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오픈 7개월.
어떤 날에는 출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손님 한 명 없는 카페에서 열두 시간을 견디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다. 출근해서 오픈 준비를 하고 이런저런 일을 만들어 해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은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나는 음악실에서, 박실장은 주방 앞 테이블에서 출입문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목이 긴 나는 곧 사슴이 될 것 같았다. 카페를 개업하기 전, 출입문에 달려있던 방울을 떼어 보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방울을 찾아 출입문 꼭대기에 달았다. 문이 열릴 때마다 방울소리가 났기 때문에 더는 출입문을 애타게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다.
종종 출입문 유리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경우 대개는 기웃거리다가 그냥 가버리곤 했다. 어쩌다 카페 안에까지 들어왔다가 손님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도로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손님이 있었던 테이블을 치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어떤 날에는 손님이 왔다 간 것처럼 테이블에 빈 병과 잔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손님이 오긴 오는 곳이라는 것을 그렇게라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고 있거나, 카페가 곧 망할 것 같은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하필 그때에 손님이 들어오곤 했다. 하여, 언젠가는 ‘일부러 싸우거나 울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에는 아르바이트 직원과 면담을 하곤 했다. 가볍게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면 손님이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손님이 없는 날에 직원에게 면담을 요청하면 “제가 앉으면 손님 올까 봐 그러신 거죠?”라고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카페를 시작한 지 반년이 넘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손님 한 명 한 명에 민감했다. 왔다가 메뉴판만 보고 나가는 손님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 손님들은 처음 방문한 경우였는데 대개는 비싼 가격이 이유였다. 카페에 처음 온 듯한 손님이 와서 메뉴를 주문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는 내기를 하곤 했다. 그 손님이 그냥 나갈 것인지, 주문을 할 것인지. 어느 날에는 네 명의 손님이 왔는데 한 명씩 한 명씩 순서대로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보고는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왜 그런지 서로 앞 다투어 나가려다 스텝이 엉켜 자빠질 것 같았고 당겨야 할 문을 밀다가 몸이 출입문에 부딪히면서 방울소리를 내는가 하면 바로 뒤따라간 동료와 몸이 충돌하며 방울 소리를 또 요란하게 내기도 했다.
몇 달이 지나면 손님이 꽤 올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여전히 카페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몸 고생 마음고생만 하다가 폐업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의 요구에 저항하지 못한 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기도 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마이크를 넘겨줬고,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손님도 묵인했다. 심지어는 노래 가사를 띄워놓고 떼창을 하는 싱어롱 타임도 계획했다. 나는 이성적이지 않았고 분별력을 잃었다.
그런 중에 어느 대가족이 카페 손님으로 왔다. 1층 식당 주인의 지인이 가족과 함께 온 것이었는데, 3대가 함께 모인 자리에 예닐곱 살로 보이는 소녀도 있었다. 가족 대표로 신청 메모지를 음악실 안으로 넣을 때 깨금발을 들 정도로 작은 소녀였다. 신청곡은 당시에 유행하던 아이돌 그룹의 댄스곡이었다. 평소대로라면 틀지 않는 곡이지만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멘트로 그런 사정 이야기를 하는데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춤을 끝내주게 춰요”라고 소리쳤다. 그 말에 나는 마치 뭔가에 씐 것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를 음악실 안으로 초대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층 식당 주인의 지인이니까 우리 카페에 자주 올 수도 있다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나는 과거 MC로 활동했던 시절의 재능을 발휘했다. 아이와의 인터뷰에 가족들은 박장대소했고 아이의 춤 솜씨를 보자는 내 멘트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댄스곡을 크게 틀었고 아이는 아이돌 가수의 춤을 추면서 카페는 순식간에 클럽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아프리카 TV로 방송을 시청하던 사람들은 환호의 댓글과 함께 연신 별풍선을 쐈고 나는 더욱 들떠 대가족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애썼다.
바로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면서 남녀 커플이 들어왔다. 처음 온 것 같았다. 그들은 예상 밖의 광경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 도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멈춰야 했다. 하지만 삶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번엔 두 살 위 언니도 하고 싶다면서 자매가 같이 추게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멈춰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결국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거절하면 단골이 될 수도 있는 손님을 놓치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때 손님이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의 댄스 장기자랑 중에는 손님이 오지 않았다. 나는 우울했다. 아이들을 춤추게 해 줘서 고맙고 즐거웠다는 대가족 손님들의 인사에 나도 미소를 애써지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손님이 모두 나가고 난 후, 나는 음악실에서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겼다.
세 번째로 온 손님은 카페에 가끔 오는 60대 손님들이었다. 어떤 일은 겹쳐서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도 그랬다. 일행 중 한 명이 음악실로 오더니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이들의 댄스 장기자랑으로 엉망이 된 분위기를 돌려놓기도 전에 들어온 제안에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또 거부하지 못했다. 종종 방문하는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은 절박함 때문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손님은 음치에 박치였고 그저 소리를 높이기만 해서 완전 공해 수준의 소음이 카페를 꽉 채웠다.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성적인 판단이나 분별력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멈춰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되면서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이번엔 함께 온 일행 중 한 명이 자신도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섰다. 정말 멈춰야 했다. 이제는 그들의 제안을 거부함으로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술 취한 음치 손님은 동료들까지 가세해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압박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강하게 거절했다. 내 표정은 분명 굳어있었을 것이다. 손님들은 잠시 동안 자기네들의 요구를 더 했다. 나는 심기가 불편한 일그러진 얼굴로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예상치 않은 분위기에 점점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모두들 얼굴이 굳어졌다. 손님들은 술을 남긴 채로 카페에서 나갔다.
나는 출입문을 잠갔다. 아직 끝날 시간이 아닌데도 음악실에 돌아와 음악을 껐다. 방송을 마친다는 안내도 없이 인터넷 방송을 중지시켰다. 음악실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떨궜다. 좀 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춘 아이, 카페에 왔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로 나간 손님, 노래를 부르겠다고 떼쓰던 손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는 가슴 통증을 느꼈다.
손님 한 명 잡기 위해 카페를 시작할 때의 철학과 소신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한 가지 생각에 골몰했다. ‘나는 왜 이 카페를 하고 있는가?’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닌 밥벌이를 위해 하는 것은 분명하고, 앞서서 밝힌 것과 같은 어쭙잖은 목적으로 하는 것은 맞지만 내게는 음악감상카페를 하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누구에게도 쉬이 말하지 못했던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 밝히기로 하자). 어쨌든 그 이유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나는 끝내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어떤 독자는 내가 우는 것을 자주 쓴 것이 못마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보다 더 많이 울었고 여기에서 내 지질함을 굳이 감추고 싶지는 않다). 애초의 카페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과는 다르게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장사꾼이 되어 있는 내 모습에 몹시 괴로웠다. 전락해버린 내 영혼 때문에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마음속에서는 계속 뇌까리고 있었다. <음악이야기>는 지금 대체 어디에 와있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