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카페나 해볼까?

by 이현웅

카페 오픈 6개월 전.

사람들은 꿈을 꾼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밥벌이를 위해 사는 각박함 속에서도 그 꿈을 생각하면 위로를 받는다. 그 꿈을 자신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돌보며 키워간다.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안고.


내가 그랬다. 내게는 젊은 시절(지금도 젊지만 더 젊은 시절)부터 키워온 꿈이 있었다. 나이 60이 되면 음악감상카페를 차리겠노라는 꿈이었다. 진공관 앰프, 턴테이블, 엘피 음반, 예술과 인생 이야기가 있는 아담한 카페를 상상하곤 했다. 그 생각을 하면 현실의 고달픔이나 걱정거리를 잊었다.


꿈을 현실로 가져온 것은 예상보다 빨랐다.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없지 않았지만 예기치 않게 찾아온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카페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카페를 운영하는 상상 속의 내 모습은 배가 나오지 않은 온화한 몸매와 백발의 중후함이었는데 자꾸만 배가 나오고 머리가 빠져 예순 살까지 가면 배불뚝이에 소갈머리, 주변머리 없는 모습이 될 것 같아 기회가 왔을 때 잡고 싶었다.

먼 뒷날의 일로만 여기던 것이 현실의 고민으로 다가오자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카페를 차리면 잘 될까?’부터, 잘 나가던 디제이 오빠 시절의 영광을 재현할지도 모른다는 망상까지 머릿속은 몹시 분주했다. 취미로 카페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수입이 따라야 하는 카페 창업은 부담이었다.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사업 타당성을 가늠하기 위한 명목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음악카페 시장의 분위기를 엿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음악카페', '엘피 카페' 등의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600개가 넘게 올라왔다. 블로그나 다른 플랫폼을 통해 카페의 성격과 분위기, 특징을 기준으로 180곳을 추려냈다. 카페 주인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은 곳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카페 주인들이 경계의 날을 세웠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 불쑥 전화해서 이것저것을 물으니 마뜩지 않은 것이 당연했으리라.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는 것은 그나마 친절한 편이었다.


마음의 빗장을 풀어준 사람도 있었다. 묻지 않는 것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내게 해 준 말들 중에 의아할 만큼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왜 힘든 일을 시작하려 하느냐며 만류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선배 된 입장에서 나타내는 염려 정도로 생각했는데 대화를 나눌수록 심각하게 느꼈다.


얼마 후, 그들이 카페 사업을 만류한 이유를 알았다. 그들 대부분은 카페 사업에 실패했거나 혹독한 시련 중에서 분투 중이었다. 그들은 일면식도 없는 내게 자신의 처지와 속내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가까운 사람들보다는 낯선 내게 털어놓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퇴직금을 몽땅 털어 넣었는데 손님이 없어 몸 고생 마음고생만 하다가 폐업을 앞둔 사람도 있었다. 방송국 디제이 출신의 이력을 앞세워 운영하는 곳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지인들의 반대에도 고집을 부려 카페를 차렸는데 몇 년 동안 빚만 진 채 자책감으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카페 주인도 있었다.


두 달여에 걸친 시장 조사를 끝냈을 때 나는 몹시 피로했다. 시작조차 하지 않은 카페를 마치 오랫동안 운영하기라도 한 것처럼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카페 차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시장 조사 과정과 결과를 사실대로 말하면 카페 차리는 일을 만류하거나 반대할까 싶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카페를 차리기로 마음속에 이미 결정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실패해도 나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016년 여름이 한창이던 어느 날, 나는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나도 카페나 해볼까?”


말투는 시큰둥했다. 내 속에 있는 간절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카페에 큰 관심은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어린 시절, 짝사랑하는 소녀에 대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무덤덤한 척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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