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너무 못합니다 <1>
*** 이 글은 스피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자기 계발서를 소설 형식으로 쓰는 글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가상의 캐릭터입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며 올해 마흔 살입니다. 착한(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은) 네 살 위의 남편과 초등학교 6학년 딸, 그리고 4학년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살림만 하던 제가 돈벌이를 하게 생겼습니다. 남편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며 알아봤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습니다. 보험설계사, 네트워크 사업자, 건강식품 판매원, 그리고 또 다른 일들을 제안 받았지만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없습니다.
친구 혜영으로부터 제안 받은 일이 초등학생과 중학생 영어를 지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영어 전문 교육 회사의 지사(대리점)에서 방문 교사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원으로 등록된 학생들의 영어 학습을 지도하고 관리하는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상담도 하고 영업도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일을 하려면 말을 잘해야 하는데 저는 말을 너무 못하기 때문입니다.
밝히고 싶지 않지만 저의 이름은 김미경입니다. 그 왜 있잖습니까? 말 더럽게 잘하는 스타강사, 하필 그 사람과 이름이 같습니다. 저주 받은 운명도 아니고 이 무슨 개미 뒷다리 복숭아뼈 금가는 우연이랍니까? 제가 먼저 태어났다면 그 사람 이름을 지어준 사람을 탓할 건더기라도 있는데 제가 늦게 태어났으니 뭐라고 딱히 할 말도 없고 말이죠. 개명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시는 조부께서 거금을 주고 작명하신 이름을 개명했다가는 가문에서 제명이라도 당할까봐 차마 그러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얼굴은 내가 더 예쁘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답니다.
“이름이 유명한 분과 같네요?”
교육회사 면접을 보러 갔는데 지사장이라는 남자가 그렇게 물을 때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짜증과 함께 불안감이 확 밀려왔습니다.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제가 서울 말씨 쓰는 잘생긴 남자에게는 약하거든요.
지사장은 면접용 질문 몇 개를 했는데 저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 할 말이 생각나긴 하는데 웅얼거리고, 얼버무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기 일쑤였습니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면접관이 잘생긴 것과는 결코 관련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첫마디에 이름을 말했기 때문에 자꾸만 말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그렇게 엉터리 면접이 되게 했을 것입니다. 자꾸만 “이름은 김미경인데 말은 잘 못하시네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해져 괜히 왔다는 후회까지 했습니다.
분명 불합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합격을 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미모를 보고 채용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사가 부족해 찬 밥 더운 밥 가리지 않고 합격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사, 별 것 아니구나 생각했는데 첫 출근을 한 날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사에서 근무하는 20명의 교사 전원이 참석하는 조회가 열렸는데 끝 부분에 신입 교사가 인사말을 하는 시간이 있었던 겁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미리 알려주지 않은 혜영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녀는 나를 외면했습니다.
함께 입사한 신입 교사는 저를 포함하여 세 명이었고 다행히 제가 마지막 차례였습니다. 맨 먼저 한 사람은 얄미울 만큼 말을 잘했습니다. 자신을 어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그녀의 인사말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더 긴장되고 더 떨렸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리를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머릿속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온갖 힘을 동원해 가까스로 할 말을 떠올렸는데 두 번째 사람이 똑같은 말을 먼저 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으악! 이런 젠장!
피해갈 수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일어섰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거칠게 뛰놀았습니다. 맞잡은 두 손이 덜덜덜 떨렸습니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들면서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눈앞은 캄캄하고 식은 땀이 흘렀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들었습니다.
어찌어찌 간신히 인사말을 끝난 후에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에 이름 소개한 것과 마지막에 잘 부탁한다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말밖에 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는데 심장은 여전히 거칠게 뛰놀더군요.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지사장의 말이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선배 교사들이 다가와 입사를 환영하는 인사를 할 때에도 저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환영 인사가 저를 비웃는 소리로 느껴졌습니다.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혜영이 그 기집애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도망치고 없지 뭡니까?
오전 업무를 마치고 회사를 빠져나오는데 그제야 인사말에서 못했던 말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간단한 말인데 그것 하나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평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왜 이런 자리에서는 그토록 못난이가 되어버렸는지 나는 스스로를 욕했습니다. 정말 저는 말을 너무 너무 못하는 머저리입니다. 이름은 김미경인데 말입니다, 짜증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