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하긴 해야 했습니다

by 이현웅

우아하게 버티기 위해 시도한 것 중 하나가 ‘음악 감상 모임’이었다. 가입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던 페이스북 계정을 어렵게 꺼내어 회원 모집 광고를 시작했다.


“음악 감상하는 순수 모임입니다. 함께 하실 분 신청해주세요.”


반응은 없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가장 먼저 댓글을 남겨보세요.”


며칠이 지나도록 댓글은 달리지 않았고 저 메시지만 덜렁하니 떠 있었다. 참 쉬운 게 하나 없구나 생각했다. 페이스북 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내가 모집 광고 하나 올려놓고 반응을 기대했던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지인 몇 명과 카페에 오던 손님 중 한 명을 초대했다.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도 모른 채 매주 수요일 저녁 여덟 시에 모이기로 했다.


첫 모임이 있던 날 몇 시간 전,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반가움에 시간과 장소를 알려줬다. 모임 시간이 다가오자 한 명 한 명 카페에 도착했다. 시작 10분 전쯤, 전화가 걸려왔다. 낮에 전화했던 그분이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약도를 보고 왔는데 카페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분 별명이 혹시 가스통이거나 휘발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바리했다가는 혼구멍이 날 것 같아 카페를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자세히 안내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몇 분 후, 카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 속 주인공이 등장했다. 내 예상을 깨고 아담한 키에 옆집 아저씨 같은 그분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엉터리 약도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웬일인지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결코 야심차지 못하게 시작한 음악감상모임의 멤버는 우리 부부를 제외한 네 명뿐이었다. 시의원을 두 번 하고 정계를 은퇴한 60대 후반의 박후 아저씨, 은행 지점장으로의 퇴직을 앞둔 50대 중반의 명길 선배, 나를 형부라고 불렀다가 오라버니라고 부르기도 하는 40대 초반의 황미나 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류한 까칠할 것 같은 60대 중반의 강임준 아저씨가 음악감상모임의 초대 멤버였다. 네 명뿐인데도 서로 아는 사람이 있었다. 박후 아저씨와 까칠할 것 같은 임준 아저씨는 정치 선후배 관계이자,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좁은 바닥에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명길 선배도 강임준 아저씨의 이력을 알고 있어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알은체를 했다.


“여기서는 정치 얘기 안 하고 음악만 들으려고 했더니......”


강임준 아저씨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그러고 나서 명함을 돌리는 센스를 발휘했다).


첫 번째 음악감상모임은 두 명의 전직 지자체 의원과 한 명의 은행 지점장, 그리고 한 명의 전업주부, 그렇게 넷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을 듣기보다는 얘기 나누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 옛날 음악을 듣던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추억을 소환하기에 분주했다. 80년대에 음악을 들었던 명길 선배와 나는 디제이 출신이라서 그나마 그 대화에 기웃거릴 수나 있었지만, 90년대 중반에 스무 살 시절을 보낸 황미나 씨는 어르신들의 추억담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것이다.


박후 아저씨와 임준 아저씨는 젊은 시절에 공부보다는 음악 듣는 것에 더 몰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당시 유행했던 음악들의 제목을 쏟아 놓았다. 팝송을 따라 부르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고 심지어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탈리아의 칸초네까지 막힘없이 원어로 부르기도 했다.


한 번은 임준 아저씨가 이탈리아 음악인 칸초네 ‘리멘시타(L'Immensita 눈물 속에 피는 꽃)’를 신청해서 나는 당연히 “밀바(Milva)가 부른 거 말씀하시는 거죠?”라고 물었는데 원곡 가수가 따로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확인해보니 쟈니 돌레리(Johnny Dorelli) 라는 남자 가수가 부른 것이 원곡이었다. 30년의 디제이 경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뭔가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한 ‘음악 감상 모임’은 그렇게 특별한 규정도, 운영 방향도 없이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하고, 이렇게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에 있어 목표에 달성하고 어느 기준에 도달한다 하여 꼭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모임이 어리바리하고 얼렁뚱땅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세월 지나 뒤돌아본 그 시간은 우리 카페 역사에 소중하고 의미 깊은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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