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2번지에 가면 그 카페가 있다

프롤로그

by 이현웅

https://youtu.be/6l-eBuEO4v4


“요즘은 개나 소나 카페 하더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 손님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뜨끔했다. 마주 앉은 지인과 눈이 마주치면서 웃음이 나왔다. 옆 테이블을 힐끔 보니 다행히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는 소도시 군산에서 음악 감상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문득 ‘나는 개일까? 소일까?’ 생각해봤다. 손님 한 명 찾지 않는 빈 집(카페)을 열심히 지켰으니 개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꼬리가 없지만 손님이 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으니 그 또한 개와 같을 수도 있겠다.


곡절이 많지만 뒷걸음질 한번 치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 가고 있으니 그 점은 소를 닮았다고 끼워 맞춘다. 피식 웃음이 나는데 동시에 무엇인가 울걱 치밀어 올랐다. 정말 개처럼 소처럼 살았다고 생각하니 눈물이라도 흘려줘야 할 것 같았다. 얼른 딴생각을 하며 밥을 욱여넣듯 먹었다. 뜨거운 국밥으로 입천장이 까질 것 같아 고개를 들고 호호거리는데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어? 어디서 봤더라?’ 생각하는데 그가 내게로 다가오면서 알은체를 했다.


“음악이야기 사장님이시죠?”


아무리 반갑기로서니 목소리가 그렇게 클 줄이야! 좀 전에 개나 소를 말하던 옆 테이블 손님까지 나를 쳐다봤다. 안면인식 장애에 가까운 나로서는 카페 개업 초기에 손님으로 두어 번 왔던 그를 알아볼 리 만무했다. 그가 나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에 관해 아주 잠깐 생각했다. 내가 잘생겼거나 멋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는데 그는 뭔가 할 말이 더 남아 있는 눈치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안다. 내가 아직도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문을 닫았다면 난처한 분위기가 될까 봐 바로 묻지 못한 것이고.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불쑥 그렇게 말하자 그의 얼굴에 안도감인지 반가움인지 모를 미소가 번졌다. 과장을 섞는다면 마치 6개월 시한부 선고받은 사람을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지금 건강 상태가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그런 것 말이다.


카페를 개업한 지 3년 9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549-2번지에서는 누군가를 위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때쯤이면 카페 이력이 늘어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음악감상카페 <음악이야기>에서 일어났던 개업 초기 1년 몇 개월 동안의 일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재밌게 쓰고 싶었다. 독자들을 웃게 하고 싶었다. 걸핏하면 울음을 쏟는 지질한 나 자신에게도 재밌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쓰는 중에 들었던 실패의 예감은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확신으로 바뀌었다. 웃기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재밌다는 것이 웃기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삶이 어떻고, 우리가 얻을 교훈이 무엇”이고 식의 말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다. 그저 사람과 사건을 썼고 나머지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책이 잘 팔리면 좋겠다. 우려먹는다는 비난이 있을지라도 시리즈로 계속 쓰고 싶다. 그때쯤에는 어쩌면 책 제목이 ‘슬기로운 OO생활’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슬기로운 카페생활>, <슬기로운 디제이생활>, <슬기로운 알바생활>(저작권에는 걸리지 않겠죠?). 완전 대박이다. 나는 어쩌면 돈방석에 앉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쓴 이야기는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본인에게 허락을 받은 경우가 아닌 이야기들은 이름이나 사건, 시간들을 바꾸고 섞어 썼다. 어떤 사건이나 등장인물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부디 이 책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로 남겨두기를 부탁드린다.


저녁 6시 반. 카페 음악실에 불이 켜지고 진공관 앰프에 은은한 빛깔을 내는 램프가 불을 밝힌다. 엘피 한 장을 꺼내 결을 따라 천으로 닦은 다음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카트리지를 얹는다. 엘피만이 지닌 특별한 음색이 카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음악 소리는 건물밖에 매달린 채 모진 비바람과 혹독한 눈보라를 견디고 있는 스피커를 통해 ‘신지길’ 거리를 울린다.


549-2번지, 그곳에 가면 아직도 그 카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