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주인의 외모에 관한 고찰

by 이현웅

카페 오픈 3개월.

카페 주인의 외모 이야기에 '고찰'이라는 명사를 써야 할까 고민했다.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이었다. ‘고찰’의 뜻은 이렇다. ‘어떤 것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함’ 그래서 고찰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외모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나름 이런저런 연구를 했었던 까닭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공유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동네 카페에서 일하는 주인이나 남자 직원들은 왜들 그리 잘 생긴 것인지, 어떤 땐 그들이 믿는 종교가 궁금하기까지 했다. 대체 뭘 믿고 그리 멋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카페 사업의 대열에 들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나는 언제까지만 해도 내가 정말 잘생긴 줄 알았다. 어머니가 늘 “우리 막둥이가 질로 잘 생겼지”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안에서 가장 잘생겼다는 것이었고 그마저도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3형제에게 개별적으로 “니가 질로 잘생겼지”라고 얘기했던 거다. 심지어는 아버지에게도 같은 립서비스를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단체톡과 개인톡의 대화 방식 노하우를 일찍이 터득했던 것은 아닐까.


열다섯 살 무렵, 첫사랑 여자애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못생겼다고 하면서 첫 번째 절망을 겪었다. 못생겼다고 놀리면서도 장래를 약속하자던 그 애의 마음을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두 번째 절망은 디제이를 시작하던 무렵에 찾아왔다. 디제이가 되기 위한 오디션에서 음악다방 주인이 내게 선뜻 합격을 주지 않은 이유가 목소리는 좋은데 외모가 못생겼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음악실에 커튼을 치고 방송하는 조건으로 오디션에 합격한 사건은 두고두고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게 했다(무슨 이유에서인지 커튼을 실제로 치지는 않았다).


세 번째 절망은 더 아픈 기억이다. 디제이로 활동하며 한창 인기를 누리던 스물한 살 때였다. 그날은 내가 일하는 음악다방에서 내 또래 남녀 여덟 명이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중학교 동창인 창우가 주선했다. 그런데 남자 쪽 한 명이 갑자기 올 수 없게 되었다. 대타로 남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창우는 내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두어 번 사양을 하고 나서야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번 정도는 사양하는 것이 물오른 인기남의 관리법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창우는 미팅 참석자들에게 나를 거창하게 소개했다. 반전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여자 쪽 한 명이 나를 거부했다. 차라리 주선자인 창우가 좋겠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뻘쭘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일어서야 했다.


네 번째 절망은 광고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할 때 찾아왔다. 고객 중에 어린이집 원장이 있었다. 광고물을 의뢰할 때마다 통화를 수차례 하게 됐는데 그녀는 종종 내 목소리에 관해 칭찬을 아끼지 않곤 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전화로만 1년 넘게 소통을 하던 어느 날, 그녀가 회사를 방문했다. 전화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작정하고 왔다는 거였다. 나를 본 그녀의 얼굴에 후회의 빛이 역력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가 의뢰한 광고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맡겼다. 내가 뒤끝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이래저래 나는 계속 외모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그러던 중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영어 교육회사에서 근무하던 서른 살 무렵이었다. 당시 학부모들은 대개 4, 50대 연령이었는데 내게 호감을 나타낸 사람들이 꽤 있었다. 몇몇 엄마는 딸을 주고 싶다는 적극적인 표현으로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그들이 내게 호감을 느낀 이유는 내가 잘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것은 그때 내게 이미 다섯 살짜리 딸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저도 딸이 있습니다”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외모에 관련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 외모에 대한 평가는 나를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달렸다는 것이었다. 눈이 높은 사람에게는 못 생겨 보이고, 눈이 낮은 사람에게는 잘생겨 보인다는 거였다. 생각이 그쯤에 이르자 어느 때부터는 더 이상 외모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결혼도 했고 특별히 외모에 구애받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2016년 가을에 생각이 바뀌었다. 카페 개업을 준비하면서 외모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성형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이목구비는 어쩔 수 없다지만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이 문제였다. 어느 누구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것도 아닌데 내 헤어(Hair)는 빠지기만 했지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이때부터 외모에 대해, 특히 머리와 관련해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진지한 고찰이 시작되었다.


