게 누나는 자신만이 아는 비밀 장소에 돈을 숨겨놓았다. 그런 돈은 오롯이 누나 자신만을 위해 썼다. 나눠달라고 아무리 떼를 써도 소용없었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 뒤돌아본 아홉 살 토악질에 대한 기억은 다른 느낌이었다. 그날의 내 고통에 대한 누나의 냉랭함을 단순한 원망으로서가 아니라 어쩌면 나로 인한 누나의 상처와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었다.
어른이 되어 각자 가정을 꾸리고 나면서 누나는 더 악착같이 살았다. 꽃다운 나이에 농부의 아내가 되어 남편을 따라 온갖 힘든 농사일을 억척스럽게 해냈다. 누나 자식들에게 베푼 삼촌으로서의 역할에 관해서도 고마워하는 기색을 하지 않았다. 조카들의 졸업식을 매번 챙긴 나와는 다르게 누나는 내 하나뿐인 딸아이의 졸업식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산 덕분인지 작은 누나는 우리 5남매 중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일이 없는 농한기에 누나는 고급 음식을 먹으러 다녔고, 자신의 옷을 사는 데에는 백만 원에 가까운 큰돈을 현금으로 척척 내놓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집안의 대소사에도 누나는 큰돈을 척척 내놨다. 하지만 내게는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때로는 참으로 야속했다.
내 토사곽란에 매정했던 누나에 대한 야속함이 늘 가슴 한 복판에 있었지만 그래도 누나를 향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더 컸다. 누나는 어렸을 적의 그것을 모멸의 기억으로 갖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늘 무거움이었고 누나에 대한 아픔이었다. 누나를 향한 내 마음은 그런 것이었는데 누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에 대한 냉대를 거두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어렸을 적 누나에게 발길질을 했던 동네 형에게 복수를 했었다. 우선은 그 형의 동생인 내 또래를 흠씬 두들겨 준 것이었는데 그 형에게의 복수는 서른 살이 넘어서였다.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 형의 사업에 합법적으로 제법 큰 손해를 끼치는 것으로의 복수였다. 그랬기에 누나를 향한 내 마음과 나를 대하는 누나의 마음에 불만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어쨌든 누나에 대한 안쓰러움과 야속함을 지닌 채 불혹의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부터 기침과 함께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병원에 한 번 가 본 적 없었던 나로서는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 하여 가족들에게 말할 수는 없어 몰래 병원을 찾았다. 그 병원에서 작은 누나를 만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누나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내 증세를 심각하게 물었다. 나이 들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식으로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날 밤, 매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에 다녀온 뒤로 누나가 너무 울었다는 것이었다. 집에 가자마자 아무래도 동생이 큰 병에 걸린 것 같은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며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잘못되면 자신은 어찌 살라는 것이냐며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는 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콧날이 시큰해왔다. 만약 큰 병에 걸렸다면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낫게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매형의 다독거림에 겨우 밥 한 술 떴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이었는데 그마저도 오진이었다. 기관지에 염증이 생겨 며칠 기침할 때 피가 나온 것이 전부였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나에게도 나를 향한 애틋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식의 평범한 말 이상의 근사한 표현을 생각해보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모처럼 통화를 하게 됐는데 누나는 서럽게 울었다. 인생이 너무 허망하다는 넋두리와 함께 슬피 울었다.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에 농부의 아내가 되어 몸이 바스러져라 일하여 자식들 키우고 여전히 그 애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남은 건 망가진 몸뚱이만 남았을 뿐 기쁨이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전화기 너머의 누나가 너무나 애처로워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5남매 중 유독 다른 성향을 가진 작은 누나.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린 동생과 비교되는 아픔을 겪으며 홀로 모멸감과 외로움을 견뎌야만 했던, 40년의 억척스러운 삶에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했던 희생과 고통을 이제라도 보상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는 행여 내게 토사곽란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원망이나 야속함이 아니라 누나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질 것 같다. 내 마음속에 아픔으로 자리 잡은 작은 누나가 우울해하고 힘들어한다.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