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합시다 <4>
나는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 유명한 고추 짬뽕은커녕 일반 짬뽕도 먹지 않는다. 매운 것을 먹다 보면 정수리에서부터 솟아오른 땀이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온다. 그것을 참고 계속 먹다가는 그나마 몇 가닥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금방이라도 쑥쑥 빠질 것만 같다.
그쯤 되고 보니 나와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은 식당과 메뉴를 선택할 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입이 짧거나 반찬 투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며 웬만한 음식은 마다하지 않고 다 먹는데도 나는 식성이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런 내게 언제부터인가 미풍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에는 먹지 못했던 매운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청양 고추나 많이 매운 것은 여전히 먹지 못하지만 조금씩은 견뎌낼 수 있는 내공이 쌓여가고 있다.
며칠 전, 저녁 식사 대신 떡볶이를 먹는데 매운맛이 강했다. 분명 내가 먹기에 괜찮을 것이라는 아내의 말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도 모르게 “아따, 맵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만큼이나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아내는 내게 밥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떡볶이를 계속 먹기로 했다. 옆에서 맛있게 먹는 아홉 살 손녀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서였다.
분명히 밝혀두지만 아홉 살 손녀 앞에서 매운 것도 먹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였다.
“맵지 않어?”
“네. 괜찮아요.”
몇 번이나 맵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손녀는 그렇게 대답하고 씩씩하게 그 매운 떡볶이를 다 먹었다. 그래서 나도 다 먹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근데, 오늘 떡볶이는 왜 이렇게 맵냐?”
마지막 떡을 입에 넣은 손녀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 아이도 매웠던 거구나. 그런데 왜 참고 먹었을까? 혹시 매운 음식이지만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떡볶이를 좋아해서일까?
그렇다면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그 매운 떡볶이를 왜 먹은 것일까를 생각해봤다. 그 생각의 결론은 누구와 떡볶이를 같이 먹었느냐에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나이에는 손녀 입으로 먹을 것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랬었나 보다. 매워서 입이 얼얼하고 머리가 온통 땀으로 젖어도 손녀와 함께 먹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위대한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중국음식점에 갔다. 나는 늘 그랬듯이 짜장면을 주문했다. 짜장면이 나오기 전에 깐풍기가 나왔다. 주문한 식구가 먹어보더니 맵다고 말했다. 내가 먹기에는 많이 매워서 먹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맵다는 말에 참으려다가 배가 너무 고파 젓가락을 들었다. 아, 맵다 매워.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나는 계속 먹었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분명히 말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 정도의 매운맛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생각의 끝에 나는 말했다.
“누구랑 먹느냐에 따라 매운 것도 먹을 수 있는가 봅니다.”
나와 함께 밥 먹으면서 매운 음식 주문했다고 타박을 받았던 사람이 이 글을 읽지 않으면 좋겠다. 혹시 읽더라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행여 내가 그랬더라도 그땐 우리가 서로를 깊게 알지 못했던 때였을 것이다.
그러니 토라지지 말고 한 번 더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