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레시피 1
Appetizer : John Hebden / Concerto no.1 for strings in A Major “Adagio”
Main dish : Jacques Offenbach / Barcarolle
Dessert : Sebastian Iradier / La paloma
“맥북 사기. 연습용 악기 사기.”
이것이 올해 신년 계획이었다. 물론 신년 계획을 거창하게 세웠던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새해 계획에 넣어 봤을 "다이어트 하기.", "외국어 공부하기."는 나의 단골 문구였고 새해 첫날 갑자기 감성적이 되어서는"부모님께 일주일에 한 번 사랑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전화하기." 같은 것도 이미 한 번씩 지나갔다.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일의 능률을 올리는 직장인들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반면 그들이 효율성이라는 기준으로 예술가들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10년에 한 곡 작곡 한 작곡가, 한 마디를 두고두고 될 때까지 연습하는 연주가들, 영감을 찾는다며 무작정 떠나는 화가들... 그들은 계획, 능률, 효율 이런 것들과는 애초에 결이 다르다.
나는 계획은 꼭 필요하다는 주의다. 목표도 이왕이면 높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높은 목표를 잡고 철저한 계획 아래 노력해야 어느 정도 얻는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목표치를 달성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조금 높은 목표와 계획을 세우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작년 겨울쯤, 레슨을 받던 학생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나의 계획과 목표가 자기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저는 쉬운 곡 하고 싶어요. 어려운 곡 하다가 계속 안돼서 속상해하는 것보다 쉬운 곡으로 여러 곡 연주할 수 있는 게 좋아요."
“테크닉 연습을 해야 실력이 향상된다.”“ 지금 단계에서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된다.” 등등의 여러 가지 말로 회유를 해봤지만 학생은 단호했다.
"저는 실패의 경험보다 성공의 경험이 필요한 나이예요."
어려운 곡을 할 때마다 안되면 10번 하고 100번 하면 다 된다는 소리를 인사말처럼 들어왔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선생님들에게 감히 하기 싫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이 자라왔기 때문에 "싫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학생이 아직 적응 안돼긴 하면서도 문득...‘나의 계획들은 성공적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외국어 공부. 다이어트 하기.”
10년 넘게 복사하기, 붙이기를 반복하며 나의 새해 계획 리스트에 항상 등장했던 단골손님이다. 단기적으로는 열과 성을 다해 집중해봤지만 쓸 일 없는 외국어는 여행가 때 반짝하고 썼다가 잊어버렸고, 날씬한 사람들은 그냥 태어나서부터 날씬한 걸로 결론이 나는 나의 다이어트 계획은 연말이 아니라 이미 봄부터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실패의 경험보다 성공의 경험이 필요한 나이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올해는 나도 성공의 경험을 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 같이 느껴지는 나의 새해 계획은 이런 배경에서 완성되었다.
다음 주 스케줄을 적다 발견한 2020 새해 계획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장난처럼 새운 계획이었는데 올해는 그것 조차 못 지키게 생겨서 황당하기도 하지만 계획을 못 지키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 그냥 한번 피식 웃으면 끝이니 올해 계획은 정말 기똥차게 잘 세운 거 같다.
나는 여전히 적절한 계획, 도전적인 목표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한 번쯤은 힘을 적당히 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거센 물결에 목숨 걸고 달려드는 것보다 작은 배에 몸을 맡긴 채 버텨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올해는 뭐하나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한해였지만 그래도 좋다. 그것은 그것 나름의 의미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