모발이식은 지인 중에 그 과정을 고통스럽게 겪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차선으로 가발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그 또한 과정이 만만치 않아 포기했다. 동네 미용실 원장은 한쪽 머리카락을 길게 남겨 머리 가운데 부분을 덮는 고도의 기술을 발휘했다. 하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던 날 위장술이 드러나는 통에 더는 그 기술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흑채를 뿌리는 일이었다.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자세히 보지 않는 다음에야 들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가성비도 좋아 선택하는 데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움은 따랐다. 어떤 날엔 숱이 더 많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흑채를 많이 뿌리면 숱이 적은 곳이나 흰머리 부분과의 지나친 불균형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런 날이면 이미 뿌려진 흑채를 닦아내는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었다. 너무 많이 닦아내는 바람에 다시 흑채를 뿌려야 하거나 결국 머리를 또 감아야 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매일 저녁과 아침에 머리를 감아야 하는 일도 번거롭고 귀찮았다. 결정적으로 흑채 사용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검은 물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릴 것 같은 공포감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흑채 가루가 집안에 날려서 욕실의 세면대나 변기 뚜껑 위에 켜켜이 내려앉아 물청소를 할 때면 여기저기에서 검은 물이 흘러내리곤 했기 때문이다.

카페 주인과 디제이로서의 외모에 대한 고찰은 계속되었다. 이래저래 흑채를 포기하고 난 후에 선택한 것이 모자였다. 모자를 쓴 모습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예술가처럼 보인다는 것과 늙어 보인다는 평이 가장 많았다. 그래도 흑채를 뿌리는 일보다는 쉬웠다. 하지만 어려움도 따랐다. 긴 시간 모자에 갇혀 통풍이 되지 않는 머리는 전에 없던 두통을 느끼게 했다. 겨울에는 머리숱이 적어 추운 머리를 보호해 따뜻한 듯도 싶지만 영업시간 내내 히터가 가동되는 카페에서는 고역이었다. 땀에 젖은 머리는 무좀이라도 걸릴 것 같았다. 방송 중에도 카페 베란다에 나가 바깥공기로 머리를 식혀줘야 했다. 여름에는 냉방기를 켜서 다행이지만 카페 밖에서는 고역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머리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떤 깨달음이나 계기 때문이 아니라 머리에 관한 고찰에서 지친 까닭이었다. 머리에 대해 고민하거나 연구하다가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머리까지 빠질 것 같아서였다.

디제이가 방송만 잘하면 되지 잘생길 필요까지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미리 준비해뒀다. 대한민국 디제이 역사에서 잘생긴 디제이가 거의 없었다는 자의적 생각도 한몫을 했다.


“난 이제 그냥 생긴 대로 살 거야. 흑채도 안 뿌리고, 모자도 안 쓸 거야. 한국 사람들은 머리숱 없는 거에 왜 그토록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어. 외국 사람들은 숱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데 말이야. 스팅 봐봐. 나이 먹어서 머리숱 없어도 그냥 자연스럽게 노래하잖아.”


나는 열변을 토했다.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스팅은 잘생겼잖아.”


헉! 다른 누군가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신은 공평하다는 말이 맞나 봐요. 사장님에게는 좋은 목소리를 주셨잖아요.”


이런 젠장!!

외모에 관한 긴 고찰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불행하게도 아니었다. 카페를 개업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아프리카TV를 시작했다. 음악방송을 인터넷에 내보내는데 카페 음악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싶어 웹캠을 설치한 것이 화근이었다. 음악실 정면 천장에 달린 카메라가 머리털 없는 정수리를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나는 얼른 모자를 썼다. 아, 짜증 지대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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