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더 틀어주십쇼

by 이현웅

카페 오픈 두 달, 여전히 손님은 없었다. 한 명도 오지 않은 날이 꽤 있었다. 어쩌다 스무 명이 넘으면 감격하는 지경이었다.


그날도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카페 출입문이 몇 번 열리긴 했다. 한 번은 홍보 명함을 주러 온 대리운전 업체 직원이었고, 또 한 번은 같은 건물의 다른 업소 주인이 누수 관련 문의를 하러 왔고, 다른 한 번은 노래방을 찾다가 실수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면서 마음은 오히려 편해졌다. 더는 마음 졸이며 기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채운 후에 얼른 집에 가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손님이 오기는 틀렸다고 생각해 직원에게 일찍 퇴근하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에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우리의 시선은 출입문을 향했다.


“노래 신청됩니까?”


남자는 술 취한 몸을 가누려 애쓰며 그렇게 물었다.


“디제이님! 멜라니 샤프카의 ‘쌔디스트 씽’ 됩니까?”


이별의 아픈 노랫말과 슬픈 멜로디, 애절한 보컬이 어우러진, 흔히 세계 3대 슬픈 노래 중 한 곡으로 말하는 멜라니 사프카(Melanie Safka)의 <더 쌔디스트 씽(The Saddest Thing)>이라는 곡이다.

슬픈 보컬과 연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음악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다른 소리가 있었다. 남자의 울음소리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고 있었다. 어떤 곡절이 있기에 저리도 서글피 우는 것일까. 그를 향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안고 나 또한 슬픈 음악에 심취해 있었는데 노래가 끝나갈 무렵 남자의 목청 높은 소리가 들려왔다.


“디제이님! 한 번만 더 틀어주시면 안 됩니까?”


남자의 요청이 마뜩잖았다. 하지만 그 청을 거절하기에는 그가 너무 슬퍼 보였다. 멜라니가 두 번이나 부른 노래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그가 음악실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근데요, 이 노래 지금 엘피로 트는 겁니까? 엘피 없어요?”


아차 싶었다.


“에이, 디제이님. 엘피로 틀었어야지. 거 참, 선수끼리 왜 이래?”


남자의 말에 나는 기분이 언짢았다. 애초에 그를 돌려보내지 못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같은 신청곡을 세 번씩이나 들려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남자가 음악을 또 신청했기 때문이다. 카페 문 닫을 시간이 지났다고 말했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틀어달라며 읍소하듯 부탁했다. 신청곡은 ‘아름다운 강산’이었다. 몇 분이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이선희 버전을 추천했지만 그는 8분짜리 신중현 버전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도 닦는 심정으로 네 번째 신청곡을 틀었다. 그는 노래를 듣는 8분 동안 고개를 흔들고 발장단을 맞추며 음악에 심취했다. 한 곡만 듣고 가겠다던 애초의 말을 믿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긴 노래가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켜고 클로징 멘트를 했다. 바로 그때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음악실 쪽으로 걸어오더니 소리치듯 말했다.


“디제이 아저씨. 새디스트 씽 한 번만 더 틀어주십쇼.”


이번엔 아저씨란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영업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디제이님, 이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틀어주십쇼.”


음악 카페에서 술 취한 손님이 하는 말 중에 흔한 거짓말은 ‘마지막 신청곡’이다. 그 마지막은 진짜 마지막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지막 신청곡 이후에는 또 다른 마지막 신청곡이 기다리고 있다.


“디제이 형님, 부탁드립니다”


이번엔 형님이란다.


“디제이 형님! 제가 말입니다. 지금 제가 정말 슬픕니다. 너무 슬퍼서 그럽니다.”


