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합시다 _ 첫번 째 이야기
“또 오셨어요?”
곰탕집주인이 손님인 내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자신의 식당을 찾은 손님에게 이렇게 인사하는 주인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왜요? 또 오면 안 되나요?”
“아뇨. 물리실까 봐 그렇죠.”
물리다? 대략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는데 보다 정확한 의미가 궁금했다. 스마트한 나는 검색 기능을 놓치지 않았다. ‘물리다’라는 단어는 표준어이다. ‘다시 대하기 싫을 만큼 몹시 싫증이 나다’의 뜻을 갖고 있다.
식당 주인은 내가 곰탕을 자주 먹다 보면 질려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나는 일주일 중 4일 저녁 식사를 곰탕으로 해결한다. 절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단체 대화방에 올리는 곰탕 사진만으로도 멤버들은 질려한다.
“물리지 않으세요?”
그 질문에 나는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렸을 적, 행상 나간 어머니가 집으로 귀가하실 때 머리에 이고 오는 것은 쌀 대신 밀가루였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우리 집의 주식이었다. 방망이로 반죽을 밀어 만든 칼국수와 빠른 손놀림으로 떼는 수제비, 행상 나가는 어머니가 석쇠에 올려놓은 빵, 이사를 한 것도 아니고 동지도 아닌데 수시로 끓이는 팥칼국수, 부침개, 이런 밀가루 음식을 먹는 일과 막걸리가 들어간 빵을 도시락으로 싸가는 것은 흔한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아예 국수 빼는 기계를 샀다.
“어렸을 때 그렇게 먹고도 가루 것이 질리지도 않냐?”
여전히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내게 어머니는 그렇게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으니까.
가난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다. 타고난 식성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좋았다. 엄마가 해주는 밀가루 음식을 먹으며 엄마의 포근한 사랑을 느꼈다. 밀가루 음식에 질리기보다는 변함없는 엄마의 사랑을 좋아했기에 똑같은 재료의 음식도 좋았던 거다.
스무 살 시절, 자취집 앞에 있던 홍콩반점에서 매일 짜장면을 먹었다. 주변에 식당이 여럿 있었지만 나는 홍콩으로만 갔다. 정말 어쩌다가 특별하게 다른 식당에 가더라도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 집 짜장면이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갔을지라도 다니다 보니 편해지고 익숙해졌던 까닭이었다. 덜컹거리는 미닫이 출입문, 나를 맞이하는 주인 내외, 테이블, 의자, 그릇, 노란 단무지, 양파, 춘장. 1년을 가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좋았다. 누군가 질리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었다.
일주일 내내 라면을 먹고 미역국을 열흘 동안 계속 먹은 적도 있으며, 김치찌개를 며칠 동안 계속 먹기도 했다. 그것을 단지 주는 대로 먹는다거나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다거나 입이 짧다는 표현으로 치부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물론 주는 대로 먹지 않고 투정 부리다가 그나마도 얻어먹지 못할까 봐 몸을 사리는 것은 사실이다). 며칠째 먹는 똑같은 음식이라도 그날그날 나 자신이 다르기 때문에 음식도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 마음을 주는 것이 어렵지만 한 번 주고 나면 그 사람에게 몰입한다. 싫증을 내는 일도 없다. 내가 매일매일 다른 생각을 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늘 새롭게 느껴진다. 그것은 변덕과는 다른 의미다.
그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은 한결같지만 바라보는 시각, 패러다임이 다른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의상,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은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나도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질리지 않는다.
값비싼 도자기를 놓고 본다면 날마다 다를 것이다. 이리 보고 저리 보면 각도에 따른 빛깔, 음영에 따라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다. 아무리 7천 원짜리 곰탕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내 마음속 생각의 각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날마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으로 다가온다. 언제까지 물리지 않고 먹을지 아직은 모르지만 앞으로도 몇 달은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사람은 쫌 질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