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그 7년 단골이여

by 이현웅

카페를 시작한 지 1년 4개월쯤 되었을 때 단골손님이 제법 늘어 있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오는 단골부터, 한 달에 몇 번 오는 단골, 요일에 따라 꾸준히 오는 단골도 생겼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오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1년 6개월 동안 딱 세 번 온 손님도 있다. 나는 그 손님들을 모두 ‘단골’이라고 정의 내렸다. 우리 카페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았다면 ‘단골손님’으로 불러도 된다고 생각했다. 안면 인식 장애로 의심받을 만큼 손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를 감안하면 내가 모르는 단골손님도 꽤 있을 것이었다. 손님이 우리에게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해 오면 전에 왔었던 손님으로 추측하는 정도가 나름 터득한 요령이었다.


처음 온 손님과 재방문 손님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손님이냐에 따라 접객 멘트가 달라져야하기 때문이다. 처음 온 손님에게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분위기가 어땠는지, 명함을 줄 수 있는지 식의 질문으로 소통을 한다. 재방문 손님이라면 이전에 왔을 때 보였던 특징이나 정보를 동원해 알은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카페에 온 손님이 처음 왔는지, 아니면 재방문인지를 모르는 경우에 박실장과 나는 분주하게 정보를 주고받는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알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둘 다 알지 못하면 처음 온 손님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처음 오셨죠?”라고 물었는데 “다섯 번째일걸요?”라는 답변이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을 종종 겪으면서 생긴 노하우가 있다. “열 번쯤 오시면 제가 기억합니다.”라고 눙친다. 어떤 날엔 이미 우리에게 명함까지 준 적이 있는 손님에게 명함을 재차 요구했다가 “이 집은 올 때마다 명함을 달라고 하네?”라는 타박을 받기도 했다.


손님들 중에는 우리 카페와 자신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재밌는 유형은 동료들 앞에서 우리 카페 ‘단골’ 임을 과시하는데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잘 알지 못하거나 음악실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우기는 손님이다.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오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음악 신청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있지도 않은 안주를 너무 맛있게 먹었었다는 왜곡된 기억을 사실인양 말하고 왜 없앴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어떤 손님은 개업 초기부터 변함없이 줄기차게 왔다고 강조하는데 정작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심지어는 주인이 70대 노인이었는데 언제 바뀌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음악실에 있을 때 조명 때문에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나를 두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물어보면 그건 아니었다. 분명 백발에 술을 잘 마시는 70대 중반 노인이었다고 강조했다. 추리해보니 우리 카페와 비슷한 유형의 술집과 헷갈린 게 분명했다.


어떤 손님은 나와 나이가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데리고 온 일행에게 “이 집 사장이랑 내가 친구잖아”라고 자랑삼아 말하기도 한다. 내가 의례적인 인사를 하기 위해 테이블에 가면 “어, 이사장 왔구만. 어이, 여기 내 친구, 이 집 사장이야. 인사들 해” 하며 동료들에게 말한다. 그 이전에 몇 번 카페에 오기는 했지만 친구로 지내자고 약속을 하거나 한 번도 반말을 해 본 적 없었는데도 말이다.


나와 동갑내기 손님 중 한 명은 친분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 깨복쟁이 동무에게나 할 욕설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밝혀지거나 의심을 받아 괜스레 난감한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곡되고 과장된 말을 하는 것이 카페 경영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 허리를 아프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카페를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왔던 손님 중 트로트를 좋아하는 분이 있었다. 우리 카페에서는 특정한 트로트 음악을 선곡하지 않는다(물론 트로트는 내가 싫어하는 장르가 아니며 노래방에 가면 나는 트로트를 부른다). 그가 신청한 노래는 우리 카페에서 선곡하지 않는 음악이었다. 양해를 구했지만 그는 화를 냈다. 또 다른 곡을 신청했는데 이번에도 선곡하기 어려운 노래였다. 두 번이나 신청한 곡이 거절되자 기분이 상했는지 불만을 터뜨리는 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테이블에 가서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되니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부탁했다. 순간 그는 나를 노려보더니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칠게 독설을 퍼부어댔다.


“아니 뭔 이런 그지 같은 디가 있는 거여? 신청곡 받는다 혀놓고 뽕짝은 안된다고나 혀싸코, 또 뭐라고? 목소리 좀 낮춰달라고? 여보쇼, 그런 거 거슬리믄 장사를 허들 말등가. 거 참 기분 드럽네. 내가 사람들 많이 알기로 유명한 놈이여. 내가 아는 사람들헌티 여그 오지 말라고 혀야거써.”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 지르는 그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 외에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트로트 한 곡 살짝 들려줘서 달래볼 걸 그랬나?’ 생각도 들었다. 인맥도 넓은 것 같은데 중요한 손님을 놓친 것은 아닐까 후회되기도 했지만 지질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카페에서 나가는 순간까지 독설을 퍼부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 날이었다.

며칠 후, 다섯 명의 손님이 들어오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오지 못하게 하겠다던 그 사람이 왔기 때문이었다. 네 명의 동료와 함께 온 그는 음악실에 있는 내게 손을 들어 알은체를 하며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해왔다. 나도 엉겁결에 손을 들었는데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몹시도 어정쩡했다.

“여그는 시끄럽게 떠들고 그러믄 안 되야. 조용허니 음악 감상하는 딩게 좋아허는 음악들 있으면 신청혀봐. 근디 뽕짝은 안 되야.”

음악실에 있으면 밖에서 하는 웬만한 크기의 이야기는 다 들린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그렇게 음악감상카페 <음악이야기> 공지사항을 전하고 있었다.

“형님, 나는 뽕짝밖에 모르는디요?”

일행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믄 자네도 나맹키로 걍 들어. 여그 사장님이 디제이 보는디 틀어주는 것만 들어도 좋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대뇌부에서부터 아킬레스건까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우리 카페의 최대 안티가 될 것 같았던 그는 최고의 단골이 되었다. 그 후로도 그는 다양한 손님들을 데리고 왔고, 우리 카페를 열심히 자랑하곤 했다.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트로트와 댄스곡은 신청해도 방송이 안 된다는 공지사항을 언제나 빼놓지 않았다.


카페 오픈 1년 반쯤 된 어느 날. 그날도 그는 다른 데로 가자고 우기는 여러 명의 동료들을 설득해 데리고 와서 어김없이 공지사항과 카페 소개를 하느라 열심이었다.

“형님, 이 집이랑 친척 관계라도 되는 거여요?”

일행 중 한 명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좋잖여. 우리 젊었을 적에 음악다방 가서 엄청 죽치고 놀았지.”

“그렸죠. 근디 형님은 여그 언제부터 오셨대요?”

“나? 내가, 가만있자... 한 7년쯤 됐지? 맞어. 내가 여그 7년 단골이여. 사장님, 그쯤 됐죠? 여그 개업 흔 지 7년쯤 됐잖여요?”

헉. 칠, 칠 년이라니. 이제 겨우 1년 반 됐는데. 나는 또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행에게 표정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어 보였(지만 틀림없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