무슨 일 때문에 슬픈 것이냐고 묻지 않았다. 똑같은 노래를 네 번째 들려주기 위해 턴테이블의 바늘을 레코드 위에 올려놓았을 뿐이다. 남자는 네 번째 같은 곡을 들으며 또 흐느꼈다. 나는 그저 그와의 갈등을 빚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오디오의 전원 스위치를 꺼버렸다. 음악이 없는 카페는 고요했다. 고요를 깨뜨린 것은 남자였다.


“음악이 왜 안 나옵니까?”

“끝났습니다!”


직원들은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힘주어 말했다. 말투에는 이미 친절함이 남아있지 않았다.


“끝났어요? 한 곡 남았는데…….”


남자는 신청 메모지를 흔들며 말했다. 결국 내가 나섰다.


“선생님! 한 곡은 여운으로 남겨 놓으시지요.”


내 말투는 분명 딱딱했을 것이다. 남자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상황을 눈치 챈 듯 혼잣말로 무어라고 중얼거리면서 계산대로 향했다. 술에서 깨지 못한 모습으로 지갑 속의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넨 남자는 배웅 인사를 위해 계산대 옆에 서 있는 나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잔액 부족인데요?”


그의 인사에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하려는데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이걸로.....”


그가 건넨 다른 카드도 잔액부족 메시지가 떴다. 직원은 직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누구보다도 안절부절못한 사람은 나였다.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며 얼른 음악실 안으로 피해버렸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은 거의 울상이 되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사장님... 제가 내일 꼭 갖다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나와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취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네, 아니, 그냥 다음에 오실 때, 아니 그냥, 오늘은 제가 대접한 걸로…”


“아닙니다! 그건 안 됩니다! 그럼 못씁니다. 장사가 장난입니까? 제가 내일 꼭 갖다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내 호의를 단호하게 자르고 훈계도 하고 사과도 했다. 나는 어찌할 줄 모른 채 괜찮다는 말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며 맞절을 했다. 남자는 그렇게 첫 방문을 끝내고 처음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떠나갔다. 남자가 떠난 후, 직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기분이 우울했다.


“그 손님, 목도리 놓고 가셨는데요?”


테이블을 정리하던 직원이 의자에 놓여있던 목도리를 집어 들며 말했다. 나는 낚아채듯 목도리를 받아 들고 밖으로 부리나케 나갔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 건물 앞 인도를 좌우로 살펴보았지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의 겨울바람에 맹렬한 추위를 느꼈다. 급한 발걸음을 옮겨 건너편 인도와 차도 쪽을 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후문으로 나갔나 싶어 건물 뒤편을 향해 뜀박질을 했다. 건물을 중심으로 블록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카페에 돌아오자 직원이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남자가 남기고 간 신청 메모지였다. 신청곡은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살러테리 맨(Solitary Man)>이었고 사연란에는 ‘인생, 이별, 죽음’이라는 글이 있었다. 내 우울함은 더 짙어져 갔다. 손님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도, 유일하게 온 남자마저 돈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도 아닌 우울함은 집에 도착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그 남자 생각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 추위에 어디에 있을지, 고단한 심신을 눕힐 수 있는 보금자리는 있는 것인지, 목도리도 없이 차가운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메모지에 쓴 것처럼 누군가와의 이별로 큰 슬픔에 빠져있거나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생각했다. 나는 음악이 고파 찾아온 그에게 메신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날을 지새웠다.


남자는 오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며칠 후에도, 몇 달 후에도 오지 않았다. 그를 휘감고 있던 슬픔의 정체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나타낸 신청곡을 거절당한 채 차디찬 거리로 나섰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쓸쓸했을까를 생각하니 분명 서글픈 사람이었다. 음악을 장사의 수단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했던 나도 슬픈 남자였다.


나는 그를 기다렸다. 자신이 여기에 왔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카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남자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단지 커피와 술을 파는 상인으로가 아니라, 삶이 고단하여 지친 그에게, 설움이 가득할지도 모를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진정한 디제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남자를 기다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신청했지만 내 몰인정함으로 듣지 못했던 <살러테리 맨(Solitary Man)>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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