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오픈 8개월.
꼬마 손님의 댄스 퍼포먼스와 음치 손님 팀의 노래 사건 이후 나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힘이 들었다. 카페를 개업한 이래 처음으로 독하게 앓았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몸에서부터 모든 힘이 빠져나간 느낌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심한 무기력증으로 그 어떤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입맛을 잃었고 생각을 잃었다. 하루하루가 맥없이 흘러갔다. 카페에 출근해서도 테이블에 엎드려 있기 일쑤였고 방송도 멘트 한 마디 없이 마지못해 할 정도였다.
어느 날, 황약사님 부부가 카페에 왔다. 그날도 손님은 없었고 약사님은 합석을 제안했다. 약사님 부부는 경영에 관해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약국 개업 초기에 어려웠던 이야기부터 오랜 경영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던 내게 약사님이 질문했다.
“개업한 지 얼마 됐죠?”
“반년 됐습니다.”
“힘들지 않아요?”
“... 힘 ... 들죠”
나는 꾸미거나 포장할 틈도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1년만 버텨요!”
황약사님이 그렇게 말했다. 처음엔 그 말의 뜻을 잘 알지 못했다.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황약사님은 다시 강조했다.
“무조건 1년만 버텨요. 나는 지팡이 짚고 다닐 때까지 올 테니까 포기하지 말고 해 봐요. 우선 1년만 버텨요.”
황약사님의 그 말은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손님이 없으니까 별 생각이 다 들죠?”
“그러게요....”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끈기가 중요해요. 사장님이 생각한 것을 쭉 밀고 나가야 해요. 음식이 짜다고 소문난 식당에는 짜게 먹는 사람들이 몰리게 되거든요. 손님이 없다 해서 이 손님 저 손님 다 잡으려고 하면 다 놓칠 수 있으니까 소신대로 밀고 나가요. 우선 1년만 버텨 봐요.”
그날의 대화는 카페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카페를 오픈하고 손님이 너무 없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면서도 늘 ‘여기에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약사님 부부와 대화를 하던 중에 나는 그 생각을 다시 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도 찾을 것만 같았다.
음악감상카페 <음악이야기>가 추구하는 색깔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키지 못한 채 손님들이 원하는 입맛에 맞추려고 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것은 애초의 철학과 소신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고, 손님이 너무 없다는 현실에 눈앞의 것만을 보는 얼치기 장사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고객 지향’과 ‘고객 편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과오였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1년을 버틴다 해도 손님이 엄청 많아지지는 않겠지만 그 한 마디만으로도 힘과 용기가 생겼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시작은 잘못되었고, 과정에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음악이야기>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해놓고 소신껏 운영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카페 오픈 8개월 만에야 ‘버티기’라는 이 바닥 전문 용어를 배웠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카페나 술집이 성공하기까지는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고, 경기의 흐름이나 상황의 변화에도 견디는 곳은 적어도 몇 년의 영업 경력에서 확보한 단골손님 덕분임을 알게 되었다. 개업 1, 2년 만에 안정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란 기대 자체가 허무맹랑한 욕심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음악이야기>도 몇 년 동안 애초의 컨셉트와 철학으로 꾸준히 이어갈 때 안정적인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기간을 5년으로 잡았다.
문제는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이었다. 고심 끝에 영업시간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낮부터 시작한 영업을 저녁으로 옮겨 새벽 1시까지 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카페에서 술집으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말도 있었고, 음악을 감상하기에는 밤 시간이 적합하다는 반론도 있었지만 둘 다 절대적 이유는 아니었다. 먹고살기 위해 다른 돈벌이를 하려는 목적도 아니었다. 버티기 위해서였다. 너무 긴 시간을 손님 기다리는 일로 바치기에는 몸도 정신도 황폐해져 갔기 때문이었다. 버티기 위해, 견디기 위해서는 손님을 기다리는 고통의 시간을 줄여야 했다.
카페 경영에도 변화를 주었다. 커피와 음료 메뉴를 줄였고, 칵테일과 맥주, 와인도 교체하면서 숫자를 줄였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스피커도 바꿨고 빔프로젝트도 설치했다. 새로운 희망이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손님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새로 교체한 스피커의 소리와 뮤지션들의 라이브 공연 모습을 스크린으로 보는 것에 흡족함을 나타냈다.
아무리 그래도 손님은 눈에 띄게 많아지지 않았다. 황약사님이 1년이라고 얘기했지만 얼마의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면서 나는 버티기를 시작했다. 로키산맥 해발 3천 미터 높이의 수목 한계선에서 모진 비바람과 혹독한 눈보라를 맞으며 생존을 위해 몸을 구부린 채 버티는 일명 ‘무릎 꿇고 있는 나무’처럼 우리 카페도 버텨야 했다. 찬란한 봄이 오기까지는 먼 시간이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음악이야기>는 버티기의 시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웅크리고 꺾인 채로 지질한 몰골이라도, 고단하기 짝이 없는 물 밑에서의 노동에도 자태를 뽐내는 백조처럼 고개를 들고 당당하고도 우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