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길

by 이현웅

카페 오픈 1년 4개월.

가고 있는 길이 험난하여 지치고 힘들어도 주저앉을 수 없는 길이 있다. 때로는 고단한 길에 끝이 오길 바라지만 끝나지 않는 길이 있다. 어쩌면 인생이 다하도록 걸어가야 할 그런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카페는 나름대로의 모습과 색깔을 갖추어갔다. 처음 1년은 방황과 표류를 많이 했던 해였다. 2년 차(2018년)가 되면서 음악감상카페로서의 면모를 갖춰갔고 카페 일기장에 기록되는 사건과 손님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트로트와 댄스 음악을 좋아하지만 들을 수 없으면서도 변함없이 카페에 오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아트락(Art Rock)에 심취한 남자는 매번 혼자 와서 창가의 지정된 자리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술을 시켜놓고 자신의 신청곡이 나올 때마다 펑펑 울다가 “덕분에 실컷 울고 갑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가는 ‘눈물맨’, 올 때마다 술값이 비싸다고 하면서도 발길을 끊지 못하는 ‘투덜이 아저씨’, 그룹 퀸(Queen) 음악을 좋아해 올 때마다 퀸(Queen) 음악을 몽땅 신청해서 우리가 ‘퀸’이라고 부르는 손님도 있었다. 많은 손님 중에 임준 아저씨에 대한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여름에 시작했던 ‘음악감상 모임’은 명길 선배가 빠지면서 다섯 명으로 유지되었다. 그 후로 몇 명의 신규 멤버가 오긴 했지만 정착하지 못한 채 더 이상 숫자가 늘지 않았다. 미나 씨가 미리 준비해 온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를 맡은 것은 1기 음악감상모임에 잔잔한 의미를 새긴 일이었다.

얼마 후, 임준 아저씨도 더 이상 나오기 힘들다고 선언했다. 지방 선거에 출마할 준비를 위해서였다. 힘겹고 험난한 길을 나선 것이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임준 아저씨의 고단한 여정에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방 선거 출마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임준 아저씨를 SNS에서 볼 때면 대중음악에 대한 애정을 향유하던 모습이 떠올라 그를 향한 일종의 연민과 음악모임을 하던 시절에의 그리움도 느끼곤 했다. 임준 아저씨는 주로 6, 70년대 음악을 신청했는데 외국곡인데도 모든 음악을 따라 부르며 노래 실력을 보였다. 곡마다 지닌 사연과 음악적 해설도 취미 수준 이상으로 잘했다.


임준 아저씨를 다시 본 것은 치열한 당내 경선 과정에 있던 어느 늦겨울 저녁이었다. 빠듯한 선거 운동 일정 중에 잠깐의 짬을 내어 들르신 것이었다. 연일 강행군으로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얼굴은 초췌했다. 정치인으로서 가야만 하는 고단한 여정을 짐작으로만 느낄 수 있는 나였지만 임준 아저씨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

음악실에 들어와 임준 아저씨가 가장 좋아하는 박인희 노래 <끝이 없는 길>을 틀었다.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리는 얼굴

그 모습 보려고 가까이 가면

나를 두고 저만큼 또 멀어지네

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가는 길

“이 노래를 내 장례식 때 틀어 달라고 했어.”


임준 아저씨는 노래가 나오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정치인으로서, 삶의 여행자로서 가는 그 길의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에 결연함이 느껴졌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를 길이다. 이제는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길이 되었다. 때로는 두렵고, 외롭고, 고달픈 걸음이지만 계속 가야만 하는, 스스로가 선택한 끝없는 길에 서 있었다.

카페를 하는 것은 정치에 비하면 가볍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고되고 힘에 겨운 길이었다. 내가 좋아 나선 길이었지만 도종환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았고, 길 가는 중에 어느 새벽이면 남모르는 외로움과 누구에게도 쉬이 말하지 못할 쓸쓸함에 가슴 아픈 날이 몇 번이었는지 헤아릴 수 조차 있을까. 하지만 그 길은 숙명과도 같이 내가 가야만 할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임준 아저씨가 가는 길도 그랬을 것이다.

고되고 쓸쓸한 길을 걷던 그는 2018년 4월 25일 당 경선에서 승리하여 후보가 되었다. 그날, 임준 아저씨는 카페에 왔다. 시장 후보가 그 바쁜 날에 일개 카페 주인을 보러 왔을까 싶지만 어쨌든 우리는 오랜만에 악수를 했다.

6월 13일, 임준 아저씨는 인구 27만 도시의 시장에 당선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 해 여름에 카페에 왔다. 그날도 임준 아저씨는 <끝이 없는 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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