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음 Nov 03. 2020

추억을 많이!

-음악 레시피 2


Appetizer : Priscilla Ahn / Find on the outside.

Main dish : Gabriel Faure / Sicilienne Op. 78

Dessert : Hisaishi Joe / On a clear day    

 

 인연처럼 생각지 못한 순간에 만나는 음악들이 있다. 눈뜨자마자 습관처럼 음악을 틀어 놓다 보니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곡들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간다. 수많은 스쳐짐 속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그 음악과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업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자동차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신호와 길만 보며 직진을 하던 중에 청아하고 신비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I never had that many friends growing up so I learned to be okay with just me...”     


 읊조리듯이 담담하게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가 좋았고 단순한 기타 선율이 딱 어울리게 목소리와 함께했다. 일정을 마친 후 자유시간에 할 일이 있다는 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수업을 하면서도 차에서 마음을 빼앗긴 음악에 대해 찾아볼 생각으로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일을 했다.     


 집에 돌아와 곡에 대해 찾아보니 이 곡이 지브리 애니메이션 ‘추억의 마니’의 주제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나의 학창 시절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될 만큼 나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 언제나 해피엔딩인 디즈니 스토리보다도 엔딩이 아닌 것 같은 끝맺음을 하는 지브리표 스토리가 좋았고 화려하고 밝은 디즈니 풍 OST보다 아련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지브리 표 OST를 좋아했다. 그렇게 기억 저편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뜻하지 않게 재회를 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추억의 마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 같은 생활을 하며 적응을 잘못하는 안나가 건강 상의 이유로 시골로 내려오면서 겪는 환상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해가 지면 등장하는 정체 모를 마니라는 아이와의 우정을 키워가면서 성장하는 성장동화이기도 한 이 애니메이션은 끝부분의 반전을 위해 달려가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눈물을 자극하는 요소가 후반부에 몰려있다고나 할까.     


 이유는 일일이 다 기억 안 나지만 지브리 애니메이션만 봤다 하면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추억의 마니를 보면서는 눈물이 나질 않았다. 제작진이 대거 바뀐 탓인 건지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결론은 내 심장도 세월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엄마가 병에 걸려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설정만으로도 눈물을 흘리던 말랑말랑하던 나의 심장은 이제는 웬만하면 꿋꿋이 견뎌낸다.


추억의 마니가 끝나고 엔딩에 ‘Find on the side.’가 나오는데 마음이 씁쓸했다.     


 작은 일에도 웃고 울던 소녀는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것 같았다. 슬프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를 한 애니메이션을 집중해서 보고도 안 아팠던 마음이 앤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순간에 왜 이리 아려오는지 모르겠다. 심장이 딱딱해져 가는 세월의 흔적이 찌릿하게 느껴진다.     


 제주도에 사시는 어머니 친구분이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 말씀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저축하듯이 지금부터 차곡차곡!          

작가의 이전글 새해 계획을 돌아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