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에 손님 많죠?

by 이현웅

카페 오픈 1년 1개월.

세상일은 생각과 다르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카페 일도 그랬다.


“주말에는 손님 많죠?”

“아뇨.”


내 대답에 지인이나 손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대를 했던 날이 있긴 있었다.


“눈 내리는 날 오면 환상이겠네요.”

“비 오는 날 와야겠어요.”


카페를 개업한 것은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이었다. 당연히 눈 내리는 날에 대한 기대를 했지만 눈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어쩌다 내리는 눈도 소담스럽지 않았고 낭만을 즐길 만큼은 아니었다. 내 카페 사업을 자연마저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함박눈이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카페 오픈 후에도 펑펑 내렸다. 어떤 손님이 올 것인지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손님이 아주 많을 것으로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는 많을 것으로 은근히 기대했다.


“눈 오면 꼭 오겠”다던 말을 떠올리며 손님을 기다렸다. 오지 않았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가 다가오는데도 손님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나는 음악실에서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비현실 세계에 있는 것처럼 착각했다. 눈 오는 날의 처참한 결과를 믿고 싶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피트 시거(Pete Seeger 아메리칸 포크음악의 전설적인 뮤지션)가 부르는 <스노우 스노우(Snow Snow)>를 들으며 눈 내리는 앞 건물 옥상을 계속 보고 있었다. 노랫말에서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으로 덮일 것만 같은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하지만 노래 속에 나오는 여인은 카페에 오지 않았다. 남자도 오지 않았다. 택배 아저씨만 다녀갔을 뿐이다.


“비 오는 날 손님 많죠?”


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내리면 음악을 들었던 내 습관도 무관하지 않았다. 아주 춥거나 더운 때가 아닌 날에 비가 내리면 카페 창문을 연다.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좋아서다. 건물 어느 곳에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인지 잠자고 있는 감성을 깨워 일으키는 빗소리가 정말 좋다(카페 오시라고 유혹하는 거 절대 아니...지는 않고 솔직히 조금은 그렇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특별히 선곡한다. 비와 관련된 노래들이다. 밖에 걸린 스피커로도 음악을 내보낸다.


개업 초기 한 동안, 비가 오면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컸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감은 초조함으로 바뀌고, 더 지나면 실망감으로, 깊은 밤이 되면 체념하는 날이 반복됐다. 단골이 많아졌으니 비 오는 날에도 손님이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비 오는 날에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비단 장사 매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날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성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말하면 믿으실지 모르겠다. 하여, 비 오는 날에 카페를 방문하면 음료 값 30%를 할인하는 이벤트를 만들었다. SNS에 광고를 하고 포스터를 만들어 카페 손님들이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았다. 그래도 날씨가 좋은 날보다 손님이 적었다. 어느 날 그 이유에 관해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에이, 귀찮지. 비 오는 날 나오기 싫어.”

“맞아. 나도 비오면 집에서 티브이나 볼까 잘 안 나오지.”


아, 그렇구나. 나는 그제야 비 오는 날 손님이 적은 이유를 알았다. 더는 비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영업시간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4번 테이블에 앉아 음악에 섞여 들려오는 빗소리를 듣곤 했다. ‘오늘도 손님이 많기는 틀렸구나’ 생각하며.


카페를 시작한 이후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1년 이상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눈 내리는 날을 더는 애타게 기다리지는 않았다. 눈다운 눈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카페 오픈 시간을 저녁으로 옮기고 난 후에는 눈이나 비가 내리는 것도 낮에 잠깐 내리다 그치는 일이 많았다. 자연은 여전히 내 편이 아닌 것 같았다.


어느 날, 낮부터 내린 눈이 출근 시간까지도 계속 내렸다. 1년 전에야 카페를 막 시작했을 때여서 손님이 없었겠지만 이제는 제법 알려졌으니 작년보다는 많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어쩌다 손님이 오기는 왔지만 메뉴판을 보고 도로 나갔다. 심지어 커플도 그냥 나갔다. 나는 속으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커플은 가볍게 한 잔 하고 가도 될 텐데 말이야’라고 구시렁거렸다.


다음날은 겨울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날이 좋았다. 모두들 어디론가 놀러 갈 것만 같은 날씨였다. 오늘도 틀렸구나 생각했는데 어마 무시하게 손님이 많았다. 두 명의 직원이 녹초가 될 정도였다. 장사는 인생만큼이나 참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눈 내리는 날이거나 비 오는 날에 더는 손님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를 자주 찾는 윤대표님이 말했다.


“제가 이 카페를 몇 년째 오는 이유를 아세요? 그 겨울에 제가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때 이 카페에 처음 왔는데 눈이 내리는 날이었어요. 창가에 앉았었는데 밖에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죠. 정말 좋았어요. 그 순간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 같아요.”


계절이 바뀌면 카페를 찾는 부부가 있다. 남자가 말했다.


“그전까지는 친구로 지냈는데 저는 그 친구를 이성으로 좋아했죠. 음악이야기에 왔는데 그날 비가 내렸어요.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해서 듣는데 빗소리랑 섞여 들리는 음악이 정말 환상이었어요. 기회는 이때다 하고 고백했죠. 그 친구가 지금 저랑 함께 살고 있는 아내입니다.”


눈 내리는 날에, 비 오는 날에 손님이 많지 않은 것이 무슨 큰 문제이겠는가. 눈 내리는 날 우리 카페에서 창밖의 눈을 바라보고 음악을 들으며 삶의 무게를 견뎠고, 비 내리는 날 세레나데에 실린 빗소리를 들으며 사랑을 얻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두 사람 말고도 눈 내리는 날이나 비 오는 날에 우리 카페에 와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을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으리라. 음악카페 하기를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눈 내리고 비 오는 날에 손님이 많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